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 그것도 스승의 날. 경남도민일보 전자신문에서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마창지회장의 ‘교사평가제 반대하는 교원단체, 어떻게 봐야 할까?’라는 글을 처음 보았을 때 너무 놀라 내 눈을 의심했다. 그 이유는 교원평가에 대해 글을 쓰신 분은 이런 내용의 글을 쓰실 분이 아닌 평소 우리교육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온 몸으로 뛰시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교사단체와 학부모단체의 관계는 어차피 이해관계가 다른 비적대적인 모순관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정부가 시행하려는 교원평가는 교원과 학부모간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가 아니라 시행동기가 순수하지 못한 ‘교원노동유연화 정책’의 일환이요, 교직사회의 경쟁과 구조조정과 관련이 있는 문제다. 평소 교육의 모순을 바꾸겠다는 헌신적인 노력을 해 오던 분이 '교원평가'에 대한 본질적인 내용을 오해하고 있다는 섭섭함이었다.

   
둘째는 도민일보에 대한 섭섭함이다. 권투시합을 보면서 ‘저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했다. 오직 이겨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원한도 없는 상대방을 피투성이가 되도록 두들겨 패야 하는 것이 권투 경기다. 권투경기야 말로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을 보는 듯 하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힘없고 가난한 어린 선수를 링 위에 세워 싸움을 시키는 것이 상업주의다. 

조,중,동도 감히 시도하지 못하는 '교원평가'를 놓고 권투경기처럼 '논쟁거리'로 만든 도민일보의 수완(?)에 감탄과 섭섭함을 감출 수 없다. 언제 논쟁을 붙였느냐고 할 지 모르지만 학부모회장의 글을 메인 톱으로 올린 자체가 그렇다. 도민일보가 교원평가에 대한 올바른 관점없이 지혜롭게 결론을 맺지 못한다면 결과적으로 나타날 부정적효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도민일보가 '교원평가'를 논쟁거리로 삼아서 안 되는 이유는 이렇다.  ‘자유민주주의’가 지향하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에 비추어 볼 때 기본적 가치에 도전하는 권투경기야 말로 자기부정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약자의 힘‘이 되겠다는 도민일보가 정부가 내놓은 교원평가 문제를 상품으로 내놓고 시청률을 올리겠다는 시도 자체가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사회문제란 토론 과정을 거쳐 합의를 도출해 내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할 수도 있다. 또한 결론 단계에서 찬반론자들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토론의 장을 마련한다면 기회균등의 원칙에 어긋날 것도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살인은 정당한가?" 또는 '자유는 소중한 것인가?'와 같이 이미 결론이 난 문제를 토론의 주제로 삼는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

도민일보가 교원평가를 토론 주제로 삼아서 안 되는 이유는 또 있다. 토론이란 토론과정을 통해 가치관이나 이해관계가 상반된 사람들이 양보와 타협을 이끌어 내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명확하게 결론이 난 문제를 놓고 토론을 하겠다는 것은 소모적인 논쟁이 될 수밖에 없다. 교원평가문제도 그렇다. 도민일보는 마치 교원평가가 학부모와 교사들의 이해관계나 집단이기주의 때문에 생겨 난 문제라는 전제에서 토론을 거쳐 시비를 가리겠다면 그것은 판단착오다. 분명한 사실은 정부의 교원평가 안이 시행되면 교원과 학부모가 함께 피해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입시위주의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보면 교원평가 어떤 결과를 가져 올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정부가 최근 2008학년도부터 내신성적반영강화라는 새 입시제도를 내놓자 아이들은 친구가 점수를 잘못 받게 하기 위해서 친구의 노트를 찢어 버리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교직사회도 서열을 매겨 성과급까지 차등지급하겠다면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정부가 교원평가의 이유로 내건 교원의 자질향상은 교원의 양성이나 승진과정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사실 교원의 자질향상에 가장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교사상호간에 정보를 교환하는 일이다. 자신의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 동과목교사간에 대화가 단절되고 반목과 경쟁관계가 되면 교원평가를 시행하려는 ‘교원의 자질향상’에 역행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고 그 피해는 아이들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둘째, 교육부의 시안에서 밝혔듯이 교원평가의 객관성 시비 때문에 교원의 인품이나 자질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교원평가의 궁극적인 목적인 자질향상은 온데간데 없고 담당교과목이나 담임교사가 맡고 있는 반 학생들의 성적으로 평가를 받게 된다. 이렇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학교는 인성교육이 아닌 처절한 성적 지상주의로 바뀌게 된다. 과거 학교간 성적을 비교해 학교의 우열을 가릴 때 시험 당일 성적이 나쁜 학생을 등교하지 못하게 해 말썽이 있었던 일이 있다. 성적지상주의 학교에서는 성적이 좋고 나쁜 아이들이 어떤 대접을 받을 것인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학부모의 사교육비증가로 나타나게 되고 그 피해는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져야하는 것이다.

