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20곳 보도자료 200건 분석
60.5%에서 외국어·외래어 등 포함
흔히 쓰는 단어 대부분 설명 없어
우리말 두고 어려운 한자어 쓰기도
국어책임관 역할·범위 정착 필요성

"어떤 혜택이 있는지 이 종이 좀 읽어 주실랍니까. 내가 나이가 많아서 무슨 말인지…."

지난 7월 8일 함안군이 낸 보도 자료에 담긴 내용이다. 이 보도 자료에는 복지 체계·지원 안내문을 읽기 어려운 노인 등 대상자에게 자세히 안내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경남 지역 공공 기관이 내놓은 보도 자료는 얼마나 '친절'할까. 각종 예고부터 행사 안내, 모집, 추진할 정책 등을 담은 보도 자료는 각 지자체 누리집 등을 통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배포되고 있다. 그런 만큼 보도 자료는 모든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쓰여야 한다.

<경남도민일보>는 도내 공공 기관 20곳에서 올해 7월 1일부터 나온 보도 자료를 10건씩, 모두 200건을 살펴봤다. 보도 자료는 형평성 등을 고려해 순차적으로 모았다. 또 단순 행사 안내와 모집, 연례적인 것은 제외하고 정책적 내용이 담긴 보도 자료를 대상으로 했다. 한 해에 기관별로 수백 건씩 만들어지는 보도 자료 중 10건만 놓고 외국어·외래어, 어려운 한자어 사용 비율이 낮다거나 높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고쳐야 할 점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 의령군 보도 자료를 바탕으로 보도된 신문 기사. '디지털 트윈'(형광색 표시)이라는 낱말이 기사에도 뜻풀이 없이 그대로 사용됐다.  /강해중 기자
▲ 의령군 보도 자료를 바탕으로 보도된 신문 기사. '디지털 트윈'(형광색 표시)이라는 낱말이 기사에도 뜻풀이 없이 그대로 사용됐다. /강해중 기자

◇무분별한 외국어·외래어 = 살펴본 보도 자료 200건 중 60.5%에서 외국어, 외래어, 어려운 한자어, 번역 투 등이 발견됐다.

기관별로 경남도 6건, 경남교육청 3건, 창원시 4건, 진주시 7건, 통영시 4건, 사천시 6건, 김해시 6건, 밀양시 7건, 거제시 6건, 양산시 7건, 의령군 10건, 함안군 7건, 창녕군 4건, 고성군 4건, 남해군 6건, 하동군 7건, 산청군 5건, 함양군 9건, 거창군 4건, 합천군 9건 등이다.

ICT(정보통신기술),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등처럼 여러 공공 기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외국어·외래어를 쓸 때 그 뜻을 풀이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하지만,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설명 없이 그대로 쓰는 사례가 많았다.

특히 '모니터링, 인프라, 벤치마킹, 네트워크, 플랫폼, 힐링, 트렌드, 굿즈, 테마, 크리에이터, 컨설팅, 인센티브' 등과 같은 단어들이 관습적으로 사용되는 일이 많았다. 차례대로 '점검·관찰, 기반·기반시설, 본받기, 관계망·연결망, (온라인)체제 기반·거래터, 치유, 유행·흐름, 팬 상품, 주제, 창작자·창작 활동가, 조언·상담·자문, 성과급·특전·혜택'으로 바꿀 수 있다. 이 단어들만 고쳐도 지자체들이 내놓는 보도 자료 내용을 이해하기 한결 쉬워진다.

전문지식이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낱말인데도 우리말로 풀이해 놓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진주시는 7월 1일 자, 7월 4일 자 보도 자료에서 'UAM', '버티포트', 'SDGs' 등 단어를 썼다. 순서대로 도심항공교통, 이착륙장,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말한다. 또 밀양시는 7월 15일 자 보도 자료에서 '저녹스보일러' 보급 추가 접수를 알렸는데, 시민들이 저녹스보일러가 무엇을 말하는지 퍼뜩 이해할 수 있을까. 저녹스보일러는 질소산화물(NOx) 저감 효과가 높게 연소 방식을 개선한 친환경 보일러를 말한다. 합천군은 7월 5일 자 보도 자료로 한 농가의 한우가 경북 고령축산물공판장에서 올해 상반기 최고가를 기록했고, 농가 비법을 알리면서 'TMF사료' 표현을 썼다. 완전혼합발효사료(TMF)라고 소개했으면 더 쉽게 전달됐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그 뜻을 설명하지 않으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를 쓰는 경우도 종종 보였다. '마이스, 러스틱라이프, 디지털 트윈' 등 단어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의미를 알아채기 어렵다.

