“온갖 잡다한 일상사 쓰다보니 내 삶이여”

<子婦(자부)께서는 隣家(인가)에遊去(유거)한模樣(모양)인데 某家(모가)에去(거)한지 不知也(부지야)라…>

이런 말씀쯤일 것이다.

<며늘애는 이웃집에 놀러간 모양인데 뉘 집에 갔는지는 알 수가 없다>

▲ 깨알같은 글자들이 자르르한 강대환 어르신의 일기장.
옛 서적 속의 글이 아니다. ‘어른들 심바람 바쁜 시절’ 막 벗어나서부터 ‘금일(今日)’까지 70년 이상을 써 온 일기, 전쟁중에도 어김없이 씌어졌으며 어제도 오늘도 꼬박꼬박 써 가고 있는 일기다.

깨알같은 글자들이 자르르한 공책은 얼핏 활자로 인쇄한 느낌이 들 정도. 광양 백운산 골짜기에 사는 강대환(92) 어르신이 공책을 세로로 내려쓰는 일기는 대개 다섯 줄 안팎에서 많으면 열 줄 이상.

“쓰던 버릇이라….”

그 버릇이라는 게 외지에 나가면 써 가지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베낄 정도의 ‘고질(痼疾)’이라는 것이 자부의 증언.

날마다 날짜 아랜 ‘氣(기)’라고 하여 날씨가 따라나온다. 淸明(청명) 혹은 雨天(우천) 등으로 간단히 적기도 하지만 다소 길어져서 본문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금일에 日氣(일기)가 日光(일광)이 無(무)하고 雲日(운일)이 되면서 日寒(일한)해서>(오늘 날씨는 햇빛 없고 구름 끼면서 날이 추워서) 혹은, <금일에도 일한 關係(관계)로 보니 물이 어러서 어림이 꽝꽝 어러 있음> 이런 식으로 소상히 적어 둔다.

날이 추워 방에 들어앉아야만 하는 날 강 노인의 일기는 이렇다.

<금일에는 그리 안 해도 每日(매일)갖치 遊休息(유휴식)하고 잊는대 금일 덕우나(더구나) 방중생활을 해게 되였으니다>

아마 근 70여년 간 모월 모일의 광양지역 날씨가 궁금하면 강 노인의 일기장을 뒤지면 되리라.

날마다‘今日 本人의家庭諸般行使에 對한 紀錄’(금일 본인의 가정제반행사에 대한 기록)이라는 다소 거창한 말로 시작되는 일기 속엔 매일 어김없이 ‘자부’와 ‘본인’이 등장한다.

일기 속의 ‘자부’께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인가에 유거’(이웃집에 놀러감). 강 노인 ‘본인’은 추운 날 같으면 <게우(겨우) 데운 물에 洗手(세수)를 하고> 朝飯食事(조반식사)하고 티비 보고 아침마당을 보고 점심을 먹는다.

<본인은 姜兒支(강아지) 飼料(사료) 주고 鷄(계=닭) 사료도 줬음>이나 <자부께서는 금년 추석에 먹은 梨(이=배)라고 刀(도=칼)로 써러서 물 끄리는 주전자에다 끄려서 물먹는다고 하고 有(유)함(있음)> 등 ‘가정제반행사’는 느리게 섬세하게 찍어내는 영화처럼 생생하게 기록된다.

이렇듯 구부(舅婦=시아버지와 며느리)간 살아가는 사소한 일상을 이두체로 읽노라면 姜兒支(강아지=姜(강)씨 성 가졌으니 강 노인의 가족임이 분명)마저도 방금 풍속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이 느껴진다.

혼자서 점심 먹은 날의 내력도 빠트리지 않고 적는다.

<자부께서는 인가에 유거하고 電話(전화)상으로 點心(점심)먹으라고 하기땀세 혼자서 점심식사을 하였음> <전화가 來(래=오니) 바드니가(받으니까) 점심 잡숴느냐고 하는 전화다 자부께서는 점심 먹는다고 하면서 식사을 하라고 함니다>

혼자 먹는 점심에 서운한 빛이 슬쩍 비치는 것 같지만, 서운키도 하고 고맙기도 한 것이 “찌대고 사는 사람들의 미운 정 고운 정”이라 한다.

강 노인은 ‘자부께서’ 놀러 나가 듣고 온‘이약이’ 전해 주는 걸 고마워 한다.

