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산동 지석묘 '국가사적' 추진
정비 과정에서 현상 무단 변경
협의 절차 생략·허가사항 위반
시 "세세히 못 챙겨" 잘못 인정
도 문화재위원 "위기의식 없어"

▲ 세계 최대 규모 지석묘(고인돌)로 확인된 김해시 구산동 지석묘(경남도기념물 제280호) 정비공사 현장. /연합뉴스
▲ 세계 최대 규모 지석묘(고인돌)로 확인된 김해시 구산동 지석묘(경남도기념물 제280호) 정비공사 현장. /연합뉴스

김해시가 세계 최대 크기로 추정되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구산동 지석묘'(경남도기념물 280호)를 국가사적으로 승격시키려다 혼쭐이 났다. 전문가들은 김해시가 국가사적 지정 가치가 엄청난 고인돌 발굴·정비 사업을 하면서 문화재 훼손 이해도가 부족해 참사를 일으켰다고 비판했다.

시는 문화재 가치가 큰 지석묘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자 2021년 하반기 문화재청에 국가사적 지정 신청을 했다. 그러나 국가사적 지정 여부를 검토하고자 지난 5월, 7월 복원정비 현장을 찾은 문화재청이 지석묘 훼손을 발견하면서 김해시 문화재 행정이 직격탄을 맞았다.

시는 지석묘 훼손 파문이 커지자 지난 6일 보도자료를 내고 "구산동 지석묘가 경남도 문화재여서 경남도의 현상변경허가만 받고 문화재청 협의를 빠트렸으며 세세하게 챙기지 못한 점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지석묘 주변에 깔린 박석(얇고 넓적한 돌) 제거와 재설치는 '매장문화재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경남도와 문화재청 협의를 거쳐 시행해야 한다. 하지만 김해시는 문화재청 협의 없이 사업을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경남도가 허가해준 내용에서 벗어나 박석 훼손뿐만 아니라 깬 돌로 쌓은 기단에도 손을 댄 것으로 밝혀졌다.

7일 경남도 문화재위원들은 김해시 해명을 반박하고, 경남도 허가 사항을 지키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경남도가 허가해준 내용은 지석묘 주변 조경사업, 사람들이 둘러볼 수 있는 산책로, 수천 년 전 해반천에 홍수가 났을 때 이빨이 빠졌거나 소실된 기단과 박석 자리에만 다른 색 돌을 끼워넣는 정도였다"며 "도대체 왜 문화유적인 박석과 기단을 옮기고 손을 댔느냐"고 성토했다.

시는 구산동 지석묘 복원정비사업(구산동 1079번지 4600㎡ 일원, 2020년 6월~2022년 11월)을 하면서 문화재 정비·공사업체에 맡겨 박석을 손으로 들어내서 이동시킨 다음 제 위치로 다시 옮겨놓았다. 비어 있던 공간에는 기존 박석과 유사한 돌로 맞춰놓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박석과 기단을 이동시키기 전 경남도·문화재청과 협의하지 않고 이동·재설치한 것이다. 청동기 시대 그대로인 유적을 심각하게 훼손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실수이며 문화재 몰이해 관점의 행정이다.

시 관계자는 "정비사업 중 선사시대 지석묘를 사각형으로 둘러싼 제단 형태로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박석 중 현재 남아 있는 4개 구역 박석을 세척, 강화, 평탄 처리하고자 이동·재설치했다"고 말했다.

경남도 문화재위원들은 "구산동 지석묘는 세계 최대 고인돌이어서 국가사적 지정 가치가 크므로 김해시에 국가사적 지정을 먼저 한 뒤 정비사업을 하는 게 좋다고 여러 번 얘기했지만, 시는 정비사업 예산을 써야 한다며 사업을 추진해 도는 정비사업과 발굴사업을 동시에 하는 투트랙 방안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석묘 훼손으로 국가사적 지정은 천천히 할 수밖에 없다"면서 "현재 김해시는 이 사태에 대한 위기 의식도 없다. 문화재청 징계가 어떻게 나올지 추이를 지켜보고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지난 5일 현지 조사 결과 지석묘 밑에 박석과 박석 아래에 청동기시대 문화층이 있는데도, 정비공사 과정에서 김해시가 매장문화재법을 위반해 무단으로 현상을 변경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전문가들로부터 박석 이동 등으로 말미암은 구체적인 훼손 범위와 훼손 상태 확인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돼 훼손 범위를 파악할 수 있는 발굴조사를 하고 원상 복구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구산동 지석묘는 길이 10m, 너비 4.5m, 높이 3.5m, 무게가 350t에 달하는 국내 최대 고인돌이며 세계 최대 규모로 추정된다. 2007년 구산동 택지개발지구 공사 중 발견됐다. 그러나 세계 최대로 추정될 정도로 규모(350t)가 커서 당시 발굴 기술과 예산 확보 어려움 탓에 도로 흙을 채워 보존해왔다. 그러다가 2019년 종합정비계획 수립, 2020년 12월 시굴발굴조사와 정비공사를 시작했다.

/이수경 기자 sglee@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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