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호 멸치권현망수협 조합장

보궐선거 1표 차 당선 '최연소'
조부와 부친 이은 3대 조합장

간담회·컨설팅 등 변화 모색
멸치 소비 활성화·사업 다각화

박성호(40) 멸치권현망수산업협동조합 조합장은 국내 수산업계 대표적인 '젊은 피'다. 수협중앙회 산하 91개 회원 조합을 이끄는 수장 가운데 최연소다. 그는 지난 1월 치러진 조합장 보궐선거에서 한 표 차로 당선됐다. 넘치는 패기와 당찬 포부로 설립 100년이 넘은 멸치권현망수협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박 조합장은 하루하루 초심을 다잡는다. 새내기 부족함을 채우고 겸손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취임 7개월가량 지난 지금도 그의 생각은 한결같다.

"업계 경력으로 보나 연륜으로 보나 선배 조합원들보다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조합원들 지지로 당선된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1표 차 선거 결과가 보여 주듯 저를 다른 관점에서 지켜봐 주시는 다수  조합원 의견 또한 엄중히 받아들이고, 부족한 점을 채우며 자만하지 않는 조합장이 되려고 매일 아침 출근 전 거울을 보며 스스로 다짐하고 있습니다."

박성호(40) 멸치권현망수산업협동조합 조합장은 취임한 지 7개월가량 됐다. /김구연 기자
박성호 멸치권현망수협 조합장은 취임한 지 7개월가량 됐다. /김구연 기자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가 고향인 박 조합장에게 멸치잡이는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가업이자 운명 같은 존재다. 한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일리노이주립대학교에서 회계학을 전공하며 회계 전문가 꿈을 키웠지만, 결국 수산업으로 발길을 돌린 까닭이다. 조부와 부친에게 멸치잡이는 삶 그 자체였다. 이제 그가 젊은 감각으로 맥을 잇는다.

세길수산 대표인 박 조합장은 어릴 적 멸치잡이 업계에 몸담은 아버지를 보며 수산업에 관심을 뒀고 자연스레 일을 배웠다. 미국 유학 이후 가업을 이어받아 2009년 현업에 뛰어들었다.

실제로 업체를 경영하며 접한 업계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많은 조합원이 제도적·환경적·금전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몸소 체험했다. 눈에 띄는 조합원 감소세가 이를 뒷받침한다.

앞서 1990년대 멸치권현망수협 조합원 규모는 100여 명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50명이 채 안 된다. 현실적인 어려움과 불확실한 미래로 상당수 조합원이 폐업하거나 자녀가 물려받기를 꺼린 결과였다.

그가 이러한 어업 현실을 고려해 구원투수를 자처하면서 조합장 선거에 도전한 배경이다.

"젊은 감각으로 조합원들과 교감하며 신뢰할 만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개인 능력이 아닌 멸치권현망수협이라는 조직을 믿으며 저와 조합원 간 신뢰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지니고 일한다면, 지난 100년 역사를 발돋움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있는 향후 100년 비전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 조합장 포부는 이른바 '변화를 통한 희망 창출'로 압축된다. 그는 조합 미래를 위해 소통에 기반을 둔 상생 발전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취임 이후 정기적으로 지역별 동업자회 모임에 참석한다. 조합원 애로를 각 지역 동업자회장 간담회에서 듣고 정책을 마련하는 등 정보 공유와 상호 협력 체제 구축으로 조합원 간 결속력을 높이고 있다. 소통 강화에도 힘써 소외되는 지역 조합원이 나오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멸치 소비 활성화 방안도 꾀한다. 무엇보다 가격 경쟁력 확보가 관건으로 꼽힌다. 이에 조합 직판 사업을 중심으로 소비자에 외면받는 멸치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심 중이다. 단가가 싼 멸치라고 해서 품질이 낮은 멸치라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박 조합장 지론이다.

박성호 멸치권현망수협 조합장이 조합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박성호 멸치권현망수협 조합장이 조합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영양 성분이라든지 육수로서 활용성에 대해서는 상당한 경쟁력을 지닌 멸치임에도 소비자 인식으로 외면받는 점은 안타깝습니다. 또한, 저단가 멸치가 포획되면 조업 현장에서 맨투맨(일대일)으로 우리 수협과 연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최소 노동 투입으로 고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업을 구상 중입니다."

