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실존인물 다룬 다큐
필름 든 상자 얻게 된 주인공
작품에 반해 작가 행적 추적
천재성·수수께끼 같은 삶 조명

2007년 겨울, '존 말루프'라는 남자는 경매장에서 필름이 가득 든 상자를 낙찰 받는다. 그 안에는 현상된 사진이 10만 장, 현상하지 않은 필름이 2700롤이나 들어있었다. 촬영한 사람의 이름이 '비비안 마이어'라는 것 외에는 어떠한 정보도 없었지만, 필름 일부를 현상해 본 존 말루프는 곧바로 이 사진들을 공개하기로 결심한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은 단 몇 장만 훑어보더라도 독특한 스타일 속에 배어 있는 휴머니즘과 유머러스에 반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사진작가 중 한 명으로 전시회마다 관람객이 북적이지만, 처음엔 온라인으로만 공개할 수밖에 없을 만큼 주류 갤러리와 미술관들의 외면을 받았다. 천재적인 사진을 남기고도 주류의 러브콜을 받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존 말루프는 그녀를 역사책에 싣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품고 그녀에 대한 정보를 찾아 나선다.

▲ 천재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 보모로 살며 10만 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지만 공개하지 않은 채 죽었다. /갈무리
▲ 천재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 보모로 살며 10만 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지만 공개하지 않은 채 죽었다. /갈무리

비비안 마이어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으며,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진을 찍어 놓고도 공개하지 않은 걸까. 존 말루프는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그녀의 이름을 수소문했고, 겨우 찾은 첫 번째 단서는 그녀가 이미 사망했다는 부고 소식이었다.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비비안 마이어'라는 인물은 긴 러닝타임 동안 그녀의 지인들이 서술하는 일화를 통해 그려지지만 점차 또렷하게 완성되어가는 초상화의 느낌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오히려 눈을 감고 코끼리를 만지는 듯 도저히 정형화할 수 없는 3D 입체조각에 가까우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그녀의 정체성과 발자취는 끊임없이 변형되어 서사에 연속적인 반전을 가져온다.

어쩌면 그녀를 '프랑스 억양이 묻어 있는, 키가 크고 스타일이 독특한, 유모라는 직업으로 여러 집을 전전하면서도 셀 수 없이 많은 사진을 남긴 여성' 정도로만 눙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녀가 프랑스 억양을 흉내 낸 거라 하고, 누군가는 그녀의 고향이 프랑스라 말한다. 아이들에게 따뜻했다고도 하고, 모질고 차가웠다고도 말한다. 말이 많고 정감 있었다고도, 왠지 어두운 면이 많았다고도 한다. 그녀는 이미 세상에 없으므로 그녀에 대한 정의는 주변 사람들이 제각각 제시하는 퍼즐 조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조각들은 서로 아귀가 전혀 맞지 않거나 색깔이 완전히 다른 것들도 제법 섞여 있다.

▲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  /갈무리
▲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 /갈무리

사후에 쫓아본 그녀의 행적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입체적인 인물을 복원시킨다. 그렇게 사진에서 시작된 호기심은 점차 작가 그 자체에 대한 궁금증으로 확장된다. 성찬식이나 결혼식 자리가 아니고는 사진을 찍지 않던 1950년대, 그때 당시 이미 이웃들의 얼굴과 생활을 찍었던 수집가이자 저널리스트이자 혁명가이자 철학자였던 그녀는 유모라는 직업으로 결코 귀결될 수 없는 거대한 아이덴티티를 지니고 있다. 깊이를 가늠할 수도 없고 성향을 종잡을 수도 없는 이 기분은 글로 다 표현되지 않기에 꼭 영화를 통해 그녀를 만나보길 권하고 싶다.

비비안 마이어의 필름들은 이제 전시회에서 영화로, 갖가지 콘텐츠로, 상품으로 변주되고 있다. 살아생전에는 '무엇도' 이루지 못했을지언정, 일평생 숨 쉬듯 지속했던 활동들이 이제는 '무엇이든' 되어가고 있다. 예술을 포함한 인문학은 이전의 무언가를 자양분 삼아 끊임없이 탈피하며 재창조된다. 일부는 이미 예술이 규격화되고 계급화되어 하나의 장벽을 이루고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비비안 마이어라는 존재는 그 벽을 깨부수고 초월하며, '주변인에 불과했던 한 사람'에서 '오리지널리티를 얻은 크리에이터'가 되었다.

▲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  /갈무리
▲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 /갈무리

어쩌면 '비비안 마이어'의 이야기를 두고 그저 신화 같은 이야기쯤으로 치부하고 싶어질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내가 묵묵히 이뤄가는 작은 조각들이 언젠간 큰 광원이 될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긍정을 가지게도 된다. 양적 성취는 그 자체로도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비비안 마이어'는 그 생각을 증명해주었다.

8월 첫 주는 전 국민의 휴가철이다. 혹여나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 영화와 함께 국내에서 열리는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전을 찾아가 보는 것도 좋겠다.

/전이섬 작가(마산영화구락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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