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정부의 가야사 연구복원 사업 (중) 미비점과 한계

중하위 계층·생활유적 발굴
특정 대상에 우선순위 밀려
가야문화권 균등 조명 못해

'관심 밖에 있던 가야 유적을 조사해 유의미한 발굴 성과를 이뤄낸 점은 긍정적, 특정 지역·특정 고분군을 대상으로 발굴조사가 중점적으로 진행된 점은 부정적.'

고고학자들과 지역 학예사들은 문재인 정부의 가야사 연구복원 사업의 성적표를 이같이 요약한다. 중국과 아라가야 간 교류상을 보여주는 연꽃문양 청자그릇과 봉황 장식 금동관 등 굵직한 유물이 지난 정부 발굴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점, 사적·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사례가 극히 드물었던 가야고분군(6개소)과 그 시대 목걸이 등 유물(12개)들이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점은 분명한 성과다. 반면 김해와 함안지역 등에 분포하는 왕릉급 가야유적 위주로 발굴조사가 벌어진 것은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엇보다 여러 문화유산 유형 가운데 무덤 유적에만 조사가 집중된 건 근원적 한계로 남아 있다.

▲ 함안 가야리 유적. 문화재청은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에서 토성벽 규모와 축조공정 방식, 취사전용 건물지 발굴조사를 해 가야인의 생활사 복원을 위한 기초자료를 확보했다.   /문화재청
▲ 함안 가야리 유적. 문화재청은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에서 토성벽 규모와 축조공정 방식, 취사전용 건물지 발굴조사를 해 가야인의 생활사 복원을 위한 기초자료를 확보했다. /문화재청

◇김해·함안 등 몇몇 지역 고분군 중점 발굴 = 문화재청은 왕릉급 고분군 위주로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김해 봉황동 유적(금관가야 추정 왕궁지)과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함안 가야리 유적(아라가야 추정 왕궁지), 함안 말이산 고분군,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 등이 조사 대상에 올라 발굴됐다. 그중에서도 김해와 함안지역 유적이 중점 연구지로 꼽혀 매년 조사됐다. 중하위 계층 고분군은 발굴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고분군 이외에 생활유적과 같은 유산 발굴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영식 가야사학회장(인제대 명예교수)은 "<삼국지>와 <삼국유사>, <일본서기> 속 가야의 이름을 짚어보면 20개국이 넘는다"며 "지자체로 치면 20개 시군 정도가 있는 거고, 이는 그 시군들에 가야유적이 전부 퍼져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했다. 이어 "가야사를 제대로 밝히려면 가야 문화권 모두를 균등하게 조명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그 점에서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거나, 조사 성과가 많지 않았던 지역을 중심에 두고 조사를 하는 게 맞았지만, 지금까지의 조사는 김해나 함안 등 몇몇 지역에 한정된 그런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특정 대상에 조사가 국한된 건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기초조사가 잘못된 탓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지역적으로나 유적 형태로나 폭넓은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학회장은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정밀지표조사를 먼저 진행하고 문화유산 분포도를 살펴보면서 계획을 짜야 했는데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면서 "서두르다 보니 기초조사에 소홀했던 것 같다. 체계적 조사 없이 사업이 진행된 점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또 "지난 정부에서 사적으로 지정된 6개소 중 함안 가야리 유적을 뺀 5개소는 모두 고분군"이라며 "유적은 여러 형태가 존재하지만, 조사와 문화유산 지정 모두 고분군 중심이라 아쉽다"고 덧붙였다.

한 학예연구사는 주먹구구식으로 가야사 사업이 진행된 측면이 크다는 평가를 했다. 그는 "초창기에는 어느 기관에서 사업을 총괄할지도 정해져 있지 않았고, 실행해나갈 구체적인 계획도 없어서 우왕좌왕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남도 유적 전체 발굴이 안 된 부분은 여러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서 진행되지 않은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 전 기초조사 제대로 안해"
장기적 관점서 이끌 인력 부재
가야연구기관 경남 집중도 문제

