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해성 큰 4등급 건물 곳곳에
전체 빈집 수도 급증 '15만 채'
붕괴 및 우범 불안에 주민 초조

지자체 정비계획 올해 의무로
수립 후 절차도 수개월 걸려
당장은 직권 철거·명령 불가

경남 도내에 오랫동안 방치돼 붕괴 우려가 있는 '위험한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법에 따른 '직권 철거'도 '이행강제금 부과'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자체가 정비계획을 세우고 이를 고시한 후 6개월 지나야 철거를 명령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이 조건을 갖춘 시군은 한 곳도 없다.

◇위험한 빈집, 불안한 주민들 = 경남 도내 빈집은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 인구주택 총조사 기준 2000년 경남 빈집(아파트 공실 등 모두 포함)은 4만 1711채였지만, 2020년에는 15만 982채로 3배 이상 늘었다. 빈집은 미관을 해칠 뿐 아니라 우범지대가 되기 쉽고, 특히 붕괴 위험까지 안고 있는 골칫거리다. 

26일 오전 9시께 찾아간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창동 한 빈집도 그런 곳이다.

지난 26일 오전 찾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창동 한 빈집 벽면에 '위험' 스티커가 곳곳에 붙어 있다. /이창우 기자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느껴지는 이 건물 콘크리트 벽은 여기저기 금이 가 있다. 안을 들여다보니 철거하다 만 듯, 목재 찌꺼기가 내부 공간을 메운 상태였다. 곳곳에 '위험' '접근금지'라고 쓴 노란색 경고 스티커가 붙었다. '○○기업사'라는 낡은 현판이 이곳이 한때 기업 사무실이었다는 점을 짐작하게 했다.

이곳 건물·토지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보면 1953년 ㄱ 씨가 매매해 1988년 가족 5명에게 지분을 모두 나눠줬는데, 2015·2017년 ㄴ 씨가 경매로 모두 사들였다. 

27일 오후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창동 한 빈집. /김연수 기자
27일 오후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창동 한 빈집. /김연수 기자

인근 주민들은 새 집주인을 직접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앞집 주민은 "동네 미관을 흐리는 것도 문제지만, 빨리 철거해주든가 해야지 태풍 불 때마다 앞으로 쓰러질까 봐 가슴을 졸인다"라며 "사연이 있겠지만 빨리 조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인근에서 철물 잡화점을 운영하는 민동식(65) 씨는 "내가 어릴 때부터 있었고 동네 친구 집이었는데, 팔렸다는 이야기만 들었다"라며 "계속 방치돼 있어서 불안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창원시와 국토정보공사가 진행한 빈집실태조사 결과 4등급으로 파악됐다. 빈집 등급은 총 4개 등급으로 나뉜다. 1등급은 가벼운 수선으로 즉시 사용할 수 있는 곳, 2등급은 수선해서 쓸 수 있는 곳, 3등급은 대수선 혹은 재건축이 필요한 곳, 4등급은 주변에 미치는 위해성이 크고 재사용보다 철거 후 신축 효용이 더 큰 빈집이다.

◇철거명령 조건 충족 지자체 없어 = 4등급 판정을 받은 빈집(도시·농어촌지역 합산)은 이곳을 포함해 창원에만 43채, 경남 전역으로 범위를 넓히면 1610채나 된다. 그렇다면, 지자체는 주민 바람대로 위험한 빈집을 철거할 권한이 있을까? 

결론적으로 당장은 지자체가 소유주에게 철거를 권유하는 일 외 마땅한 방법이 없다. 도내 지자체 대부분 직권 철거는 물론, 철거명령에 필요한 법령도 충족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이하 빈집특례법)은 시장·군수가 5년마다 '빈집정비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명시한다. 또한, 시행령은 철거명령에 필요한 전제로 빈집정비사업 계획 수립 후 6개월 이상 지나야 할 것, 그리고 정확한 시점은 시도 조례로 정할 것을 규정한다. 현재 경남도는 조례로 이 기간을 6개월로 정했다. 하지만, 누리집에 빈집정비계획을 수립·고시한 도내 시군은 창원시(6월)·고성군(8월)·진주시(9월) 3곳이다. 사전 절차인 주민공람을 진행하는 곳도 의령군(8월)·김해시(9월) 2곳뿐이다. 

빈집특례법이 2018년 만들어졌는데도 아직 정비계획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는 계획 수립이 선택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의무 사항으로 바뀌자 이제 막 정비계획을 세우는 단계다. 사실상 법 개정 전까지는 법에 명시된 직권 철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지금도 조건을 충족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형편이다. 계획 수립·공람·고시 절차를 고려할 때, 시군에 따라 적어도 5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릴 예정이다. 개정법은 철거명령 미이행 때 건축물 시가표준액의 80%까지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는 자진 철거 유도 조항도 넣었지만, 역시 철거명령이 전제다. 연락 두절 등으로 철거명령을 통보할 수 없는 경우, 법에 따른 직권 철거도 할 수 없다.

◇정비계획 수립 후 제도 작동 지켜봐야 = 강예지 창원시 주택정책과 주무관은 마산합포구 4등급 빈집과 관련해 "소유주와 계속 연락을 취하면서 자진 철거를 유도하고 있지만, 정비계획 고시 후 6개월 지난 내년 2월쯤 철거 명령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며 "개정법에 맞춘 창원시 빈집 조례 개정도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조문정 사천시 건축관리팀 주무관은 "올해 빈집 실태조사를 마무리했고, 이를 토대로 내년 정비계획 수립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정비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철거 명령을 내릴 근거가 아예 없지는 않다. 지방건축위원회 심의를 거치면 가능하다는 단서 조항도 있다. 하지만, 강제 철거는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어 이 방법을 활용하는 지자체는 거의 없다. 

오영동 창원시 주택정책과 공영주택담당계장은 "이행강제금 부과로 자진 철거를 유도할 수 있는 개정법이 만들어졌기에, 내년부터는 적극적으로 조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바뀐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희선 경상국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개인 재산권 문제여서 지자체가 철거를 쉽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바뀐 제도가 현실에서 얼마나 작동할지 알 순 없지만 악성 빈집들을 찾아서 그중 몇 곳이라도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보다 먼저 이 문제를 겪은 일본은 일정 기간 이상 빈집으로 남은 곳은 강제 철거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라고 덧붙였다. 

일본 '빈집대책 특별조치법'에는 '특정 빈집'으로 분류된 위험한 빈집을 철거하고 나서, 철거 비용을 소유자에게 청구하는 내용도 있다. 

조형규 창원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도시재생사업 경험에 비추어 보면, 빈집 정비 제1원칙은 철거"라며 "주민 생업을 위한 카페 등 시설을 만들어도 운영비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고, 빈집 소유자가 계약 기간이 끝나자마자 방치해 또다시 흉물이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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