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있는 지역 예술 활동 위해 '부마4싱어' 결성
성악가 활동한 할아버지 영향 어려서부터 성악 공부
독일 프랑스 유학 생활 16년만에 고향 돌아와 활동

지난달 17일 밤 최근 조성되어 창원시민의 산책로로 새로운 명소가 된 마산3.15해양누리공원에서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주최로 ‘2022 찾아가는 부마민주음악제’가 열렸다. 관현악 선율과 성악가들의 노래, 마산만 바닷바람이 살랑살랑 부채질하는 밤 풍경은 어느 영화에서 봤을 법한 기시감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이날 공연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성악가가 있었다. 소프라노 이영령(43).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출연한 이영령은 에디트 피아프가 불러 유명한 샹송 ‘Non, Je ne regrette rien(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을 불렀다. 유튜브에서 들었던 에디트 피아프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익숙한 노랫소리여서 더더욱 눈길을 주고 있었다. 옆에서 함께 관람하던 음악 전문가 역시 이영령 소프라노를 두고 성악가 중에서도 발성이 뛰어나고 표현력이 좋다고 설명을 덧붙인다.

소프라노 이영령 씨가 진해 경화동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현수 기자

게다가 공연보를 보니 이영령 씨가 ‘부마4싱어’ 중 한 사람으로 소개되어 있어 무슨 사연이 있는가 싶기도 하고 해서 공연을 보면서 자꾸 호기심을 키워갔던 게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배경이었다. 이영령 소프라노가 출연하는 부마민주음악제는 오는 15일 오후 5시 진해루 야외공연장에서 또 열린다.


지난달 27일 진해구 경화동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스튜디오는 2층에 있었고 공간은 이등변삼각형을 이루었다. 꼭짓점 쪽에 피아노가 놓여있고 밑변 쪽에는 응접실로 이루어졌다. 이곳에서 그는 학생과 시민들을 가르치고 있다.

◇‘부마4싱어’가 생긴 사연은 = 제일 먼저 궁금했던 것이 ‘부마4싱어’였다. “현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회장이자 지휘자이신 설진환 선생님이 지역 예술인들이 의미 있는 예술활동을 펼칠 환경과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누누이 말씀하셨는데 그게 동기부여가 되어 현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청년부회장을 맡은 바리톤 조승완 성악가를 주축으로 테너 은형기, 소프라노 김지숙, 그리고 저 이렇게 뜻을 모아 ‘부마4싱어’를 결성했어요.”

소프라노 이영령 씨가 진해 경화동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현수 기자
소프라노 이영령 씨가 진해 경화동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현수 기자

‘부마4싱어’ 구성원들은 오는 15일 공연에도 함께 출연한다. 이렇게 지역의 큰 역사를 내포한 이름으로, 그것도 4명이 함께 활동한다면 시너지 효과도 클 듯하다.

소프라노 이영령은 지금까지 활동했던 무대 중에서도 독일 유학시절 라이프치히 국립오페라하우스에서 2년 동안 솔리스트로 활동했던 시절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곳은 세계 정상의 성악가, 지휘자들과 공연할 수 있는 무대였고, 석사 졸업을 앞둔 저에겐 행운의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이영령은 큰 무대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가 2013년 창원으로 돌아온 것은, 16년 타지생활이 주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고향에 와서는 창원대에서 성악 실기를 가르쳤고 지금은 프랑스에서 연주할 수 있게 돕는 ‘프랑스 딕션’을 강의하고 있다.

성악을 가르치는 일이 예전 같지 않다. 학생 수도 현격히 줄어들었다. 젊은 친구들이 케이팝(k-pop)으로 향하는 추세이니 어쩔 수가 없다. 그럼에도, 유행이라는 것이 돌고 도는 것이어서 언젠가는 클래식 붐이 이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성악 배울 때가 제일 재미있어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가 사람의 목소리라고 하는데, 악기도 천차만별이듯 사람의 목소리도 천차만별. 노래에 소질이 없는 일반인 처지에서 보면 성악가들은 그 목소리 악기를 고급진 것으로 타고났다. 물론 그래서 성악가가 된 것이겠지만, 이영령 소프라노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소프라노 이영령 씨의 공연 모습. /이영령 제공
소프라노 이영령 씨의 공연 모습. /이영령 제공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성악가셨습니다. 동경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마산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음악 활동을 하셨어요.”

타고난 데다 환경까지 갖춰졌으니 성악가로 성장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겠다 싶다. 하지만 강제적일 수 있는 환경에 반발심이 일 법도 한데, 이영령은 성악을 공부하는 것이 제일 재미있다고 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성악공부를 병행하기에는 체력적으로나 환경이 그렇게 최상은 아니었습니다. 쉬는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노래를 위해 노력할 때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해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가고 이어서 독일 유학을 떠났다. 베를린에서 어학원에 다녔고 라이프치히에서 석사를 마쳤다. 낯가림 없이 현지 친구들을 사귀다 보니 자연스럽게 언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했다. 때로는 외국인을 부당하게 대하는 사람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단다. 독일 공부를 마칠 즈음에 더 폭넓은 음악을 공부하고 싶다는 갈증이 생겼다. 결국,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소프라노 이영령 씨의 공연 모습./이영령 제공
소프라노 이영령 씨의 공연 모습./이영령 제공

◇나, 이영령은? = 성악가의 일상은 어떤지 궁금해서 잡다한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문답식으로 풀었다.

-자신이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이 누구예요?
“생각해본 것이 없는데, 어머니를 존경하죠.”

-자기가 생각할 때 소프라노 상위권에는 누가?
“제가 좋아하는 성악가는 소프라노 임선혜 씨와, 소프라노 홍혜란 씨.”

-그럼 소프라노 가수가 잘한다는 소릴 들으려면?
“우선 타고난 아름다운 목소리와 음악성이 있어야죠. 음악성은 노력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어요.”

소프라노 이영령 씨의 공연 모습./이영령 제공
소프라노 이영령 씨의 공연 모습./이영령 제공

-성악가들은 노래방에 안 갈 것 같은데, 간다면 무슨 노래를 부르시나요?
“공연 뒤풀이 때 노래방에 갑니다. 전 자우림의 ‘봄날은 간다’를 좋아합니다. 점수에 연연하진 않는데, 95점은 넘죠.”

-자신의 목소리와 닮은 성악가가 있다면?
“최근에 샹송을 조금 불러봤는데, 에디트 피아프랑 비슷하다는 말은 듣기도 했어요.”

-맞네, 해양누리공원에서 공연 볼 때 그 생각을 했다니까요. 하하. 대중가요를 부르는 성악가에 대한 생각은?
“크로스오버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대중에게 좀 더 편하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면 장르를 굳이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연계에 뮤지컬 같은 오페라가 점점 확산하는 반면 독창회는 많이 줄어들었어요. 이런 현상 어찌 생각해요?
“독창회는 한 편의 논문을 쓰는 것과 같아서 성악가에게 부담이 되죠. 시대 흐름에 맞춰 음악 장르를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객이 없는 공연은 연주자에겐 참 슬픈 일입니다. 틈새 공략으로 전통 클래식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해설과 함께 클래식 장벽을 조금씩 낮춰가는 프로그램을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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