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서 4년째 아동안전지킴이
석전·북성·내서초교서 활동
차량 통제·고민 들어주기도
"손자 돌보는 마음으로 임해"

2019년부터 아동안전지킴이로 활동하는 황계림 할아버지가 지난 23일 북성초등학교 앞에서 웃어보이고 있다. /박신 기자
2019년부터 아동안전지킴이로 활동하는 황계림 할아버지가 지난 23일 북성초등학교 앞에서 웃어보이고 있다. /박신 기자

교문을 막 나선 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통통 튀는 존재들이다. 그들에게 학교 밖 세상은 거대한 놀이터이기도 하다. 하지만 학교를 벗어나 이리저리 쏘다닐 수 있는 자유가 생긴 만큼 위험도 뒤따른다. 어린이보호구역이 있지만 아이들 안전을 100%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이러한 빈틈을 4년째 메워주는 이가 있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일대 학교에서 ‘아동안전지킴이’로 활동하는 황계림(78·창원시 마산회원구) 할아버지다.

황 할아버지는 2019년 우연한 계기로 아동안전지킴이 활동을 시작했다. 평소 모든 아이들을 손자·손녀처럼 예뻐했던 그는 지인의 권유로 지킴이 활동에 지원했다.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 망설임 없이 도전했다. 각 지방경찰청에서 운영하는 아동안전지킴이는 초등학교 주변을 순찰하며 아동 대상 범죄 예방활동과 안전지도를 한다. 당시 3 대1 가까이 됐던 경쟁률을 뚫고 황 할아버지는 지킴이 활동을 하게 됐다.

그는 평일 오후 2시에서 5시까지 석전초등학교, 북성초등학교, 내서초등학교에서 아이들 하굣길 안전을 책임진다. 그는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을 자기 손자처럼 대한다. 차량 통제는 기본이고 잠깐이지만 고민을 들어주고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한다.

또 그는 활동 중에 생겼던 일들을 기록한다. 크고 작은 안전사고부터 사소하게 아이들끼리 다투는 일까지 육하원칙에 맞춰 수첩에 적는다. 이는 예측불허 아이들별 특성을 파악하는 데 훌륭한 자료가 된다.

황 할아버지의 아이들에 대한 남다른 사랑은 수십 년 전 싹텄다.

그는 젊은 시절 창원공단 한 철강회사에서 생산직으로 일했다. 그는 성실하게 일했지만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회사 생활이 쉽지 않았다. 결국 동료의 억울함을 풀어주고자 회사에 항의하던 그는 1986년 부당해고 당했다. 그의 나이 42세 때다. 이후 마산자유무역지역에 있는 한 외국계 자동차 부품회사 생산관리직으로 재취업했다. 10년 넘게 안정적으로 일하던 그는 1998년 외환위기로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또다시 일자리를 잃었다. 이후 경비 노동자, 아파트 관리소장,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어렵사리 3남매를 키웠다.

그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경험을 두 번씩이나 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내 삶이 파괴되는 느낌이었다. 이때 내 아이들은 이런 일 없이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시작은 내 자식들이었지만 점점 모든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번져갔다”고 말했다.

황 할아버지는 지난해부터 활동하면서 느낀 점을 글로 옮기고 있다. 한 글자씩 손으로 정성스레 써내려간 수기다. 이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주제로 한 시도 쓴다.

그는 “내 자식이나 손자·손녀들이 나중에 내가 이런 일을 했다고 후손들에게 교육할 때 쓰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록했다. 또 부족하게나마 아동들에 대한 기록이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활동을 하다 보면 시상이 막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때는 바로바로 기록해 둔다”며 글을 쓰게 된 이유를 밝혔다.

힘닿는 데까지 아동안전지킴이 활동을 하고 싶다는 황 할아버지는 매일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 동네를 걸으며 2시간 동안 아침 운동을 한다. 이후에는 신문을 읽으며 오전을 보낸다. 그는 아동 관련 정책을 파악하고 식견을 넓히는 데 신문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황 할아버지는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맡은 구역에서는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신 기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