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확장하는 힘 키우는 글쓰기
부족해도 자유롭게 표현하며 성장

글을 쓴다는 건 엉덩이의 힘이라고도 한다. 한 줄의 글을 쓰고자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는 생각과 씨름하다 보면 시간은 훌쩍 흐르고 만다. 머리를 쥐어뜯다가 자신이 없어 금세 그만두기 일쑤다. <경남도민일보> 9월 19일 자 13면에 '진작에'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첫 문장은 "아가씨, 미안하지만 잠깐 이거 좀 봐줄 수 있습니까?"였고, 마지막 문장은 "진작에 알았더라면…"이었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의 어려움이 담긴 사연이었다. 짧은 글에서 긴 여운이 감돌았다.

글을 모르면, 불편을 겪고 서러움을 당하고 손해를 본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한국전쟁을, 급격한 산업 성장시대를 살아낸 이들 중에 글을 모르는 분도 많다. 구순을 바라보는 엄마가 던지는 고지서 한 장에는 수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글을 모르는 사실을 감추고 싶어'라는 부끄러움부터 '내가 봐서 알겠나'의 자조 섞인 한숨까지 말이다. 이들이 경험한 깜깜한 세상이 어떨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살아내기조차 버거웠던 인생까지 말이다. 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글자는 몰라도 읽어드리면 뜻은 아신다는 사실이다.

요즘 학생들의 문해력이 약하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을 위해 문해 교실도 곳곳에서 열린다. 나아가 생활 문해력이 필요하다며, 미디어 문해력, 스마트기기 문해력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읽어나가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이구동성이다. 2021년 EBS는 한국의 문해력 실태를 점검하고 미래 시대 핵심역량으로 떠오르는 문해력을 키우고자 특별 기획으로 <당신의 문해력>을 제작했다. 문해력이란 단어가 언제부터 우리 삶에 이리 깊숙이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이 프로그램 이후에 많이 사용되는 것은 확실한 듯하다. 리터러시(literacy)가 문해력으로 번역되고, 이제는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에서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으로 의미가 확장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확장된 의미의 문해력에서 무엇을 떠올릴까? 출제자의 의도. 그렇다. 정답이 정해진 시험은 글쓴이의 의도보다는 출제자의 의도를 잘 알아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살다보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 일의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하고 쉽게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변별력 있는 문제라며 어렵게만 시험당해 왔다. 그래서인지 좋은 글은 뭔가 엄청난 걸 담고 있거나, 멋지게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완전하고 완벽한 것이 존재할까. 우리는 과정에 있을 뿐이다. 불완전을 통해 세상을 배워간다. 순간순간의 과정에서 작은 만족을 하고 큰 부족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성장한다.

글쓰기를 겁낼 필요 없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글이든, 말이든, 몸짓이든, 그림이든, 노래든 말이다. 그중의 하나가 글일 뿐이다. 기획서를 쓰든, 보고서를 쓰든, SNS에 글을 쓰든 우리는 늘 글을 쓴다. 글은 쓰는 이와 읽는 이의 생각을 확장하는 힘이 있다. 서툴지만 글로 정리해서 표현하는 과정, 글쓴이의 생각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키우는 과정, 모든 과정이 완벽하거나 완전하지 않지만 소중하다. 많은 이들은 나의 글에 대하여 그렇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자유롭다. 나는 뭔가 아쉬운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확장해나가고, 누군가는 나의 불완전한 글을 통해 스스로 생각을 키워나갈 것이다. 나의 글이 완벽하지 않은 이유이다.

/장진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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