조합 지도 사업 활성화에도 나선다. 멸치권현망수협은 조합원 지위 향상을 위한 지도 사업을 추진하는 데 열심이다. 다만, 최근에는 업계 이슈로 떠오른 TAC(총허용 어획량·포획 또는 채취할 수 있는 수산 동물의 종별 연간 어획량 최고 한도) 문제를 비롯해 조업 구역 조정, 해상 풍력 사업 추진 반대 등으로 진척이 느렸다.

이에 박 조합장은 관계 기관과 형식적인 행정 업무 교류보다는 학계 용역을 거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 업계 의견을 관철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수익 사업 다변화도 그가 풀어야 할 숙제다. 박 조합장은 조합 재무 개선 방안으로 분산된 건멸치 위판장 역할을 한데 모은 '건어물 통합 위판장 건립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상호금융 사업 수익 증대를 위한 수도권 등 신도시 신규 영업점 개설 추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위기 상황을 지나는 과도기 조합인 만큼 리스크(위험)를 최소화하고자 외부 경영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밀한 경영 진단을 거쳐 수익 창출을 위한 신규 사업 추진 컨설팅이 마무리되면 그 결과를 토대로 조합 발전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내년도 사업 계획과 수지 예산에 반영할 예정입니다."

이처럼 박 조합장이 가려는 길은 탄탄대로는 아니다. 오히려 실패가 따를 수 있는 가시밭길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발길을 멈출 수는 없다. 박 조합장은 '변화를 실천하는 오늘이 없으면, 성공하는 내일도 없다'는 신념과 열정으로 조합을 경영하고자 한다.

박 조합장은 남다른 내력도 지녔다. 수협 최초 3대째 조합장이라는 수식어가 그것이다. 박 조합장 아버지는 박종식 전 수협중앙회장이다. 박 전 회장은 거제수산업협동조합 7~8대 조합장을 지냈다. 박 전 회장 부친이자 박 조합장 할아버지인 고 박명길 씨도 거제수협 1~4대 조합장을 역임했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를 거쳐 아들까지 대를 이어 수협 조합장을 지내고 있다.

박 조합장은 조부와 부친의 긍정적인 리더십(지도력)을 본받아 조합원 고충을 진심 어린 마음으로 들어주고, 같이 고민할 수 있는 기선권현망 어업인의 대나무숲 같은 조합장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업황 부진과 기름값 상승 등은 경영을 압박하는 걱정거리다. 선단을 이뤄 조업하는 기선권현망은 선원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업종이다.

지난해 멸치권현망수협 위판액은 조업 불황으로 전년도 반토막 수준인 600억 원대에 그쳤다.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오르는 게 일반적인 시장 상황이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식자재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마른 멸칫값은 되레 내려갔다.

박성호(왼쪽) 멸치권현망수협 조합장이 경남도민일보 기자와 대화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박성호(왼쪽) 멸치권현망수협 조합장이 경남도민일보 기자와 대화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게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경유 가격이 고공 행진하는 바람에 출어 경비가 세 배 이상 뛰는 등 그야말로 삼중고에 시달린다. 멸치 조업 중 자연 혼획된 잡어를 판매할 수 없는 규정도 멸치잡이 어민들을 힘겹게 하고 있다.

금어기가 끝나 지난달부터 본격적인 조업에 들어간 상황이지만 어황은 기대와 달리 신통치 않다.

"지난 7월 1일 첫 출어 이후 현재까지 위판 물량은 전년 같은 달과 비교하면 20%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어획량 감소로 이어질까 우려스러운 상황이지만, 아직 조업 기간이 많이 남아 있는 데다 적정 강수량과 멸치가 서식하는 수온이 맞춰지면 개체 유입이 활발해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조업에 나서고 있습니다."

박 조합장은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이나 지원이 필요한 부분도 짚었다.

최근 정부의 어업 허가 자율 감척 사업에 멸치권현망수협 조합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멸치잡이 업종을 대표하는 기선권현망 어업 허가 정수가 대폭 줄었다. TAC 시범 사업에 멸치 업종을 포함하는 것도 동의했다.

박 조합장은 "자발적인 수산 자원 관리에 앞장서는 모범 업종인 점을 고려해 마음 놓고 어획물을 생산·판매할 수 있게 자연 혼획 문제라든지 야간 조업 일부 완화 등으로 현실성 있게 제도를 개선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문제는 시간과 싸움이다. 그의 임기는 내년 3월 20일까지다. 내년에 치러지는 제3회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에서 그가 펼쳐온 '젊은 감각'이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동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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