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수협을 소개합니다 - 최판길 욕지수협 조합장

위기 상황에 조합장으로 당선
급랭시설 도입·매점 사업 추진
3년 만에 정상화해 2019년 재선
민감한 현안에서도 어민 이익 대변

최판길(73) 욕지수협 조합장은 2015년 3월부터 조직을 이끌고 있다. 그 역시 이곳 섬 사람이다. 중학교 입학 후 얼마 되지 않아 학교를 관둬야 했다. 아버지 밑에서 뱃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20대 때까지 선원 생활을 했다. 막 서른 살 됐을 때 정치망을 시작했다.

"제가 그래도 수완이 있는 편이에요. 주변 정치망 하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로 사업을 접었어요. 섬 바람이 세게 불면 그물이 다 엉키니까. 나는 끊임없이 연구했죠. 그러다 보니 안 엉키게 하는 저만의 비법을 찾았죠. 돈을 꽤 벌었죠. 소문이 나서 여기저기 강의도 많이 다녔고요."

이 시기 고기를 잡아 부산 자갈치 시장에 팔았다. 노동진(68) 현 진해수협 조합장도 이때 만나 지금껏 연을 이어오고 있다.

최판길 욕지수협 조합장은 이곳 욕지도에서 나고 자랐다. 2015년 조합장직을 맡은 이후 경영 상태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다. 그는 "과거 아닌 앞만 보고 일한다"고 말한다. /남석형 기자
최판길 욕지수협 조합장은 이곳 욕지도에서 나고 자랐다. 2015년 조합장직을 맡은 이후 경영 상태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다. /남석형 기자

중년 나이 때는 자녀 교육 문제로 섬을 떠나 통영 시내에서 생활했다. 거기서도 어업에 종사하긴 했지만, 예전만큼 재미를 보진 못했다.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다시 욕지도로 돌아왔다. 그는 원래 바빠야 하는 사람이다. 욕지수협 이사, 주민자치위원장 등 고향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런데 2014년 초 욕지수협은 어수선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곳은 2006년 흑자로 돌아선 바 있다. 이후 상호금융·활어위판 같은 주요 수익 사업에서 부진을 겪었다. 적조 타격도 컸다. 그 탓에 2012·2013년 연속해서 수억 원대 적자를 기록했다.

당시 욕지수협 조합장은 이를 이유로 조합원 급여를 삭감했다. 상여금을 전년도 300%에 이어 다시 200% 삭감하기로 했다. 2년 연속 적자로 조합장을 비롯해 함께 고통 분담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직원들은 "경영 실패 책임을 우리한테 돌리고 있다"며 크게 반발했다. 실무 직원 16명 모두 사직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2015년 3월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조합장 출마를 권유했다. 인생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선거 보름을 남겨놓고 출마를 결심했다. 그는 당시 조합장과 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완승이었다. 두 배 가까운 표 차이였다.

최 조합장은 이제 경영 정상화 임무에 직면했다. 그는 오랫동안 어업 일을 한 사업가이기도 하다.

"저는 과거 아닌 앞만 보고 사는 사람입니다. 시대가 바뀌고 있잖아요. 조합이 위판 업무만 해서는 살아날 길이 없다고 판단했죠. 새로운 분야에서 수익을 창출해야 겠다고 마음먹었죠."

최 조합장은 정부 지원을 받아 냉동공장을 새로 단장했다. 급랭시설 완비로 이전에 없던 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관광에도 눈 돌렸다. 정부 추진 다기능항 사업에 선정됐다. 현재 진행형이지만, 관광과 마트·금융 편의시설이 한데 어우러지는 토대를 마련했다. 욕지도 모노레일 매점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직원들 의지를 북돋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저는 열흘만 겪어보면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어요. 직원이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내치고 끝낼 게 아닙니다. 제대로 되게 만들어야죠. 한 사람씩 불러서 대화하며 인생 공부를 시켰습니다. 직원회의 때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를 외쳤습니다. 단 10원이라도 안 될 돈을 받으면 옷 벗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예전에는 술 먹고 다니며 느슨하게 행동하는 이도 더러 있었습니다. 이제 그런 건 싹 사라졌습니다." 

최판길 욕지수협 조합장은 "과거 아닌 앞만 보고 일한다"고 말한다. /욕지수협
최판길 욕지수협 조합장은 "과거 아닌 앞만 보고 일한다"고 말한다. /욕지수협

최 조합장은 그렇게 조직을 안정화 궤도에 올려놓았다. 직을 맡은 지 3년 만에 조합원 배당까지 할 수 있었다.

그는 2019년 3월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에 다시 나섰다. 상대는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전 조합장이었다. 역시 무난히 승리하며 재선 고지에 올랐다. 최 조합장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선거운동 안 하고 집에 누워 있었어요. 전화 좀 한 게 전부에요. 그런데도 이렇게 이긴 이유가 뭘 것 같아요? 여기 사람들은 수십 년씩 봐온 사람들이에요. 선거할 때만 '잘하겠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평소 베풀고 잘해야지요. 어려운 일 있을 때 서로 챙겨주고 말이죠. 사람 살아가는 게 그런 거 아니겠어요."

수협은 1995년 프린스 취항을 시작으로 여객선 운영을 했다. 하지만 이후 민간에 다 넘겼다. 최 조합장은 이 대목에서 아쉬워했다. 

"이걸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에서는 '뭘 또 일을 벌이느냐'며 시큰둥했어요. 그래도 밀고 나갔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해운사와 손잡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우리가 접안지를 만들어 주는 대신, 일정 금액을 받는 거죠. 욕지에서 배편으로 나가는 사람 1명당 1000원을 받았습니다. 이미 접안지 조성비 본전을 뽑았습니다. 그럼에도 직접 운영에 관한 미련은 남아 있습니다."

욕지도 사람들은 최근 들어 '해상풍력·수산업 공존'을 놓고 고심 중이다. 최 조합장은 직분에 맞게 어업인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그래서 통영 욕지해상풍력 대책위원회와 다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첨예한 갈등은 없다. 

"저는 해상풍력을 반대할 수밖에 없죠. 어민들을 위한 수장이니까요. 그래도 해상풍력 대책위 사람들과 싸울 일은 없어요. 저는 저의 직분에 맞게, 그들은 그들 생각에 맞게 하면 되니까요."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도 당장의 현안이다. 그는 다른 수협 조합장들과 함께 규탄 시위에 참석하고 있다. 

내년 3월 다시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가 있다. 그는 아직 결론을 내리진 않았다.

"이제 나이도 많아서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지금 당장은 (선거에) 다시 나간다, 안 나간다고 말하긴 어렵겠네요." 

그는 얼마 전 포항수협 회 타운을 견학했다. 욕지수협도 그리 만들기 위해서다. 할 일이 여전히 많아 보인다.  

/남석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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