<자부께서는 인가에 유거한 모양이라 자부께서 무슨 以約이(이약이=이야기)든지 듯고 와서 傳(전)하주니 고마바라>

일상이 그러하듯 늘상 반복되는 명사와 동사로 씌어지는 일기는 단조롭다. 어쩌다가 특기할 만한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봄애는(보기에는) 牛乳(우유)와 비슷하나 먹으라고 해서 먹어보니 우유도 안니고 그런대 그것을 두 꼬부(컵)을 멕인 후에 幕來終(막래종=나중)에는 機械(기계)에 세워놓고 요리로 조리로 左側(좌측)으로 右側(우측)으로 또 업제라 바로누어라 거그에서 檢査了검사료(검사끝)>

우유 비스끄름한 것을 두 컵 먹이고 기계에 세워 놓고 요리로 조리로 좌측으로 우측으로 엎드려라 바로누워라…그리고 마침내 了(완료)! 하하 ! 할아버지가 그려내는 상황이 어찌나 소상한지 병원에서 위 투시 한번 안해 본 사람도 그 성가신 양을 한눈에 알아차릴 정도다.

동네 밖으로 去하는(거하는=가는) 것은 ‘자부께서’든 ‘본인’이든 병원행이 그 중 많다.

<자부께서는 금일에도 針(침)맞고 物理治療(물리치료)하고 來(래)해다고(왔다고) 함>

강 노인의 며느리 박귀례(67) 할머니는 3년 전 중풍으로 쓰러진 후 왼쪽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스물 한 살에 시집와 근 50년을 한 자리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시아버지 강 노인의 말씀으로는 “상각을(상객으로) 가서 큰상 받고 얼큰하니 한잔 된게 기분이 좋아졌는가 느닷없이 노래를 부르고 데려왔다”는 며느리다. 근동 사람들이 모두 와서 구경하는 자리였다. 시아버지가 노래까지 부르고 데려갔다고, “귀례는 시아부지 귀염받고 잘살겄다”고 그 말 입에 올리는 사람들 절로 낯빛 환해지는 소문을 달고 시집을 왔다.

“산질(산길)로 산질로 오는디 첨보게도 먼 길”이더라 했다. 7남매 맏며느리였다.

“우리 자부가 막냉이 아들, 그렁게 즈그 시아제를 젖도 믹이고 업어서 키웠어.”

군석(딸린 식구)이 많아서 아침이면 ‘밴또(도시락) 대여섯 개 싸던 시절’, 열다섯 식구가 살던 그 날들엔 밥상 앞이 매양 시끌벅적했다.

“인자는 두나치(둘) 남았네.”

남편 먼저 보내고 10여년이지만 항시 활달하고 노가대 날품을 팔 정도로 건강했던 며느리가 중풍으로 쓰러졌을 땐 기댈 자리가 없는 것 같았다. 몇 달 입원 끝에 퇴원하면서 반쪽밖에 못쓰게 된 불편한 몸을 이끌고 며느리가 찾은 곳은 아들네 집도, 딸네 집도 아니고 처음 시집온 그 자리였다.

“논다랑이 하나 못 주고 출가시킨 자식들인디…. 각자 지그 새끼들 갈치고 벌어묵을라고 안그래도 힘든디.…. 병난 애미 병원비야 약값이야 돈을 너무 들이게 하고 있는 것만도 미안해서….”

몸을 상하고 보니 대할 낯 없기로는 연세 드신 시아버지한테도 마찬가지였다.

“밥도 제대로 못해 드릴 형편이었지만 그래도 이 아부지가 좋은게, 비우가 맞은게, 속편헌게 욜로 왔겄제.”

여전히 왼손만을 겨우 쓰는 살림살이다. 눈으로는 가남(가늠)이 훤하지만 몸은 어두우니 애가 탄다. 그나마 84세에 혼자 되고도 만날 ‘양반’으로 깨끗하게 늙어가는 시아버지가 고마울 뿐.

그렇게 사는 일상이다. 산골마을 구부간 사는 이야기는 세태에 물들지 않은 깊은 산골만큼 날마다가 순정하다.

날씨·가정사 등 자세히 적어

<자부께서는 조반 후에는 인가에 유거했고 본인은 근불 땠음니다. 근불 때노니 방이 따뜻해서 좋음. 자부께서 洗濯(세탁)한다고 衣服(의복)을 가라입고 했음>

이 일기의 끝은 <洗濯機(세탁기)에 세탁하니 편리하기 짝이엄네>.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4언절구’ 주부가사 같다.

“군불 땔 나무는 씨아제가 해다 줘서 걱정없어요.”

