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 광복절 포상 명단에 포함
포상 신청한 시만단체 환영 입장문 내
"21년간 항일투쟁한 공적 인정 받아"

창원 출신 독립운동가 김명시(1907∼1949)가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 국가보훈처는 12일 제77주년 광복절을 맞아 김명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한다고 밝혔다.

김명시의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을 주도한 시민단체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당연한 일이지만 가슴 벅찬 반가움과 함께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단체는 "일제강점기 때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21년간 목숨을 걸고 싸운 독립운동가에게 국가가 해야 할 예우"라며 "오랫동안 잊힌 김명시 장군 명예를 회복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전했다.

2019년 1월 처음으로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한 희망연대는 3년 7개월여 만에 '독립유공자 인정'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독립운동가 김명시(1907~1949). /경남도민일보DB
독립운동가 김명시(1907~1949). /경남도민일보DB

희망연대는 "고향에서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이면서 사회주의 활동을 한 김명시를 세상에 알리고 공적을 인정받는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다"며 "하지만 나라를 빼앗기고 일제 압제에 신음하는 동포를 해방하고자 했던 독립운동에는 민족주의도, 사회주의도 똑같은 마음이었을 거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향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후대의 도리를 다하고자 노력했다"며 "김명시 장군이 사망한 뒤로 친족이라는 말도 못하고 냉가슴을 앓고 살아왔을 친인척에게도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한편, 독립운동가 김명시는 1907년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성동에서 태어났다. 1925년 모스크바 공산대학에 입학했고, 재학 중 상하이로 파견돼 1930년 하얼빈 일본 영사관 공격을 주도했다. 이후 1932년 국내에서 노동운동을 지도하다 동지 배신으로 신의주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1939년 감옥에서 나온 김명시는 1942년부터 해방까지 조선의용군 지휘관으로서 톈진, 베이징 등에서 항일 전투를 벌였다. 이때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백마 탄 장군'으로 이름을 떨쳤다. 해방 이후 서울에서 활동하던 그는 1949년 부평경찰서에서 42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박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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