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정부의 가야사 연구복원 사업 (상) 사업 성과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로 추진
가야문화 이해·인식제고 본격화

김해 봉황동·함안 가야리 유적
주거·건물지·토성·접안시설 등
금관·아라가야 규명·실체 확인

2017년 6월 1일 오전 청와대 여민1관 소회의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날 소회의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약간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라고 운을 뗀 뒤 "가야사 연구 복원을 국정기획위가 정리 중인 국정과제로 포함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어 "보통 가야사가 경상남도를 중심으로 경북까지 미치는 이런 역사로 생각들 많이 하는데 섬진강 주변, 그다음에 또 광양만, 순천만 심지어는 남원 일대 그리고 금강 상류 유역까지도 유적이 남아 있는 넓은 역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야사 연구복원은 영호남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이 발언이 나온 이후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가야사 연구복원 사업이 포함됐다. 김대중 정부 때 국책 사업으로 가야사 1단계 정비사업(김해 가야역사문화환경 정비사업)이 추진된 뒤처음으로 국정과제에 가야사 연구복원 사업(가야사 2단계 정비사업)이 담겼다. 정권을 넘겨받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전임 정부 때 세워진 계획에 따라 막바지 사업이 진행 중이다. 역대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이 쏠렸던 가야사 연구복원사업은 여러 성과와 함께 미비점도 드러냈다. 사업 성적표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세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 함안 말이산 고분군.  /경남도
▲ 함안 말이산 고분군. /경남도

◇가야사 실체 규명 연구 활성화 = 문화재청은 국정과제에 포함된 2017년부터 영호남지역 주요 가야문화권에 퍼져있는 유적 발굴조사를 계획했다. 그중 김해와 함안 등 왕궁 추정지와 호남 동부, 대가야·아라가야권 등 중요 유적을 대상으로 한 발굴조사를 우선적으로 추진했다.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거나, 유적을 보존·관리해나가는 데 필요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취지다.

이를 위해 문화재청은 경남을 비롯한 경북, 부산, 전라지역 가야유적 30곳을 선정했다. 김해 봉황동유적과 함안 가야리 유적,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함안 우거리 토기 생산유적,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 장수 동촌리 고분군 등이 대상으로 정해졌다. 선별된 유적들은 활용계획에 따라 일부 발굴됐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많은 예산이 사업에 들어갔다. 문화재청이 제공한 '가야문화권 조사연구정비 및 활용 사업 추진 현황'을 보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문재인 정부에서 지출된 가야사 연구복원 총사업비는 3005억 원(국비 2135억 원·지방비 870억)이다. 문 정부는 먼저 가야사 사업을 벌인 김대중 정부(1297억)보다 2.3배 넘는 예산을 썼다. 문 정부 전임 정권이었던 박근혜 정부(2012~2016년) 당시 339억 원을 쓴 것과 비교해도 9배 가까이 많은 예산이 지난 정부에서 더 쓰였다.

이영식 가야사학회장(인제대 명예교수)은 "비약적 성과를 낸 중요한 발굴조사가 지난 정부에서 잇따라 진행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함안 아라가야의 위상과 국제성을 보여주는 중국 남조에서 제작된 연꽃문양 청자그릇이나, 새 두 마리가 마주보고 있는 유물(봉황장식금동관) 등 굵직한 발굴이 많았다"며 "이런 성과는 모두 가야사 복원사업 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근 국립김해박물관장은 "지난 정부에서 가야사 복원을 내세운 뒤 전국적으로 많은 지자체와 대학교수, 연구자 등이 가야사 연구를 목표로 열심히 달려왔다"면서 "국정과제에 포함되면서 가야에 대한 국민 관심이 높아졌는데, 가야가 고구려 백제 신라 정도와 대등하게는 아니어도 비슷한 시기 어느 지역에 있었던 나라인지, 국민 관심 범위 안으로 들어온 점은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함안말이산·창녕계성 고분군 등
역사적 가치 인정받아 사적 지정
수정목걸이 등 유물 12개 보물로

▲ 합천 옥전고분군 M4호분 출토 금귀걸이.
▲ 합천 옥전고분군 M4호분 출토 금귀걸이.
▲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목걸이.
▲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목걸이.