장작개비 한 개비도 들어왔든 나갔든 어김없이 기록된다. 당연하다. 조반후 세수한 것도 빠뜨리지 않고 적는 ‘금일 가정제반행사에 대한 기록’ 아닌가.

<奭遠(석원)니가 땔나무를 한 늬악가을 해준다고 하니 外順니(외순이)가 함게 늬악가을 助力(조력)해 조야 하겠서 외순니가 조력해 주무로 나무를 가지고 來(래)했음(왔음) 고맙개도>

<금일에 冷風(냉풍)이 吹(취)해서(불어서) 일기 일한해서 外寒(외한)니 심해서 感氣(감기)에 操心(조심)을 해야겠다>고 움츠리던 마음이 얼마나 든든하고 따뜻했을 것인가.

5대째 뼈를 묻은 고향, “한때는 나락도 쟁여 놓고 살던 살림”이 이제 “보돕시 호박이나 두어 구덩이 묻어놓고 딜다 보는 것이 일”이 됐다.

명절이나 생일 뒤끝. 자식들이 들었다 한꺼번에 나고 나면 물 빠진 갯벌처럼 쓸쓸하기 한량없다. 해도 며느리는 날마다 인가에 유거하고, 시아버지는 며느리 듣고 온 이야기 고맙게 전해 듣고 마음자리 뎁히며 산다.

“우리 사는 것은 다 동네사람 덕”이라는 시아버지 말대로 18호 사는 이웃이 다 이 집 밥상을 걱정한다. 그런 걱정이 따뜻하여 몸이 아픈 며느리와 ‘무장무장 오그라드는’ 늙은 시아버지 두 식구가 얼굴 환하게 살아간다

<英基(영기)가 門前(문전)에 枾木(시목=감나무)에 감을 따면서 紅枾(홍시)을 줘서 善食(선식)을 하였음니다>, <光陽(광양) 자부께서 飯饌(반찬)에 대하여 김치와 싱건김치와 짠김치와을 多數(다수)희 해 來(래)해서 感謝(감사)하니 잘먹겠음…선식 먹겠음>

홍시감도 선식이고, 작은며느리가 챙겨다 준 살뜰한 반찬도 다 선식이다.

▲ 70년 간 하루같이 ‘금일 본인의 가정제반행사에 대한 기록’을 해 온 강대환 어르신. “좋으믄 좋은 대로 나쁘믄 나쁜 대로 내 복은 이렇게 생긴 것인갑다 허고 받는다”는 어르신의 웃음이 환하다.
7남매 맏며느리와 ‘알콩달콩’


착한 음식일 수도, 착한 마음으로 먹는 음식일 수도, 착해지는 음식일 수도 있겠다. 그 모든 것을 두루 갖추어야 비로소 선식일지도 모르겠다. 강 노인과 그의 자부께서는 자주 선식을 먹는다.

“저믈게 오믄 기다려지고 늦으면 기다릴까 걱정되고 서로간에 에워주고 찌대고” 그렇게 산다.

“혼자 살믄 귀찮다고 굶을 것을 둘이 사니 때 안 거르고, 말 한마디라도 더 입에 올리고 살제.”

내 입에 밥알이 모래알 같은 날도 서로 챙기느라 밥상 앞에 앉는다.

겨울이면 왼손으로나마 거드는 자부하고 시아버지하고 문풍지도 바르고 여름 돌아오면 모기장 바르고.

산골만큼 순정한 ‘구부간 이야기’

   
꽃각시때부터 50년을 보아 온 며느리가 안된 꼴을 보믄 부애가 난다. “좋은 시상 왔는디… 만원짜리 하나면 옷을 2년은 입고 만고에 좋은 세상인디… 깝깝하고 안씨로와….”

“자부는 나 때문에, 나는 자부 때문에 서로 궂은 꼴 안 뵈려고 바짝 정신차려 산다”는 강노인에게 “징한 세월도 평생 웃는 상이더라”고 자부께서 찬탄해 마지않는 웃는 비결을 묻는다.

“웃는 놈은 복을 불러딜이고 찡그린 놈은 복을 차는 것이요. 좋으믄 좋은 대로 나쁘믄 나쁜 대로 내 복은 이렇게 생긴 것인갑다 허고 받으믄 되제.”

그렇군요. 그저 내 복이로구나 하고 넙죽 고맙게 생긴 대로 받는 것이 복이군요. 그 시아버지 특기인 추임새 나온다. “옳체 옳체! 하모 하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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