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창원지법 판결문 5건 살펴보니
근저당권 설정 이후 임대차 계약 강행
금융 채무 못 갚은 채 보증금 돌려막기
담보대출 허점 노려 은행 속인 범행도

빌라 수백 채를 사들여 전세 사기 행각을 벌인 이른바 '빌라왕 사건'을 계기로 행정과 수사기관은 지난해부터 점검과 수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보다 피해 규모는 작더라도 전세 사기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요? 지난해 창원지방법원 판결문 5건에서 전세 사기 유형을 살펴봤습니다.

◇근저당권 잡혔는데 속여 = 빌라나 아파트에 금융기관 근저당권이 잡혔는데도 세입자를 속인 이들은 징역형을 받았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ㄱ 씨는 지난해 8월 마산지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80시간 사회봉사 명령을 선고받았다.

ㄱ 씨는 2014년 창원시에 다가구주택 '○○빌'을 지었고, 채권최고액 9억 2300만 원으로 한 신협에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한 임차인은 한 호실에 2016~2018년 보증금 1억 1000만 원으로 전세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ㄱ 씨는 '담보 빚이 7억여 원인데 일부를 갚을 예정이어서 실질적인 대출금은 4억 원'이라고 속였다.

그러나 당시 ㄱ 씨가 건축 중이던 메디컬센터는 전혀 분양되지 않았고, 빌라 임차인들의 전세 보증금으로 근저당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여유 자금이 없어 신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받아 기존 세입자에게 반환하는 '돌려막기' 방식도 썼다.

밀린 보증금이 7억여 원이었고, ㄱ 씨는 매달 대출이자로 350만 원을 내야 했다. ㄱ 씨는 이 사정을 신규 세입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양석용 부장판사는 양형 이유에서 "전세보증금 편취는 삶의 근간이 되는 주거의 안정성을 해치는 것으로 그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근저당 빚 갚을 여력 없어 = 밀양시 아파트 한 호실 소유자인 ㄴ 씨는 지난해 8월 밀양지원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ㄴ 씨는 임차인과 2020~2022년 보증금 1억 1000만 원으로 계약을 맺으면서 채권최고액 9750만 원인 근저당권 설정 등기를 말소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이를 지키지 못했고, 이후 잔금을 쪼개 3개월 뒤에 받기로 하면서 말소해주겠다고 다시 약속했다.

당시 ㄴ 씨는 가족과 친척에게 1억 3000만 원을 빌려 갚던 상황으로, 근저당 빚을 갚을 여력이 없었다. ㄴ 씨는 다행히 피해자와 합의했고, 재판부는 이런 점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

◇경기 침체가 사기로 = 지역 경기 침체 여파가 부동산 사기 범행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ㄷ 씨는 지난해 11월 통영지원에서 징역 5개월에 집행유예 2년, 40시간 사회봉사 명령을 선고받았다.

ㄷ 씨는 2017년 4월 한 빌라에서 계약이 끝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줘야 했는데, 조선 경기 불황으로 신규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보증금 3500만 원으로 새 세입자가 들어왔고, ㄷ 씨는 계약이 무산될까 봐 기존 임차인들의 보증금 현황이 없는 것처럼 계약서에 빈칸으로 남겨뒀다. 하지만 기존 임차인들이 돌려받을 보증금은 5억 원 상당이었다. ㄷ 씨는 '설정된 근저당권이 4억 9200만 원밖에 없고 대부분 월세고 저당 잡힌 금액보다 건물가액이 훨씬 높아 보증금은 걱정할 것이 없다'고 세입자를 속였다.

김창용 판사는 양형 이유에서 "피해자가 재산적·정신적으로 상당한 고통을 느꼈을 것으로 보이므로, 피고인의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피해자가 임대차 건물 경매 절차에서 1500만 원 상당을 배당받아 일부 피해가 회복된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

◇허위 담보 대출에 전전세 사기까지 = 이 밖에도 근로자 주택전세자금 대출 제도 허점을 노려 대출브로커 등 지시에 따라 시중은행에서 전세자금을 받아낸 ㄹ 씨는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ㄹ 씨는 10여 년 전 서울 노원구 한 아파트를 임차할 생각이 없음에도, 허위로 작성한 1억 3000만 원 아파트 전세계약서, 재직증명서 등을 은행에 제출해 7960만 원을 받은 혐의였다.

중고거래 사이트에 '원룸 전전세'를 올려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회사를 옮기게 돼 남은 계약 기간 거주할 사람을 구한다. 집주인에게 알리지 말고 그냥 살면 된다'고 피해자를 속여 두 달간 월세 60만 원을 받아 식비와 술값 등으로 쓴 ㅁ 씨는 법원에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ㅁ 씨는 이직이 아니라 형사 재판으로 구속될 위기에 있었고, 스포츠 복권 도박으로 빚도 1억 6000만 원이 있었다. 월세도 밀린 상태였고, 통장 잔고는 1000~2000원 수준이었다.

한편 경남경찰청은 지난해 7월 말부터 올해 1월 말까지 전세 사기사범 1차 단속 결과 30건을 수사해 40명을 검찰로 넘겼다. 오는 7월 24일까지는 2차 단속 기간이다. △악성 임대인 △컨설팅 업자 등 배후세력 △전세대출자금 편취 △불법 감정·중개행위 등 4대 유형 '전세 사기'가 중점 대상이다.

/이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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