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 관점에서 지역균형발전이라면
현 정부는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건가

서울에서 회의를 하다 시간에 쫓겨 일어나면 종종 듣는 이야기가 있다. "아, 시골 가셔야죠." 한국에서는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시골이다. 한국인들의 '인지적 지도'는 서울과 서울 부근, 시골로 구분된다. 그래도 예전에는 한 국가를 이루는 지역단위 차원에서의 기본적인 룰이 있었다.

서울은 정책, 경영, 법률, 금융, 무역, 마케팅의 고급 서비스 등 소프트웨어적 기능, 지역은 대규모 제조공장 건설, '지역 간 분산'을 통한 '지역균형발전' 추구. 이것이 산업화 이후 오랫동안 한국사회의 표준모델이었다.

정부는 공장건축 총량제 등으로 수도권의 제조업 진입을 억제했고 대규모 공장들을 땅값과 인건비가 싼 지역으로 가도록 유도해왔다.

1974년에 착공해 이제 거의 50년이 되어가는 창원국가산업단지도 이러한 분산전략의 산물이다. 울산과 거제지역 공업단지들도 마찬가지이다. 토지와 자본·노동이 제조업 생산의 3대 요소이던 시절에는 꽤 유용한 전략이었다.

2019년 SK는 경북 구미시의 파격적인 제안에도 120조 원짜리 반도체 클러스터를 서울에서 멀지 않은 용인에 착공하기로 결정했다. 4차 산업혁명의 세상, 디지털 세상이 되면서 게임의 룰이 완전히 바뀐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SK는 주민 반발로 공단 조성이 늦어지면서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용인에서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그때 구미시로 갔으면 각종 혜택 속에 공장도 이미 가동되어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을 것이다. 착공조차 하지 못하는 지금 상황을 당시 SK가 알았으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나는 그래도 SK의 선택은 수도권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는 싼값의 토지보다 경쟁력 있는 노동의 비중이 더 큰 세상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SK의 사례는 이제 '대기업 유치'를 통한 '지역발전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7월 중순 김병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위원장은 산업연구원 주최 세미나 강연에서 "윤 정부 지역균형발전,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하고 "지역이 주도적으로 발전 이끄는 새로운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말한다.

영국의 존 메이나드 케인스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거시경제학 창시자이자 정립자이다. 그의 이론을 받아들인 것이 1930년대 미국 대공황 당시의 뉴딜정책이다.

그는 시장에 맡겨두면 장기적으로는 좋아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혹은 정책 수단이 없다는 것을 '장기적'이라는 단어로 에둘러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헌법 123조 2항은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의 제헌절 축사도 현장 참석 대신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공개되는 세상이 되었다. 근데 그 축사에서 말하는 헌법정신에는 '지역균형발전'도 포함되어 있는 것일까? 있다고 믿어도 되는 것일까?

/김석환 부산대 석좌교수 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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