세쩨, 교육부가 시도하는 교원평가가 시행되면 학부모가 바라는 부적격교사나 자질미달교사가 퇴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능한 교사로 인정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현재도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가르치는 일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교사는 교감, 교장이나 부장교사도 맡기를 싫어 한다. 학부모가 말하는 부적격교사나 자격미달 교사는 교수능력이 지나치게 부족한 교사나 성추행 교사, 폭력교사를 일컫는 말인데 이러한 교사는 평가를 통해 자질향상을 시킬 것이 아니라 징계를 통해 교단에서 축출해야 한다. 성적 지상주의평가를 지향하는 학교에는 최근 일부 사립학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스파르타식교육' 또는 '암기위주의 주입식 교육'으로 개성이나 창의성교육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더구나 교원평가가 교원의 성과급으로 연계될 경우 ‘일류대학에만 갈 수 있다면...’하는 학부모의 욕구에 영합해 오히려 성적을 올리기 위한 황폐한 학교가 되고 말 것이다.

네째, 우수교사와 무능교사라는 딱지를 붙여 서열이 공개되는 현실에서 무능한 교사란 딱지가 붙은 교사들에게 아이들을 맡기는 학부모들이나 학생들은 어떤 심정일까 '나는 3등자리 교사'라고 낙인이 찍힌 교사는 과연 아이들 앞에서 어떻게 수업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사람의 능력이란 우열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유능한 교사‘의 기준이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아니라 성적을 올려주는, 일류대학에 많이 입학시키는 능력이라면 학교가 어떤 모습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영국에서 교원들이 모자라 외국에서 수입해 오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우수한 인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수한 인재가 교직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교원평가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이 문제는 명백히 토론의 대상일 수 없다. 이런 차원에서 경남도민일보는 정부의 정책비판의 기능보다 대중의 정서에 영합하는 싸움을 붙인 책임을 져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앞에서 몇가지 사례를 통해 정부가 시도하는 교원 평가는 학부모와 교원이 이해관계문제가 아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학부모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평가를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지금까지 전교조는 봉급인상을 요구하거나 정년연장을 주장한 바 없다.

전교조는 교원평가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구성원에 의한 학교종합평가제'와 '학교자치와 교장선출보직제'와 같은 교원의 자질향상과 관련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정부가 시행하겠다는 교원 평가는 지금까지 교육실패의 책임을 교원들에게 돌리고 우선 '교원평가' 시행하면서 점진적으로 '교원 자격/임용제도 다양화'를 추진하고 그 후 '교사대 통폐합', '계약직 교사제 확대', '교원 지방직화', '교원 정년 폐지'라는 수순을 밟겠다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비정규직 교사가 20%(사립은 40%)인 상황에서 정부가 시도하는 교원평가가 시행된다면 교원의 자질향상은 물론 성적 지상주의로 인해 인성교육은 더더욱 어렵게 된다. 뿐만 아니라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학생이 늘어나고 학부모들은 엄청난 사교육비부담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지금은 교원과 학부모가 토론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내 자식이 일류대학에 입학만 할 수 있다면 모든 게 용서되고 또 감수하겠다는 학부모의 약점을 이용해 교원과 학부모의 싸움으로 몰아가려는 교육부의 의도를 똑 바로 파악해야 한다. 교육주체인 학부모와 교사, 학생들은 교육부가 시도하려는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교육 장악 음모를 분쇄하고 교육권을 지켜내는 싸움을 해야 할 때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