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스러질 운명 알면서도
서로 끌리는 애절한 마음
말러 교향곡 4악장으로 표현

연인 향한 열망+죽음의 고뇌
낭만적이면서도 쓸쓸한 곡

<헤어질 결심>을 보았다. 마침내!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로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영화들이 보내온 아카데미에서의 낭보에 비하면 놀라움은 덜했다. 하지만 이번이 3번째 수상이기에 그랬을 뿐 작품성과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칸영화제가 한 수 위다. 영화 보기를 즐김에도 이러한 검증된 작품을 아껴 두고 본 것은 왜였을까? 두려움 때문이었다. 일단 감독이 심어 놓은 힌트들을 놓칠까 미리 두려웠고, 특히나 그의 특기라 할, 색으로 묘사될 은유들이 그랬다. 그래서 기다렸다. 먼저 보신 명민한 분들이 숨겨진 힌트들을 알려주시길. 물론 여러 번 보면 될 일이지만 알고 보면 좋은 영화들도 있는 법이다. 

다음으로는 음악이었다. 영화가 개봉한 후 쏟아지는 요청에 말러의 음반이 바빠졌고 정훈희 님의 목소리가 과용되었다. '도대체 말러라니, 왜? 게다가 교향곡 5번의 아다지에토?' 사용된 음악에 영화를 보기도 전에 마음이 절절해졌고 그 정도는 보아야 알겠지만 그 먹먹함이 분명 만만치 않겠지. 하니 이런 영화를 대하려면 대비를 해야 한다. 자칫하면 평온했던 감정선이 '붕괴'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헤어질 결심 스틸 컷.
'헤어질 결심' 스틸 컷.

◇"내가 그렇게 나빠요?" = 구소산 아래서 발견된 한 남자의 시신, 형사인 해준(박해일)은 정상에서 추락한 것으로 보이는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실족에 의한 사고일 가능성이 높지만 사망자의 아내가 시신을 확인하러 오는 순간 모든 상황이 바뀐다. 손등의 상처도 의심스럽지만 그보다 남편의 죽음에도 전혀 심정적 동요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서래는 용의자가 되었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해준의 마음에 그녀가 자리 잡았다는 것.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품은 해준은 이제 잠복이라는 면죄부를 쥐었기에 그녀의 주위를 맴돌 수 있다. 피의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의심보단 관심이었고 그것이 자라 사랑으로 변해간다. 아마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은 범행의 증거를 찾아 검거해야 할 형사인 데다 이미 결혼까지 한 유부남. 마음껏 사랑할 수 없는 처지이기에 애써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아니 속이는 해준. 

그러다 서래의 알리바이가 입증되고 피의자 신분에서 벗어난다. 피의자와 형사로서의 관계는 끝이 난 것이다. 하지만 여러 핑계로 서로의 애틋한 관계는 이어지고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의 결핍을 채우고 채워주며 감정은 깊어져 간다. 그러다 서래의 알리바이가 조작되었으며 그녀가 살인자임을 알게 된 해준. 그럼에도 오히려 그는 사건을 해결할 증거 인멸을 돕는다. 그동안 자신을 버텨왔던 형사의 자부심마저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준은 서래를 떠난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그리고 13개월 후, 바닷가 도시 이포. 이곳은 해준이 새로이 부임한 곳이며 그의 아내가 근무하는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불면증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그곳에 다시 나타난 서래. 과연 우연일까? 

잊지 못해 간신히 버티는 해준의 마음이 다시 요동치는 가운데 맞이한 서래의 두 번째 남편의 죽음. 그녀가 범인임을 확신하는 가운데 해준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양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또 죄를 덮어줄 줄 아느냐는 황당함이었을까? 아직도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할 거라 생각하냐는 물음이었을까? 

그리고 이어진 서래의 대답,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나쁜 놈 죽인 게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라는 대꾸인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게 그렇게 큰 죄인가라는 서러운 읊조림인가? 그렇게 이제 그녀 나름의 사랑의 방식은 영원한 봉인의 절차를 밟으려 한다. 
 

'헤어질 결심' 스틸 컷.
'헤어질 결심' 스틸 컷.

◇박찬욱 "이 곡 말고는 찾을 수 없었다" =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엔 작곡가 '말러'(Gustav Mahler·1860~1911)의 교향곡 5번(Symphony No. 5 in C sharp minor)이 등장하여 중요한 순간들을 장식하는데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교향곡의 4악장 'Adagietto - Sehr langsam(아디지오보다 조금 빠르게 - 매우 느리게)'이다. 