◇학예연구직 인력 문제 국정과제 미포함 = 전문가들은 지역마다 연구직 공무원(정규직)이 아닌 임기제 형태로 학예연구사가 근무하는 도내 인력구조를 문재인 정부가 개선하려 하지 않은 점도 사업 미비점 중 하나로 손꼽는다. △조사연구 기반 구축 △실체 규명 연구 활성화 △역사문화유적 가치 재조명 △대국민 문화 향유 기반 조성 등 4가지를 핵심 과제로 선정해 영호남 주요 유적 발굴조사와 중요 유적·유물 문화유산 지정에만 집중했을 뿐,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끌어갈 수 있는 지역별 정규직 학예연구사 배치 관련 인력산업에 대해서는 어떤 내용도 사업계획에 담지 않아서다. 임기제 신분을 유지하면서 당장 눈앞에 놓인 행정 업무만 처리하는 데 급급한 현재 구조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는 평가다.

경남도 인사과가 제공한 '경남도 학예연구사 현황'을 보면, 지난달 28일 기준 도내 학예연구사는 66명이다. 그중 연구직 공무원은 33명, 임기제 공무원은 33명으로, 대부분 경남도(연구직 3명·임기제 9명)와 창원시(연구직 7명·임기제 7명)에 인력이 몰려있다. 진주는 시 소속 학예연구사가 없었다. 사천·남해·하동·산청·함양은 연구직 공무원이 없고 임기제 공무원만 각 1명씩 근무 중이었다. 그 밖의 시군은 연구직 2~4명, 임기제 3~4명이 일하고 있다. 특히 행정직 공무원이 아닌 실무를 책임지는 과장급 학예연구관은 도내에 한 명도 없다.

송원영 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장은 "경주시 같은 곳에는 학예연구관과 같은 전문가들이 과장을 맡으면서 문화재 관련 업무만 본다"며 "다른 지역에는 도청에 학예연구관이 있고, 시군에도 학예연구관이 있지만, 경남에는 도청이나 시군 어디에도 학예연구관이 없다"고 말했다. 송 관장은 "2년 일하다가 다른 부서로 옮기는 행정직 공무원과 달리 학예연구관은 다른 부서로 가지 않는다. 일이 잘못되면 그들이 모두 책임지는 구조"라고 했다.

그는 경남의 경우 문화재 관련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서 전문가들이 다 소외돼 있다고 토로했다. 송 관장은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10~20년 일한 학예사들이지만, 이들은 임기제인 경우가 많아서 관여할 수가 없다"며 "장기적으로는 전문인력의 전문성을 인정해주고 10~30년을 보고 갈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함안 우거리 토기 생산유적 전경.  /문화재청
▲ 함안 우거리 토기 생산유적 전경. /문화재청

◇가야 전문기관 경남 집중 = 문화재청은 오는 2024년 하반기 국립가야역사문화센터를 개소한다. 가야사 유적정보와 연구성과 자료를 통합 관리하기 위한 취지로 김해에 지어지는 연구소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가야 전문기관이 생기는 건 2019년 10월 전북 완주군의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에 이어 두 번째다.

문제는 김해에 새 연구소가 들어오면 국립김해박물관(김해),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창원),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완주)와 더불어 전국 가야 전문기관 4곳 가운데 3곳이 경남에 문을 열게 된다는 점이다. 경남지역이 명실상부 가야 중심지이긴 하나, 경남 이외의 가야 문화권에는 관련 기관이 1곳밖에 없다. 지역 균형을 맞추지 않은 결과라는 지적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박천수 경북대 교수는 "지역적으로 편중된 점을 빼면 가야사 사업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경남에만 연구소를 여럿 두기로 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가야가 영호남 권역을 확보하고 5세기 후반 일본열도 문명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역사를 고려하면, 유적의 중요성과 지역 균형 정책 관점에서 대가야 본거지인 경북 고령에 국립가야역사문화센터가 설립됐어야 한다는 게 박 교수 판단이다.

그는 "고령 대가야 유적은 경남에 있는 전체 가야 유적과 비교하더라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면서 "가야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이 고령에 있는데 조사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사업 전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편향적으로 사업이 진행된 건 문제"라고 했다.

/최석환 기자 csh@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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