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1세대 묘비 155개 독해, 탁본, 각종 명부와 대조
하와이 현지와 창원대 학자, 연구자들의 협업 결과물
11월 30일까지 창원대박물관서 탁본과 비석 조형물 전시

창원대박물관과 해군사관학교박물관이 11일부터 창원대박물관 전시실에서 ‘잊혀진 이야기, 역사가 되다 - 하와이 이민 1세의 묘비로 본 삶의 궤적’ 연합 특별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1902~1905년 사탕수수밭 노동력 확보를 위해 하와이로 이주한 한국인 노동자와 사진만으로 선을 보고 한국에서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로 갔던 여성들을 말하는 ‘사진신부’ 등 하와이 초기 이민자들의 발자취를 알리는 전시입니다.

힘겨운 타향살이였기에 그들은 고향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들의 묘비에는 고향 이름은 물론 ‘대한(大韓)’, ‘조선(朝鮮)’이 적혔습니다. 아울러 상당수 이민자가 안중근(1879~1910)의 하얼빈 의거 직후 의연금(사회적 공익을 위해 내는 돈)을 모으는 데 동참했습니다. 고단한 노동 끝에 얻은 돈도 고국을 위해 쓰이기를 바랐던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들이었습니다. 자칫 잊힐 뻔한 이 역사는 하와이 현지와 경남지역 학자·연구자들의 힘으로 발굴됐습니다. 광복 77주년, 하와이 이민 120주년을 맞아 이번 연구와 전시의 의미를 세 차례에 걸쳐 살펴봅니다.

하와이 이민 1세 묘비 조사는 하와이대학교 힐로캠퍼스 영어영문학과 세리 I. 루앙피닛(Seri I. Luangphinith) 교수의 2018년 창원대 특별 강연을 계기로 시작됐다. 그의 강연은 20세기 초 경남과 하와이를 잇는 한인 이민자의 삶과 관계를 들여다보게 했다. 특히 그는 한인 이민자들의 무덤이 수십 년간 관리가 안 되고 방치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후 문경희 창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를 단장으로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연구실장과 루앙피닛 교수로 조사단이 꾸려졌다. 조사단은 2019년부터 탁본, 사진 촬영, 비문 독해, 측량, 기록물 대조 등을 진행했다.

◇고향 기록된 묘비 중 경상도 가장 많아 = 조사단은 하와이 ‘빅아일랜드’ 지역에 있는 힐로 알라에(Alae) 공동묘지 136기, 코나 이민센터 호룰로아(Holualoa) 커피농장 10기, 캡틴쿡 6기, 코할라 침례교회 3기 등 한인 이민자 무덤의 155개 묘비를 읽고 풀어냈다. 현지 조사 이후 2년간 후속 연구가 이뤄졌고, 지난해 책 <죽은 자의 트랜스내셔널 공간 - 하와이 빅아일랜드 초기 한인 이민자 묘비>(창원대박물관·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 지역미래링크센터)라는 결과물이 나왔다. 하와이 입항 선박 명부, 안중근 의사 기부 명부, 당시 일본 외무성의 여권 발급 목록, 하와이 한인 등록 명단 등을 대조하면서 묘비 주인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왔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고향이 적힌 비석은 94기로 이 중 경상도가 20기로 가장 많았다. 이어 평안도 19기, 경성부 15기, 경기도 13기, 황해도 12기, 함경도 5기, 전라도 4기, 충청도 4기, 강원도 1기, 하와이 1기 순이었다.
일부 발자취를 확인한 경남 출신 이민자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이주대(1883년 5월 3일~1951년 2월 4일)는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비석에 새긴 고향은 ‘대한경샹남도밀얄군 산하면쵸양동’(현 밀양). 그는 1904년 4월 26일 ‘China호’를 타고 하와이에 도착했다. 당시 21세 미혼이었다. 이주대는 ‘빅아일랜드’ 코나 지역 호노나우(현 호노노 지역)에 살면서 1909~1910년 안중근 의사 의연금으로 1달러를 냈다. 묘비 앞에는 꽃이 놓여 있어 후손 또는 지인이 관리하는 것으로 보였고, 인근 묘비와 달리 화강암 재질 비석이어서 후대에 새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됐다.

