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서 홀로 외롭게 살아온 소녀
살인사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
시련·편견 속 흐르는 8번 소나타
어둡고 서글픈 감정 더 깊게 이끌어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생태학자 델리아 오언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평생 야생을 연구해 온 델리아는 이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가로 이미 유명했다. 7년에 걸쳐 아프리카 야생을 관찰한 결과물인 <야생 속으로>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며 각종 자연 과학 학술지에서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그런 그녀가 일흔의 나이에 쓴 첫 소설로 평생 습득한 생태 지식을 풀어놓으며 데뷔작임에도 2019년 가장 많이 팔린 책, 뉴욕 타임스 40주 연속 베스트셀러로 기록된다. 생태학자의 소설. 일흔의 나이, 평생 자연을 연구하며 깨달은 바를 전하는데 그녀는 소설을 택했다. 그렇다면 왜 논문에 익숙했을 학자가 소설의 양식을 빌렸을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길래 말이다. 아마도 작가는 이성적 접근의 한계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 이제는 이야기와 은유를 사용, 감성에 기대어 다급하고도 중대한 메시지를 인류에게 전하려 한다. 

영화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중 한 장면.

영화가 시작되면 한 여성의 내레이션이 들려온다. 

◇"습지는 늪이 아니다." 

하지만 굳이 존재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습지 곳곳에는 진짜 늪이 있다."

때는 1969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위치한 어느 해안의 습지 지역에서 한 구의 시체가 발견된다. 마을에서 꽤 유명한 청년 체이스의 시신이다. 사인은 오래된 소방망루에서의 추락이라 단순한 사고사로 추정되지만 사고 이전의 상흔도 보이는 데다 말끔히 치워진 사건현장이 의문을 더하는 가운데 경찰과 마을 사람들의 의심은 카야에게로 향한다. 그렇게 잡혀 온 카야. 마을의 친절한 변호사는 그녀를 도우려 하지만 도대체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러다 조개 관련 책을 펼치며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때는 거슬러 올라가 1953년, 어린 카야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평화로운 자연 속에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다. 아버지의 폭력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 지독한 트라우마를 겪은 듯한 그의 폭력은 가족 모두를 향했다. 그러다 견디지 못해 엄마를 시작으로 하나 둘 떠나간다. 아니 폭력을 피해 달아난다. 믿었던 오빠마저 떠나 혼자 남은 카야. 그렇게 방치된 어린 소녀는 홀로 아버지와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의 편지를 받아본 아버지는 어떤 내용이었는지 분노하며 편지와 함께 엄마의 모든 흔적을 태워버리곤 카야를 버려둔 채 떠나버린다. 완전히 혼자가 되어버린 카야, 그렇게 소녀는 습지로부터 얻은 것들로 삶을 꾸려가기 시작한다. 

장면은 현재로 바뀌어 재판을 받는 카야를 비추고 상황은 그녀에게 불리하게 흘러간다. 습지에 홀로 사는 이는 그저 괴이하고 두려워 피해야 할 존재일 뿐인 것이다. 

영화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중 한 장면.

그리고 1962년의 이야기, 어느덧 소녀에서 숙녀로 자란 카야는 여전히 습지의 여인이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온 테이트. 어릴 적 아버지의 폭력에 어린 몸으로 대항하던 당찼던 오빠의 친구다. 새의 깃털을 매개로 조심스레 다가온 테이트, 그는 그녀에게 글을 가르쳤고 그렇게 둘은 가까워져 간다. 외로움이란 감정 외의 새로운 감정에 눈을 뜨는 카야. 행복한 시간이 이어졌으면 좋으련만 세상에 속한 테이트는 자신의 미래를 위한 길을 가야 한다. 그렇게 테이트는 그녀로부터 사라졌다. 

◇"자연에서 변치 않는 건 변한다는 것뿐"

재판이 거듭될수록 카야의 범행에 증거 없음이 명확해지지만 남은 문제는 그녀를 향한 편견이다.