◇김해·함안 가야 왕궁 추정지서 유력 집단 흔적 재확인 = 김해와 함안지역 가야 왕성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김해 봉황동 유적과 함안 가야리 유적을 잇따라 발굴한 문화재청은, 이들 유적이 과거 두 가야국의 핵심지역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김해 봉황동 유적은 금관가야 왕궁지로, 함안 가야리 유적은 아라가야 왕궁지로 추정돼 온 곳이다.

김해 봉황동 유적과 그 주변 일대에서는 국정과제 포함 전후로 여러 차례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조사 결과 주거지와 고상건물지(기둥을 세워 높여 지은 건물 터), 토성, 접안시설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됐다. 그동안 파악되지 않았던 봉황동 유적(동쪽 지점)의 전체적인 층위 양상과 가야 시기 대형 건물지 존재도 드러났다.

왕궁으로 추정되는 건물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유적에서는 화로형토기와 통형기대(긴 원통을 세워둔 모양의 그릇받침), 각배(뿔 모양 잔), 토우 등 의례용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다수 발견됐다. <김해군읍지(金海郡邑誌)>의 수로왕궁터 기록을 근거로 금관가야 중심 세력 실체를 찾기 위해 매년 발굴조사를 벌인 끝에 얻은 성과다.

문화재청은 함안 가야리 유적이 가야문화권 최대 규모 토성임을 확인했다. 가야리 유적은 아라가야 전성기인 5~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왕궁지(추정)를 둘러싼 토성 길이는 2㎞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신라 왕궁인 경주 월성(약 2.34㎞), 백제 왕궁인 부여 부소산성(약 2.4㎞) 등과 비슷한 규모다.

대규모 토목공사로 축조된 토성과 울타리 시설을 비롯한 대규모 건물지 14동 등도 조사됐다. 건물터에서는 군사적 성격을 가진 대규모 토성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쇠화살촉과 작은 칼, 쇠도끼, 비늘갑옷(찰갑) 등이 출토됐다.

▲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발굴조사 현장.  /문화재청
▲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발굴조사 현장. /문화재청

◇고분군 6곳 사적 신규·추가지정 = 문 정부에서는 가야고분군 6곳이 국가사적으로 새로 지정됐다. 전국에 있는 사적 523개 가운데 사적으로 지정돼 있던 가야유적은 30곳이 안됐지만, 지난 결정으로 사적이 된 가야고분군은 6곳이 늘어 32곳이 됐다. 사적으로 지정되면 문화재 보존관리 명목으로 지자체에 국가예산이 지원된다.

사적으로 신규·추가 지정된 유적은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2018년 3월) △창녕 계성 고분군(2019년 2월) △장수 동촌리 고분군(2019년 10월) △함안 가야리 유적(2019년 10월)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추가지정, 2021년 7월) △합천 삼가 고분군(2021년 11월) 등 6곳이다. 이 가운데 5곳은 문화재 가운데 가장 높은 관리등급인 사적(국가지정문화재)으로 신규 지정, 나머지 1곳은 함안 남문외 고분군까지 사적 지정 범위를 확장해 말이산 고분군으로 유적 이름이 통합됐다.

또한 문화재청은 발굴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가야유물 12개를 보물로 지정했다. 2019년 3월~2020년 12월 사이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을 비롯해 △부산 복천동 38호분 출토 철제갑옷 △합천 옥전 M4호분 출토 금귀걸이 △함안 마갑총 출토 말갑옷 및 고리자루 큰 칼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목걸이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아 국가보물이 됐다.

이동희 인제대 교수는 "각 지자체가 관심을 가지고 유적을 발굴했다"며 "고고학적인 면에서 볼 때 새로운 자료를 밝혀내는 데 가야사 사업이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그동안 소외돼왔던 가야였지만, 국정과제에 포함된 뒤 많은 조사가 이뤄질 수 있었다"면서 "왕릉급 유적에서 나온 연구성과도 컸다. 사적 지정이나 보물지정 역시 큰 성과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석환 기자 csh@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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