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약자 정책은 어린이 중심
예산도 보호구역 수도 태부족
단체장·경찰 강화 의지 '관건'

자치단체 예산과 정책만 봐도 노인 보행권이 뒷순위로 밀려나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체장과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노인보호구역 지정과 관리는 강화된다. 최근 정부도 법으로 정한 첫 국가보행안전 기본계획을 세워 발표했는데, 고령 보행자 맞춤형 제도·기반시설 확충을 포함했다.

◇외면받는 노인·장애인보호구역 = 경남도 교통정책과는 어린이보호구역과 관련한 계획, 사업, 현황 관리를 맡고 있다. 하지만 노인보호구역·장애인보호구역 관리는 경남도 도로과 업무다.

수치를 보면 정책 무게중심이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쏠려 있음이 확인된다. 경남지역 어린이보호구역은 노인보호구역 9배 남짓이다. 어린이보호구역 1168곳(올 6월 기준), 노인보호구역 129곳(올 6월 기준), 장애인보호구역 4곳(거제 1곳·양산 3곳, 지난해 12월 기준)이다.

예산을 비교했더니 68배가량 차이가 났다. 경남은 국비와 시군비를 포함해 올해 어린이보호구역 개선사업 예산이 264억 원. 이 예산으로 과속방지턱, 안전표지, 교통단속장비 등 시설이 확충된다. 여기에 어린이 통학로 시설 개선사업으로 올해 26억 원이 책정됐다.

▲ 창원시 마산합포노인종합복지관 앞 노인보호구역에서 보행자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이동욱 기자

이와 비교해 올해 노인보호구역 개선사업 예산은 도비와 시군비를 합쳐 4억 2800만 원. 창원 2곳과 진주·김해·의령·거창·합천 각 1곳에서 안전시설 설치 등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경남도는 행정안전부가 추진해온 지역교통안전환경 개선사업을 올해부터 넘겨받아 사업비를 확보해 업무를 보고 있다. 이 사업은 어린이보호구역과 노인보호구역 개선을 포함하고 있지만, 장애인보호구역은 빠져 있다. 경남도 도로과 담당자는 "소방안전교부세 4000만 원 정도를 확보해 2020년 양산시에서 장애인보호구역 개선사업 1건이 진행됐지만, 지난해와 올해는 없었다"고 전했다.

창원시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보호구역 206곳, 노인보호구역 14곳, 장애인보호구역 0곳이다. 어린이보호구역 개선사업 10억 4500만 원에 무인 교통단속장비 설치 38억 원까지 책정됐지만, 노인보호구역 개선사업은 시도비를 합쳐 7600만 원이다. 다만 창원시는 교통정책과가 어린이·노인·장애인보호구역 관리를 모두 맡고 있다.

◇단체장·경찰, 강화 의지 보여야 = 올 4월 시행된 '어린이·노인 및 장애인 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규칙'을 보면 시장·군수는 보호구역 지정 시설 또는 장소 주출입문을 기준으로 반경 300m 이내 도로 가운데 일정 구간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지역 교통 여건과 효과성 등을 검토해 반경 500m 이내 도로도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

특히 시장·군수는 교통사고 위험에서 어린이, 노인 또는 장애인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인정되면, 조사를 거쳐 직접 지정 대상 시설 또는 장소 주변도로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 시·도경찰청장이나 경찰서장은 보호구역에서 구간·시간대별 통행금지 또는 제한, 주정차 금지, 운행속도 시속 30㎞ 이내 제한, 이면도로 일방통행로 지정·운영 등을 할 수 있다. 이는 단체장이나 경찰이 적극성을 발휘하면 보호구역을 늘리고 안전조치도 충분히 강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노인보호구역 지정 기준을 정비하고 예산도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재승 도로교통공단 울산경남지부 안전시설부 과장은 "노인보호구역이 확대되고는 있지만, 다른 사업보다 지자체에 주어지는 예산이 너무 작다. 전국 어린이보호구역은 1900억 원, 노인보호구역은 70억 원 수준"이라며 "노인보호구역은 노인복지법에 따른 노인복지시설 등이 있어야 지정할 수 있다. 하지만 노인 보행자 사고 다발지역은 전통시장이 많은 편이고, 마산어시장과 김해 부원동새벽시장 등은 해마다 이름이 올라온다"고 짚었다.