1968년, 동네의 망나니 체이스의 관심이 그녀를 향한다. 동네에 소문난 양아치지만 처음부터 카야의 순수함을 해하려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본성을 드러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온통 거짓말로 그녀를 대하는 데에다 그녀의 모든 것을 정복하려 한다. 한편 다시 돌아온 테이트, 그는 체이스와 행복해하는 카야의 모습에 쉬 다가가지 못하지만 그녀를 향한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던 어느날 카야는 체이스의 본색을 알게 되었고 벗어나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당최 놓아주지를 않는다. 그러다 결국 폭행까지 당한 카야. 과연 그녀는 체이스로부터 달아날 수 있을까? 아니 달아나기는 할까? 그렇다면 체이스는 사고사일까, 타살일까? 타살이라면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 

출판사 담당자들과 저녁시간. 그동안 그려왔던 습지 생물들의 모습과 오랜 기간 습득한 생태에 관한 이야기들을 엮은 그림과 글을 출간하기로 결정, 이를 축하하는 자리다. 당연 생태에 관련한 여러 가지 얘기가 오가고 그러던 중 수컷을 잡아먹는 암컷 사마귀의 이야기가 화제로 오른다. 출판 담당자는 멀리해야겠다며 농담을 건네고 한쪽에선 도덕이 없다며 비아냥거린다. 그리고 이때 카야는 전혀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한다. 

◇"자연에 어두운 면이 있는지 모르겠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의 '생존을 위한 독창적 방식'을 옹호하는 순간. 

영화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중 한 장면.

이때의 장면을 배경으로 경쾌하고도 유려한 피아노의 선율이 들려온다. 너무도 작게 들려와 쉬 알아채기 힘듦에도 왜 굳이 소개하려는지 이유를 묻는다면 영화에서 갖는 이 장면의 중요성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맞이할 반전의 복선이 오롯이 담긴 카야의 주장. 그리고 이때 식당 안을 울리던 선율은 바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8번 가단조 (Mozart, Piano Sonata No.8 in a minor, K.310)이다. 

모차르트가 남긴 19개의 피아노소나타 중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라면 역시 마지막 악장이 터키 행진곡으로 유명한 제11번 K.331일 것이다. 하지만 최고의 명작이라면 늘 거론되는 것이 바로 제8번 소나타이다. 이 작품은 1777년 고향인 잘츠부르크를 떠나 1778년 3월 파리에 도착한 이후 이어진 6개월간의 파리 체류기간에 작곡되었다. 모차르트에게 이 시기는 결코 행복했던 기억일 수 없다. 그곳에서의 인기가 다른 도시들과는 달라 음악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했고 좀체 나아질 기미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오랜 여행에 지친 어머니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갔고 그러다 결국 그해의 7월 세상을 떠나고 만다. 평생 처음 가깝게 죽음을 목도하는 상황에서, 그것도 사랑하고 의지하던 어머니였다니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그의 피아노소나타 8번은 바로 이러한 시기에 탄생했다. 그래서일까? 젊은 모차르트의 선율에 어두움이 서렸다. 현실에 대한 분노였는지 악보엔 휘갈겨진 음표로 가득했고 또 그만큼의 감정이 터져 올라 격정이 넘친다. 

흔히 모차르트를 천재라 일컬으며 그가 창조한 음악들은 햇살로 가득하다 여긴다. 하지만 단연코 모차르트는 슬픔의 작곡가이다. 밝은 햇살 속을 거니는 듯 밝다가도 문득 내어 비치는 서글픔. 너무도 아름답기에 슬픈 그의 음악들. 하여 그의 수많은 걸작들 중 최고의 작품들은 단조(Minor)로 가득하다. 교향곡 25번, 40번. 피아노 협주곡 20번, 24번. 그리고 바로 피아노 소나타 8번이다. 

<2편으로 계속>

/심광도 뮤직파라디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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