경남도가 '경남 개최 컨벤션 행사 참가자에게 철도할인 혜택을 제공'(7월 7일 자)한다는 보도 자료에서 '마이스'라는 단어를 뜻도, 영문 철자도 쓰지 않았다. 마이스는 Meeting(기업 회의), Incentive travel(포상 관광), Convention(국제회의), Exhibition and event(전시 박람회와 이벤트)의 영문 약자로, 국제 회의·전시회·박람회 따위를 통해 대규모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는 '전시 복합 산업' 정도로 다듬으면 된다.

거제시는 '한국여행작가협회 초청 홍보여행 개최'(7월 25일 자) 기사에서 '러스틱라이프(Rustic life)'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말은 '시골 특유의' 뜻의 러스틱(Rustic)과 '생활'을 뜻하는 라이프(Life)의 합성어로, 도시를 떠나 시골 고유의 매력과 편안함을 즐기는 시골형 생활양식을 의미한다. 이어지는 문장 "…자연과 시골 고유의 매력을 즐길 수 있는…"을 읽어보면 뜻을 유추할 수 있지만 바로 와닿지는 않는다.

이 밖에도 '키오스크(무인 주문기), 메타버스(확장 가상 세계), 거버넌스(민관 협력·협치), 정크아트(폐품 예술)' 같은 단어들도 뜻풀이 없이 사용된 사례다.

어려운 한자어도 눈에 띄었다. 창원시(7월 18일 자)와 김해시(7월 5일 자)는 '녹지공간 조성' 보도 자료에서 '초목을 심어 재배함'이라는 뜻의 '식재(植栽)'를 사용했다. 이 단어는 '심기'로 고치면 이해하기 쉽다. 거창군은 '소규모 공영주차장 준공'(7월 11일 자) 기사를 내면서 '나대지(裸垈地)'를, 통영시는 '장기방치 쓰레기 정비'(7월 26일 자) 기사에서 '공한지(空閑地)'를 썼다. 나대지는 '지상에 건축물이나 구축물이 없는 대지', 공한지는 '집을 짓지 않은 빈터'라는 뜻으로 이들은 '빈터'로 바꿔 쓰면 된다.

◇국어책임관제 정착해야 = 보도 자료 등 공문서는 국어기본법에 따라 한글로 알기 쉽게 작성해야 한다. '인공지능(AI)' 등처럼 한글이 우선이다. 다만, 어렵거나 낯선 전문어·신조어를 사용할 때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어쩔 수 없이 외국어를 써야 한다면, 한글을 먼저 쓰고 괄호 안에 외국어를 나란히 적어야 한다. '리쇼어링(Reshoring)' 같은 방식이 예다.

또 국어기본법은 공공 기관의 정책이나 업무를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국어책임관을 두고 그로 하여금 쉬운 용어 사용을 장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지 못하다.

의령군의 '드론지도 구축 계획'(7월 6일 자)을 알리는 보도 자료에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쓰였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 세계의 기계나 장비, 사물 등을 컴퓨터 속 가상 세계에 똑같이 구현하는 기술로, 한글문화연대의 <쉬운 우리말 사전>에서는 '디지털 복제'로 다듬기를 권하고 있다.

의령군은 또 '조명을 활용한 도시 경관 개선 정책'(7월 26일 자)을 알리는 보도 자료에 제목에서부터 "Light up(라이트 업)으로 도시 대변신 예고"라며 영문을 그대로 사용했다. 영어를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읽는지, 뜻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의령군 담당자는 "매일 나오는 보도 자료 양이 많고, 신속성이 중요하다보니 감수 과정을 거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 전문 분야는 단어를 바꾸면 정확성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면서 "외국어를 쓸 때 우리말 뜻풀이를 함께 쓰는 것을 놓친 부분이 있지만, 가능한 한 우리말로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어책임관이 매주 내부 게시판에 올리는 '공공 언어 바로 쓰기'를 참고한다"고 덧붙였다.

경남교육청 보도 자료에는 비교적 외국어·외래어 등이 적었는데, 지난 2월 국어 전문가를 채용해 보도 자료 등을 꼼꼼히 살핀 결과로 보인다. 국어 전문가는 찾아가는 공공 언어 바르게 쓰기 교육 등도 하고 있다. 또 도교육청은 최근 교육지원청과 직속 기관까지 포함해 모두 24명 국어책임관과 109명 국어 담당자를 지정해 공공 언어 바르게 쓰기 운동을 강화하고 있다.

/김희곤 강해중 기자 hgon@idomin.com

※ 감수 김정대 경남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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