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말 시대 우리 글 탁월함 더욱 돋보인다

“이제까지 서유럽 문명이 발전해 온 것은 알파벳 26자로 말을 표현할 수 있었던 ‘글자’ 때문입니다. 전자말 시대를 맞은 현대는 손전화 버튼 몇 개로 우리 글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우리 겨레가 서유럽 문명을 앞지를 수 있는 기회입니다. 다만 우리 아이들이 자신들만의 언어에 함몰돼 사회·어른·다른 사람과 단절되지 않도록 잘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손전화 버튼 하나에 알파벳 3개 일본 불가능


지난 11일 오후 경남창원글쓰기교육연구회가 마련한 ‘삶을 가꾸는 글쓰기-김수업 선생 우리말 특강’에서 김수업씨는 우리 겨레말과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공동대표인 김씨가 우리 말을 망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 것은 바로 우리 것을 업신여기는 마음이다.

한글, 서양에 3분의 1 이상 빠른 우월적 위치

김씨는 “어릴 적에 한글을 쓰면 집안 어른들이 상놈말이라고 혼을 내며 양반말인 한문을 쓰라고 하셨다”며 “우리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을 천하게 여기고 업신여기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1963년 대학원 석사 논문에 한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제출하자 지도교수에게 불려간 김씨는 “못읽겠으니 새로 써오라”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김씨는 “교수님, 한글도 못읽으십니까”라고 일침을 가한 후, 평소 학자는 신념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교수에게 “이것이 내 신념”이라고 맞서 결국 B학점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요즘에야 논문을 쓸 때 들머리니 마무리니 하는 말을 간혹 쓰곤 하지만 아직도 서론·본론·결론이라고 어려운 말을 써야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해방 이후 50년만에 이렇게 우리 겨레가 살아나고 있는 것은 글자 때문입니다. 누구나 시집을 내고 소설을 쓸 수 있는 등 글자가 사람들 사이의 장벽을 없애면서 온 국민이 함께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속도와 영상이 핵심인 ‘전자말’ 시대에 우리 겨레는 그 어느 나라보다 우월적 위치에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손전화를 가만히 보십시오. 알파벳은 버튼 하나에 3개씩 있어요. 50개 정도로 구성된 일본 글자는 손전화 버튼으로 표시할 수 없어 알파벳을 누른 후 변환키로 바꿔줘야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 한글은 버튼 하나에 2개씩 있고 어떤 버튼은 한 개도 있어요. 즉 서양보다 3분의 1을 빨리 나아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신조어 막을순 없어 단절 되지 않게 해야”

김씨는 ‘입말’을 쓰던 시대에 ‘글말’이 등장하자 오랫동안 혼란기를 거쳐 정착된 것처럼 지금은 ‘전자말’이 태동하는 혼란기이므로 이것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신조어에 대해 걱정하는 어른들도 많지만 이러한 전자말을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됩니다. 다만 한 집단 내에서만 통용돼 다른 집단과 단절되는 것을 막아 다른 사람·다른 어른들과 통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번 특강은 글쓰기연구회가 지난달 마련한 ‘삶을 가꾸는 글쓰기’ 강연의 일환으로 준비한 것으로 교사 등 80여명이 참석했다.

특강에 앞서 동요를 부르는 어른들 모임인 ‘철부지들’의 짧은 공연이 있었으며, 원래 오후 7시 30분부터 9시까지 1시간 30분간 예정됐던 특강은 참석자들의 질문 열기로 1시간 가량 늦어진 10시께 끝났다.

김수업씨는 경상대 국어교육과 교수·대구 가톨릭대 총장을 역임했으며,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공동대표·진주 문화연구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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