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창원조각비엔날레 참여 지역 작가
조각 전공했지만 작품 활동 무지개처럼
색 연구 집중...공간과 구조 탈피한 실험

“사람들은 벽에 둘러싸여 삽니다. 높은 고층 아파트를 선호하면서, 대부분 그곳에 사는 삶이 최고라고 여기지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강가를 걷는데 잔디 위에 놓인 작품을 발견합니다. 크기는 시골의 작은 집 한 채 만한 크기고 벽의 사방이 뚫려 있는데, 색깔도 알록달록 화려하다면요. 그 안에 들어가 보니 틈으로 햇살이 비치고 강바람도 기분 좋게 얼굴을 스친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수도 할 필요도 없지만, 공간이 주는 다른 매력을 선물했다면 작가의 미션은 제법 성공한 것이 아닐까요.”

이문호(51) 작가는 오는 7일 개막하는 ‘2022 창원조각비엔날레’ 참여 작가 중 한 명이다. 지난달 17일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 작업실에서 만나 30년 가까이 미술인으로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문호 미술가를 지난달 17일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박정연 기자
이문호 미술가를 지난달 17일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박정연 기자

◇설치 작품이 갖는 힘 = 앞서 강가에 작품을 설치한 이야기는 이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다. 울산에서 열린 ‘2020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에 참여한 바 있는 그는 당시 ‘당신 곁에 있는(On the other side of you)’이라는 나무 패널을 설치했다. 크기는 높이 360×너비 360×깊이 480㎝로 노랑·분홍·보라·파랑으로 각 벽면을 칠한 작품이다.

“태화강 설치 작업은 벽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뚫어 버린다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동시대에 어떤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고민을 합니다. 어떻게 하든 사회를 변화시키고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은 바람이 있죠. 예전에는 돌려서 이야기하는 방식을 스스로 취했다면, 이제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식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문호 작 ‘당신 곁에 있는(On the other side of you)’. /이문호

창원에서 열리는 6회 조각비엔날레, 참여는 이번이 처음이다. 주최 측 섭외로 참여하게 된 이 작가는 ‘더 라스트(The last)’라는 작품을 마산 3.15해양누리공원 야외 설치로 선보일 예정이다.

“누구나 보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받아들였으면 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직관적인 방식으로 표현해야 했기에 외부 광고판 형식으로 ‘더 라스트’를 준비했습니다. 닫힌 공간인 갤러리가 아닌 드넓은 공원에서 남녀노소 시민 모두가 본다는 생각에 설레고 기분 좋은 긴장감이 감도네요.”

◇조각 전공했지만 작품 활동은 카멜레온 = 처음에는 대학 입시로 디자인 전공을 준비했다가 낙방하고, 조소과로 방향을 바꿨는데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더 잘 맞는 작업 방식이었다. 무엇이든 빠르게 속도를 내는 어떤 것에는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는 그였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어요. 예고를 다닌 것도 아니었고, 진로 선택을 해야 하는데 어릴 적부터 그림도 잘 그리고, 만들기도 잘하고 해서 미대를 가야겠다고 생각을 정리했죠. 부모님께 설명을 드렸고, 17살에 처음 미술 학원 문을 두드렸습니다. 입시 준비를 하는데 시험장에 가면 작품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지도 못하고 헤어드라이어로 작품을 말린다든지 온갖 행동을 하는데 그 과정이 저랑 맞지 않더라고요. 디자인 전공으로 가려 하다가 삼수를 하게 됐는데, 조소과 작업 방식을 보니 빠른 템포가 아니라서 저와 맞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길을 선택한 거죠.”

이문호 작 'Wallless space & picture'. /이문호
이문호 작 'Wallless space & picture'. /이문호

이 작가는 1998년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2007년 독일 쿤스트 아카데미 뮌스터 아카데미브리프 석사를 마쳤다. 9년간 독일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곧장 서울시립미술관 난지창작스튜디오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귀국 전부터 레지던시 작가에 응모하려고 준비를 했었습니다. 검증된 기관이고 그곳을 통해 정보력도 생기고 여러 작가와 교류하고 네트워킹 가능한 결집의 장소니까요. 그렇게 해서 2008년 서울시립미술관 난지창작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이듬해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오픈 전시 ‘신호탄’ 때 참여하기도 했고 돌이켜 보니 귀국하고 빈틈없이 지냈네요.(웃음)”

독일에 있는 동안 생활이 쉽고 여유 있지는 않았다. 캔버스 작품들이 아니라 크기도 크고 보관하는 창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동 문제 때문에 분리하는 방법도 늘 작품 설계 단계에서 고민해야 했다.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하나의 원인 또는 걸림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지라 설치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서 사진전 형태로 선보이는 작업도 했다.
 

◇미술은 물음표, 질문하는 작품들 = 이 작가의 작품에는 아파트를 시리즈로 하는 작품이 많다. 대신 우리가 알고 있는 회색빛 건물이 아닌 형형색색의 다양한 형태의 아파트 말이다.

“주변 환경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대안적인 공간에 대한 고민이 많은 편입니다. 아파트는 결국 인본주의에 기초해 생각해 보면 가장 비인간적인 건축 구조물이거든요. 모더니즘 건축의 시초라 불리는 인물인 ‘르코르뷔지에’가 프랑스 재건 당시 아파트라는 건축 방식을 제안했을 때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많은 건축가가 도시 인구 밀도가 높아지자 미래형 삶이라며 아파트 단지를 만들었는데 계층이 만들어지고, 알다시피 동별로 평수도 다르지 않습니까. 사람이 사람을 경계하고 멀리하고 사건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결국 도시 슬럼화 단계까지 이르게 되는 현상을 세계 곳곳에서 목도하고 있는 현실이지요.”

그의 기존 작품들은 색깔이 화려하다. 인간에게 미치는 색깔의 영향에 관심이 많고, 그래서 작품에 다양한 색을 구현한다. 창원조각비엔날레에서는 대형 설치 작품을 선보이지만 오는 12월에 여는 개인전에는 캔버스·사진 등 다양한 형태와 요소들로 이루어진 작품을 내보일 계획이다.

/박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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