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장유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는 찻집이 즐비하다.

멀리 바라보이는 산자락에는 봄소식을 알렸던 연초록이 이제 짙은 녹음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장유계곡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끝자락에 유서 깊은 절 '장유사'를 만난다.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재위42년-199년)은 재위 7년인 49년에 인도 아유타국 공주를 배필로 맞이하였다. 이국땅 가락국에 와서 허씨(許氏) 성을 받고 허황후가 되었다. 이때 공주와 함께 가락국으로 온 오빠인 허보옥(許寶玉)은 아유타국 왕자이다. 부귀를 뜬구름같이 보고 티끌 세상에 초연하여 김해 장유에 있는 불모산(佛母山)으로 들어가 오래 머물며(長遊) 나오지 않았으므로 '장유화상'이라고 하였다. 만년에 가락국의 왕자 7명과 더불어 방장산(지리산)에 들어가 득도했으니 지금 하동의 칠불사가 그 장소라 전해진다.

'장유사'에는 장유화상의 사리탑(경남문화재 31호)과 행적을 기록한 장유화상 기적비가 있다. 이 땅에 불교가 전해진 것이 중국을 거쳐 고구려 소수림왕 372년이라 볼 때, 가락국의 불교는 인도에서 직접 건너왔으며 훨씬 먼저 아유타국 공주와 왕자를 통하여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진 불연지(佛緣地)다. 불교는 인도 가비라국 싯다르타 태자가 사대성문을 출입하면서 인간의 생로병사를 보게 되었고 삶 자체가 고통의 바다, 고해(苦海)라 진단하였다. 근본적인 고통인 생로병사를 해결하기 위해 돌아오는 왕위도 헌신짝처럼 던져버리고 출가를 단행, 6년이라는 긴 구도의 여정 끝에 35세의 나이에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하여 불교의 가르침이 시작되었다.

원불교 교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는 우주현상과 생사의 근본적 의문을 풀고자 20여 년간 구도고행 끝에 1916년 26세 때, 전라남도 영광의 조그만 해변마을 노루목 초가집 창가에 밝아오는 여명을 바라보며 큰 깨달음인 '대각'을 이루었다. 이것이 원불교의 시작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세상을 '고통의 바다'로 보지 아니하고 '은혜의 바다'로 보았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삼라만상 모두가 한순간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은혜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설파하였다. 네 가지 은혜 '사은'의 가르침은 원불교 교리의 핵심이다. '천지은' 중에 공기 하나만 해도 없으면 한순간도 생명을 유지 못 하는 은혜이다. '부모은' 중에 부모가 없으면 만사만리 근본 되는 이 몸이 생겨날 수 없는 은혜이다. '동포은' 중에 이웃이 없으면 의식주를 수용할 수 없는 서로 도움 주는 은혜의 관계로 살아가고 있다. '법률은'이 없으면 무법천지 아수라장이 되어 안녕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없는 은혜이다. 그래서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고 가르치고 있다. 1958년에 이곳 불연지 김해에 원불교 가르침이 시작되어 여기저기 교당이 생겨났다. 김해! 쇠금에 바다 해, '금바다'에 은혜가 물결치는 복된 땅이 되기를 염원해 본다.

/김진성 원불교 김해장유교당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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