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공유공간 카페서 취미 모임 시작
할머니 작품전 계기로 동네 굿즈 상품화
한정희 활동가 법인 설립 후 이사장 맡아

“진주 관광의 시작과 끝점이 되는 로컬스토리편집숍 배건네공작소입니다.”

지난달 27일 만난 한정희(41) 우주협동조합 이사장이 한 문장으로 표현한 공간에 대한 설명이다.그 말 속에는 배건네공작소 역할과 목표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다.

 

한정희 진주 우주협동조합 이사장. /박정연 기자
한정희 진주 우주협동조합 이사장. /박정연 기자

진주 망경동에 있는 배건네공작소. ‘배건네’는 ‘에나’처럼 진주 고유 말이다. 촉석루가 있는 진주성 안에 사는 사람들은 옛 시절 남강 건너편을 ‘배건네’라고 불렀다. 다리가 없었을 때 배를 타고 오가던 동네라 그리 칭한 것이다. 지금은 망경동·강남동 일대를 일컫는 말이 배건네다.

한 이사장은 경험치가 많은 사람이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덕분에 미술이나 상품화할 수 있는 감각을 가졌다. 후에는 대학에 다시 입학해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사회복지사로도 일했다.

“아이 셋을 낳고도 일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사회복지사 일은 그만뒀지만 사람들 속에서 제 존재감을 찾게 되었습니다. 캘리그래피 강사로 활동하면서 그림을 통해 아이·성인·노인들과 여러 형태의 정서적 교감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리하다가 남편과 우리가 사는 동네 골목에 단순한 카페 말고 공유공간을 만들어 보자고 합심해서 10평 남짓한 1층 공간을 얻은 거죠.”

'배건네공작소' 브랜드 로고. 진주의 이야기를 담은 공북문, 진주성, 의암, 촉석루, 청동기, 나룻배, 물고기, 망진산봉수대를 표현했다. /우주협동조합
'배건네공작소' 브랜드 로고. 진주의 이야기를 담은 공북문, 진주성, 의암, 촉석루, 청동기, 나룻배, 물고기, 망진산봉수대를 표현했다. /우주협동조합

2017년 공유공간에서 출발한 배건네공작소는 주민에게 아지트이자 놀이터 같은 곳이다. 10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하나와 차와 음료를 마실 수 있는 2인용 테이블 2개가 전부인 그곳에서 수많은 모임이 이루어진다. 그림·독서·필사 모임부터 영어회화·팝송 부르기 모임까지 다양하다. 어느덧 마을전시회를 열고 동네굿즈를 만드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지난해 ‘우주협동조합’ 법인 등록을 마치고 배건네공작소는 브랜드명으로 쓰고 있다.

“처음부터 편집숍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림 모임을 꾸준히 가져가다 보니 우리 동네의 정취가 담긴 작품들이 나오면서 컵이나 엽서, 지도로 제작해 보니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로컬콘텐츠를 발굴하고 디자인하는 작업들을 주민들과 하게 됐습니다.”

 

배건네 할머니 그림 모임 활동. 2019년 시작해 매월 1~2회씩 모여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우주협동조합
배건네 할머니 그림 모임 활동. 2019년 시작해 매월 1~2회씩 모여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우주협동조합

그림모임에 참여한 주민들이 그린 결과물을 모아 2019년 연말 전시회를 열었다. 이듬해는 목공 화분 제작·망경동 골목 머그컵 만들기 등 ‘진주시 도시재생대학’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2021년에는 ‘배건네 할머니 그림을 만나다’ 전시회도 열었다. 전시회 엽서에 적힌 김행덕 씨 글을 일부 옮겨본다.

“망경동에는 60년째 살고 있지. 큰애가 60살이니까 그 밑으로 59, 57…. 모르겠다. 하여튼 5명을 여기서 키우고 천전초등학교 보내고 했지. 옆에 아귀찜 사장이 그림을 그려보자 해서 그렸지. 그림은 생전 처음이야. 재밌어. 나는 나중에 망경북동에 대해서 이것저것 그리고 싶어. 그림 그리면서 젊어진 것 같아.”

김덕남·김행덕·손상옥·이양자·이주희 5명의 60~80대 여성들은 망경동에 살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그림 안에 정성스레 쏟아냈다.

한 이사장은 “할머니 그림 모임은 여러 모임 중 하나로 2019년 시작했는데 지금도 격주 또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그린다”며 “색연필과 스케치북에서 출발한 작업이 어느덧 아크릴 물감과 캔버스에서 작업할 정도로 자신감도 실력도 꾸준히 키우고 계신데 어르신들 그림을 바탕으로 장바구니를 만들었는데 금세 동났다”고 말했다.

이러한 활동들이 쌓여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하는 ‘2021년 관광두레 스토리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올해는 진주시에서 진행한 문화도시 공모사업 중 하나로 한복을 활용한 일상복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오는 29일 유등축제 기간에 주민 패션쇼 준비에 한창이다.

 

8~9월 '오랜된 한복으로 일상복 만들기' 활동에 참여한 진주시 망경동 주민들. /우주협동조합
8~9월 '오랜된 한복으로 일상복 만들기' 활동에 참여한 진주시 망경동 주민들. /우주협동조합

“진주 하면 한복을 많이 떠올리죠. 안 입는 비단 한복을 꺼내 일상복으로 리폼해서 입으면 어떨까 싶었어요. 대신 진주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일상복으로 만들고 동네에서 패션쇼를 해보면 어떨까 싶어 기획하게 됐습니다.”

모든 활동들이 우주협동조합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머니 그림전시회 초대 엽서에 이름 올린 연대공간만 보더라도 골목에 깃든 문화공동체 힘을 알 수 있다. 소소책방·동훈서점·유등사랑채·인트로망경·천사미용실 등 20곳 정도가 품앗이를 했다.

/박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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