박찬욱 감독은 이전 작품들에서도 클래식 음악을 자주 사용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곡의 제목이 직접 언급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며 감독이 직접 인터뷰를 통해 밝혔듯 이 곡 외의 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다고 했을 만큼 영화의 분위기와도 잘 녹아있다. 

곡명이 직접 언급된 장면은 서래가 그녀의 남편 기도수를 살해하는 장면을 해준이 상상하며 쫓는 장면이다. 기도수는 자신의 등산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며 4악장이 끝날 때쯤이면 정상에 도달할 것이라고 한다. 

다음으로는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해준이 서래를 찾아가 다그칠 때이다. 죄는 덮어주더라도 이 사랑만은 끝내겠다는 결심으로 그녀를 찾아간 해준은 자신을 자책하며 이 일로 자신이 붕괴되었다며 괴로워한다. "우리 일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서래) "우리 일? 우리 일 무슨 일?"(해준) 

서로의 마음이 무너졌을 이 순간에도 말러의 선율이 흐른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 서래를 연행하던 차 안에서 수갑을 찬 채 대화를 나누던 장면이다. "잠은 좀 잡니까?" 그러지 못한다는 해준의 대답에 자신의 잠을 나누어주고 싶다는 서래의 간절한 바람과 이에 호응하기라도 하듯 서로의 호흡을 나누던 순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으레 나눌 듯한, 너무도 평범한, 그러하기에 더욱 서러운 이 장면에서도 말러의 선율이 흘러 그 애절함을 돕는다.
 

'헤어질 결심' 스틸 컷.
'헤어질 결심' 스틸 컷.

◇말러의 교향곡 4악장 = 말러의 교향곡 5번은 1901년에 착수해 1902년에 완성된다. 당시 작곡가의 상황을 표현하자면 지옥과 천국을 오간 시기였다고 하겠다. 착수되던 해에는 장 출혈로 생사를 오갔고 완성된 해에는 당시 빈의 뮤즈라 할 알마 신틀러와 사랑의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5악장으로 구성되었지만 총 3부의 다른 분위기(1악장과 2악장-3악장-4악장과 5악장)를 연출한다. 

이 중 4악장이 바로 영화에 흐르던 아다지에토로 이전 악장의 혼돈을 잠재우듯 고요하고도 명상적인데 이는 작곡가 말러가 남긴 작품 중 가장 낭만적이고도 유명한 선율로 평소 작곡가 말러를 버거워하던 이들에게도 익숙한 선율이자 입문의 정석이다. 

또한 이 악장은 알마를 향한 사랑의 고백으로도 여겨진다. 말러의 제자이자 지휘자인 '멩겔베르크'는 말러가 아무런 편지 없이 알마에게 자필 악보를 보냈는데, 그 의미를 알아챈 알마가 그를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를 그들로부터 들었다며 이 아다지에토는 알마를 향한 작곡가의 사랑 고백이라고 말했다. 

또한 4악장의 악보에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그대는 나의 태양, 어떤 말로 당신을 표현해야 할까요? 오직 나의 열망이 당신에게 하소연할 뿐. 나의 사랑과 기쁨을!'이라는 시를 적어 놓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곡을 온전히 들어 본다면 그 속엔 아름다운 사랑만이 녹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얼핏 들려오는 슬픔과 비극의 감성은 도대체 무엇일까? 평생을 죽음을 두려워하며 생명의 스러짐을 고뇌했던 말러의 심상은 사랑으로 충만한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은 듯하다. 그렇게 고독과 허무함, 영원한 것에 대한 의구심은 저음 현악기들의 울부짖음이 되어 가슴을 울린다. '사랑도 그렇겠지' 그리고 여기서 사용된 선율은 바로 말러의 '뤼케르트 시에 의한 5편의 가곡' 중 제3곡 '나는 이 세상에서 잊혀지고(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이다. 

잠깐! 나는 이 세상에서 잊혀지고? 그렇다면 이 사랑마저 스러질 운명이라는 것일까? 영원히 잊히지 않을 사랑이고픈 서래였는데…. 이런 생각에 이미 붕괴되었던 나의 감정선이 그렇게 또 다른 방향으로 붕괴되어 간다. 조심하고 대비했는데….
/심광도 시민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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