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맞춘 빌라 주인 - 새 임차인
중개사무소 찾아 계약서 작성
이미 세입자 존재…수사 의뢰

이미 임차인이 있는 부동산을 대상으로 '이중 전세임대차계약서'를 쓰려한 일당이 창원 공인중개사무소 여러 곳에 나타난 정황이 확인됐다. 이 수법에 당하면 기존 임차인 권리가 훼손될 뿐 아니라, 계약을 진행한 공인중개사도 피해를 볼 수 있다.

<경남도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18일 창원시 도계동 한 공인중개사무소는 수상한 전화를 받았다. '임대인 대동 없이' 전세임대차계약서를 써 달라는 요구였고, 물건은 도계동 한 공동주택(빌라) 가구 1곳이었다. 이 부동산 소유권자 ㄱ 씨는 위임장·인감증명서 등을 보낼 테니 사무실에 찾아온 청년 ㄴ(20) 씨와 계약서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현재 서울에 있고 바빠서 직접 오기 어렵다는 이유를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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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인 ㄱ 씨가 보낸 신분증 사본 확인 결과 이 물건 등기사항전부증명서상 소유권자가 맞았다. 하지만, 미심쩍은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유는 △갓 스무 살을 넘긴 ㄴ 씨가 1억 원이 넘는 전셋집을 구한다는 점 △집 주소가 인천인데, 피시방에 취업하고자 전셋집을 구하러 왔다는 상황 설명 △계약금 이체 내역을 증빙하지 못하는 점 △ㄱ 씨는 ㄴ 씨를 친한 동생이라고 하는데, 정작 ㄴ 씨는 인터넷을 보고 연락했다고 하는 점 등이었다. 공인중개사가 계약서 대필을 거부하자, 임대인은 욕설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ㄱ·ㄴ 씨는 이틀 사이 구암동·용호동 등 인근 부동산에서 비슷한 수법으로 계약서 대필을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공인중개사무소 여러 곳에 관련 정보가 공유됐고, 이 부동산 물건이 지난 3월 다른 세입자와 전세임대차계약을 진행한 곳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도계동 한 공인중개사무소가 진행한 물건이었다. 임대인을 자처한 ㄱ 씨는 지난 5월 해당 물건을 취득했다.

계약서 작성을 계속 거부당하자 지난달 29일부터는 임대인이 직접 현장에 동행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사림동·봉곡동 공인중개사무소를 돌며 같은 요구를 계속하다 한 공인중개사무소와 허위 임대차계약서 작성에 성공했다. 임대인·임차인이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말을 맞춘 데다, 모든 서류가 일치했던 까닭이다. 세입자가 이미 살고 있는 현장을 직접 찾아가보지 않았던 점이 실수였다. 비슷한 일을 겪은 공인중개사들이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경남지부 소통공간에 관련 정황을 공유했지만,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다행히 기존 임차인은 공인중개사 안내에 따라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한 상황이다.

임차인이 허위로 작성된 임대차계약서를 금융기관에 제출하고 전세대출을 받으면 일이 복잡해진다. 정상적인 임대차계약을 맺고 살고 있던 기존 임차인 대항력이 위태로워지는 데다가, 현장을 확인하지 않고 계약을 진행한 공인중개사는 지자체에서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 더구나 이중 계약을 맺은 뒤, 허위 임차인으로부터 '기존 임차인 확인 없이 계약을 진행했다가 전세금을 떼였다'는 명목으로 공인중개사협회 공제금을 청구받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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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갑 지부장은 "이런 일이 있을 경우, 해당 부동산 인근 중개사무소에서 상황을 확인하거나, 전입세대열람 절차로 임차인 존재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협회 경남지부는 이 일을 경남경찰청에 수사 의뢰했다. 경남청은 금융감독위원회 및 은행연합회 등 관련 기관에 협조 공문을 보내 관련 정보를 공유했다. 최대웅 경남경찰청 수사과 범죄첩보수집분석팀장은 "현재 범죄 첩보를 수집하고 있고, 단서가 모이면 수사 부서에 인계해 입건 전 조사(내사) 단계로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임대인 ㄱ 씨는 "지난 5월 갭투자로 부동산을 취득하고 나서, 수상한 업자들에게서 연락이 왔다"라며 "소개해주는 임차인과 임대차계약을 맺어 주면, 자신들이 쓰는 방법으로 집을 팔아주겠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계약을 맺은 임차인과도 연락이 닿지 않으며, 경찰에도 이미 그렇게 진술했다"라고 덧붙였다.

/이창우 기자 irondumy@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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