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하동군 금남면 시골마을 귀촌

하동과 남해 사이를 가르는 노량해협의 잔잔한 바다 풍경이 바라보이는 조용한 시골마을 하동군 금남면 대치마을. 앞쪽으로는 바다가, 뒤편으로는 금오산 자락이 병풍처럼 마을을 감싼 고즈넉한 곳이다. 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터에 자리 잡은 하얀색 집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 사회의 과도한 경쟁 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대안 교육과 생태경제 중요성을 알리고 실천해 온 사회운동가 강수돌(61)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가 제2 인생을 설계하며 이제 막 뿌리를 내린 곳이다.

지난해 2월, 25년간 몸담았던 학교를 떠난 그는 미리 봐두었던 이곳을 고향으로 삼아 집을 지었다. 정년이 아직 수년 남았지만 고단했던 학교생활과 투쟁에 가까운 오랜 사회 활동은 심신을 지치게 했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새로운 환경과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껴 귀촌을 선택했다.

그의 원래 고향은 이곳처럼 바다 전망이 좋은 창원시(옛 마산시) 신월동 한 달동네다. 나이가 들면 귀소본능이 강해진다고들 한다. 그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예전 같지 않은 그곳으로 갈 수 없어 어린 시절 고향과 비슷한 환경을 닮은 이곳에 정착했다.

하동군 금남면 시골마을에 귀촌한 강수돌 전 고려대 교수가 집 앞에 있는 텃밭을 일구고 있다. /허귀용
하동군 금남면 시골마을에 귀촌한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가 집 앞에 있는 텃밭을 일구고 있다. /허귀용 기자

"마산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 집이 다 팔리고 정리가 되어서 다시 갈 수 없었다. 항상 가고파 마산 앞바다가 머릿속에 있었다. 고향으로 가고 싶은 마음에 가장 비슷한 곳을 찾았다. 여기 풍광이 내가 자란 마산과 비슷하다."

평생 경영학과 교수라는 직함을 달았기에 시골 삶은 왠지 낯설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세종시(옛 충남) 조치원읍에 있는 고려대 세종캠퍼스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학교 인근 시골 마을에 귀틀집을 짓고 텃밭을 일구는 삶을 살았다. 집 짓기 적당한 땅에 단아한 2층짜리 집을 올린 건 올해 3월. 그래서 흔쾌히 남쪽 바다 끝 시골을 선택한 아내와 단둘이 오자마자 먼저 한 일이 땅 절반을 텃밭으로 꾸미는 거였다. 풋고추, 배추와 상추, 쪽파, 방아를 심으며 가꾸는 건 빼놓을 수 없는 하루 일과 중 하나이자 옛 추억을 되새기는 소중한 일이다. 집 밖 한쪽에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냄새 나는 '푸세식' 화장실을 개조해 똥과 오줌을 분리해서 임시 저장하는 형태의 생태 화장실을 설치했다. 퇴비로 만들어 텃밭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생태경제의 작은 실천이다.

"이곳에서 노후를 보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텃밭을 일구면서 사는 삶이다. 예전에 어머니가 살아계실 적에 정구지(부추)나 방아 같은 걸 키우셨는데 텃밭을 일구는 자체가 어머니의 살아 있는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이 기후위기 시대라고 하고 여러 가지 환경 문제가 있다. 그래서 덜 사고 덜 버리는 게 첫 번째 모토지만 더 중요한 건 생태 화장실을 통해서 흙으로 돌리는 거고, 그다음이 텃밭에서 작물을 길러 먹는 즐거움이다."

귀촌 성공 여부는 흔히들 원주민과의 관계 설정에 달렸다고 한다. 원주민과의 원활한 소통과 그들 삶에 스며들면서 동화하는 과정이 귀촌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뜻일 게다. 그에게도 쉽지 않은 숙제 같은 일이었지만 교수 시절 조치원읍 신안리에 살면서 5년간(2005~2010년) 마을 이장을 했던 경험은 큰 힘이 됐다.

마을이장으로서 원주민과 함께 아파트 건설 사업의 부조리와 싸우며 마을공동체 중요성을 알린 과정을 그의 저서 <나부터 마을 혁명>에 자세하게 적어놨다.

"지난 5년간 싸움은 마을 모퉁이에 조용히 살던 나를 비로소 온전한 마을 주민이 되게 했다. 이장이 되어서가 아니다. 마을과 자연을 지키는 싸움에 다른 주민들과 함께 혼신을 다해 동참한 과정이 핵심이다."

지난달 1일 진주문고에서 열린 '부디 제발' 북토크에서 강수돌 전 교수가 강의를 하는 모습. /허귀용
지난달 1일 진주문고에서 열린 '부디 제발' 북토크에서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가 강의를 하는 모습. /허귀용 기자

때론 교육자, 때론 사회운동가, 때론 마을이장일 때 동지처럼 늘 따라다녔던 투쟁 같은 삶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하동에 정착한 지 불과 5개월 만에 마을 인근에 추진 중인 송전선로 건설사업이 불거졌다. 

이 사업은 한전이 2018년에 시작했지만 주민 피해가 명백한데도 깜깜이 사업처럼 추진되면서 그는 물론 주민 대부분이 최근에야 알게 됐다. 사업 관련 주민 설명회를 며칠 앞두고 부랴부랴 주민들을 모아 대책을 논의하며 망설임 없이 총대를 멨다.

"어찌 보면 내가 운명적으로 이 동네에 왔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인간이 사는 사회가 사건이 없는 데가 없는 것 같다. 문제는 우리가 외면할 것인가 직면할 것인가에 있다. 내 일신이 피곤해지더라도 직면하고 정면 돌파하느냐, 아니면 아이고 모르겠다 하며 그냥 외면할 것인가. 그게 문제다. 내 양심에 따라 쓰는 글이나 말들이 채찍질이 되어서 언행일치하도록 살자는 게 내 삶의 철학이다."

마을공동체를 지키고자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을공동체를 위한 다른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 지역 소멸 위기에 직면한 군 단위, 특히 인구가 급격히 주는 시골마을의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마을에 100년이 넘은 폐교가 있다. 굉장히 전통 있는 학교였는데 인구가 줄면서 폐교됐다고 하더라. 폐교를 활용해서 교육문화 공간으로 쓰면 좋을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활용한다는 얘기를 듣긴 했다. 혹시라도 문화 프로그램 공간으로 쓴다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르신들 글쓰기 교실도 할 수 있다. 주변에 외국인들이 일하러 온다고 하더라. 통역이 필요하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다. 하여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활용하도록 이장이나 주민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귀촌한 이후에도 강의 활동을 꾸준하게 하고 있다. 최근에는 그동안 썼던 글을 철학적으로 정리한 <부디 제발>을 책으로 엮어 출간했다. 이 책은 그가 늘 강조하고 실천해 왔던 탈자본, 탈경쟁의 교육, 탈성장의 생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희망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람을 구하고 세상을 구하려면 경제 가치 너머의 인간 가치나 생명 가치를 생각하면서 살자. 이 책에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송전탑 문제도 결국 그것하고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게 자동차 이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어서 먼 곳은 온라인 강의를 하고 인근 지역 위주로 직접 강의를 하려고 한다."

 /허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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