보호구역 지정은 민원에 좌지우지되는 실정이기도 하다. 지자체가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신 과장은 "대체로 마을 앞 도로에서 차량 속도를 낮춰달라거나 단속 카메라를 달아달라는 민원이 있을 때 지자체가 노인보호구역 지정을 검토한다"면서 "지난해 서울 지하철 장애인 시위 이후 찾아봤더니 도내 장애인보호구역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장애인보호구역은 주민들이 꺼리는 시설로 인식돼 잘 지정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무게 추를 노인 쪽으로" = 조은희(국민의힘·서울 서초갑) 국회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시도경찰청별 설치 노인보호구역'을 보면 경남은 100곳(올 6월 기준)에 불과하다. 경남도가 보유한 시군 현황(129곳)과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전국 18개 시도경찰청 가운데 10번째다. 충남(692곳), 충북(322곳), 경북(294곳), 경기남부(217곳)는 경남보다 2~7배가량 많다.

조 의원은 "충남은 692곳인데, 세종은 6곳이다. 지역별 지정 현황을 보면 편차가 크다"며 "어르신들의 통행이 잦은 곳이나 최근 보행 중 교통사고가 발생한 곳을 조사해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사고다발지역 안전시설을 확충하는 데 각 지자체와 부처가 힘을 쏟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행안부는 지난 8월 말 '제1차(2022~2026년) 국가보행안전 및 편의증진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도 교통사고에 가장 취약한 고령 보행자가 급증하는 상황을 고려해 교통약자 맞춤형 제도와 기반시설을 정비하기로 했다. 특히 전통시장 등 고령 보행자 교통사고 발생이 잦은 장소를 노인보호구역 대상에 포함하고, 고령 보행자 맞춤형 안전시설인 중앙보행섬, 무단횡단 방지시설 등을 확충할 계획이다.

▲ 최명 '걷는사람들' 활동가가 마산어시장 앞 횡단보도에서 노인 보행권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동욱 기자

최명 '걷는사람들' 활동가는 "1995년 어린이보호구역 제도 신설 이후 많은 투자가 있었고, 변화도 컸다"며 "이제 무게추를 노인 쪽으로 옮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 활동가는 "노인보호구역은 지정 단계에서 노인 동선, 사고 비율 등 현실적인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면서 "현재 노인보호구역은 어린이보호구역만큼 규제가 강력하지 않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최 활동가는 "예를 들면 창원시가 보행자 사고를 줄이려고 횡단보도와 차량 정지선 이격거리를 3m에서 5m로 늘이는 방안도 효과가 있는데, 마산어시장 돼지골목 앞은 2차로에 차량이 서 있으면 뒤에서 오는 운전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어르신을 못 볼 가능성이 크다"며 "어르신들의 반응도 느린 만큼 정지선을 더 뒤로 물리고 절대주차금지 구역으로 만드는 등 위협을 줄여야 한다"고 짚었다.

'창원시민의 보행권 확보와 보행환경개선에 관한 조례'는 지난해 5월 개정을 거쳐 어린이보호구역 개념을 학교 주변뿐만 아니라 통학로까지 확장했다. 이 조례 제9조(어린이 통학로 개선)는 '시장은 학교주변지역을 중심으로 어린이들이 불편 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어린이보호구역 지정 △교통 통행방법 개선에 따라 어린이 통학로를 개선한다'고 돼 있다.

최 활동가는 "도시뿐만 아니라 외곽 지역, 지방도로 관심을 확대하고, 노인 보행자 사고 지역을 중심으로 야간 조명 설치사업 등을 진행해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람 중심으로 사업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 노인 보행자 관련 조항도 조례에 명시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동욱 기자

 

※ 이 기사 취재보도는 경남도민일보 후원회원이 제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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