'잊혀진 이야기, 역사가 되다 - 하와이 이민 1세의 묘비로 본 삶의 궤적' 연합특별전시회 개막식이 11일 오후 창원대박물관 전시실에서 열렸다.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이 탁본 결과물과 비석에 얽힌 이야기 등을 설명하고 있다. /황선민 인턴기자
'잊혀진 이야기, 역사가 되다 - 하와이 이민 1세의 묘비로 본 삶의 궤적' 연합특별전시회 개막식이 11일 오후 창원대박물관 전시실에서 열렸다.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이 탁본 결과물과 비석에 얽힌 이야기 등을 설명하고 있다. /황선민 인턴기자

창원 마산포 출신 이운경(1876~1950년 1월 21일)은 74세로, 경남 출신 신봉영(1893~1991년)은 98세로 각각 타계했다. 1917년 이운경(당시 41세)은 ‘사진신부’인 아내 신봉영(당시 24세)을 하와이로 오게 하려고 여권을 발급한 기록이 남아 있다. 부부는 오아후 호놀룰루 지역에 살았던 것으로 1942년 하와이 한인 등록 명단에서 확인됐다. 1928년 딸 이순미를 낳았는데, 그 또한 2014년 눈을 감았다. 부부의 묘비는 오아후 공동묘지에 있다.

이 밖에 수많은 묘비 가운데 ‘경성 애오개 朴基(박기)옥 1941년 65세’라고 적힌 높이 2m 정도 비석도 인상적이다. 무덤 덮개석인데, 시멘트가 마르기 전에 손으로 매만지고 손가락 등으로 글을 새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부분 묘비가 기성품인 데 반해 글씨가 가지런하지 않지만, 후손 또는 지인의 정성이 느껴진다. 경성 애오개는 현 서울 아현동이다.

‘CHOON HA PARK(박춘하) / OCTOBER(10월) 23, 1880 / MARCH(3월) 22, 1956 / 아부지’. 이름과 태어나고 숨진 날짜를 영어로 적었지만, 마지막에 한글로 ‘아부지’라고 적어 놓은 비석도 눈길을 끈다. 아버지 또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으로 짐작된다.

'잊혀진 이야기, 역사가 되다 - 하와이 이민 1세의 묘비로 본 삶의 궤적' 연합특별전시회 개막식이 11일 오후 창원대박물관 전시실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이 축하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황선민 인턴기자
'잊혀진 이야기, 역사가 되다 - 하와이 이민 1세의 묘비로 본 삶의 궤적' 연합특별전시회 개막식이 11일 오후 창원대박물관 전시실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이 축하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황선민 인턴기자

◇우리가 몰랐던 하와이 = 하와이 제도는 여러 섬 가운데 ‘하와이’가 가장 큰 섬이어서 일명 ‘빅아일랜드’로 불린다. 미국 하와이주 주도인 호놀룰루가 있는 오아후섬 일대에서는 한인 이주와 독립운동 연구가 활발했다고 한다. 반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이주해 일한 것으로 알려진 ‘빅아일랜드’는 관련 연구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신혼여행이나 휴양 등으로 유명한 오아후 쪽이 아니라 한인 묘지, 독립운동 등을 핵심어로 ‘빅아일랜드’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었다.

한국인, 미국인, 중국인, 일본인 등 무덤이 한데 모여 있는 곳에서는 유독 한국인 묘지 앞에만 꽃다발이 없는 모습이 눈에 띈다. 심지어 지진이 났을 때 현지 지질학과 교수가 지진파 분석을 위해 한인 이민자들의 무덤을 찾을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쓰러진 비석을 세워주는 이가 드물다는 얘기다. 이민 3~4세대는 묘비에 있는 글자를 읽지 못해 조상의 묘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렇게 이민 1세대의 삶이 서서히 잊히고 있다.

한편 1902년 12월 인천에서는 노동자 121명이 배를 타고 하와이로 향했고, 1905년까지 한국인 노동자 7400여 명이 하와이로 이주했다. 하와이 이민 1세대 남성들과 사진 교환으로 ‘사진신부’는 1910~1924년 700여 명이 하와이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동욱 기자

※참고문헌
△<죽은 자의 트랜스내셔널 공간 - 하와이 빅아일랜드 초기 한인 이민자 묘비>(창원대 박물관·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 지역미래링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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