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가치를 지키는 사람들 (3) 상동면 대감마을 이봉수 마을만들기 추진위원장

농촌 소멸 해법 고민하다가 '문화·환경으로 살려야' 결론
분청사기와 도공 백파선 고향...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만들어

"고향에서 나서 자라고 평생을 살다 보니 젊은이들이 다 떠나가고, MB정부 때 4대 강 사업 하면서 감자와 산딸기 농사를 짓던 낙동강 변 4개 마을은 소멸 위기에 처했죠. 공장은 엄청 많고 출퇴근 노동자도 많은데, 지역사회가 별개로 호흡하는 게 보기 안타까웠습니다. 한때는 정치로 문제를 풀어보려 했지만 정확한 길이 아닌 듯해서 결국은 지역 문화와 환경을 사람 살만한 곳으로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김해시 상동면 대감마을 이봉수(67) 마을만들기 추진위원장은 농촌 난개발, 소외, 인구 감소 등 농촌지역 소멸을 걱정했다. 개발 일변도 의식 자체를 진정시키고, 호흡을 깊이 해서 지속가능한 마을을 유지하는 슬로마을 가치를 지키고자 한다.

▲ 김해시 상동면 대감마을 백파선 카페 앞에 선 이봉수 위원장. /이수경 기자
▲ 김해시 상동면 대감마을 백파선 카페 앞에 선 이봉수 위원장. /이수경 기자

◇역사와 전통이 숨 쉬는 삼통문화 = 대감마을에 도착하면 백파선 광장과 함께 백파선 카페가 보인다. 백파선 카페 왼쪽 담장 위에 도자기 조각으로 꾸며놓은 벽면을 보니 '김해 분청도자의 발원지, 감물야촌 도요지'라는 한자가 대감마을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해준다.

대감마을은 2017년 문화마을 조성사업을 하면서 '삼통(三通) 문화'를 내세웠다. 분청사기 발원지, 가야 야철지, 조선시대 곡물 저장·물류 거점인 사창 3가지 문화자원이 공존한다는 의미다. 삼통문화를 중심으로 마을을 스토리텔링하고 지역주민이 함께 역사·전통 문화마을을 일구고 있다.

마을 안길은 삼통테마길로 이름붙였다. 느릿느릿 골목을 걸으며 그림과 글을 찬찬히 읽다 보면 어느새 조선시대 대감마을로 스며든다. 도자기 만드는 도요지와 가마터, 백파선이 일본으로 끌려가는 여정, 철의 나라 가야(상동) 대장간 모습, 일본에서 추앙받은 백파선 이야기, 매화·새 날개 포토존까지 만난다.

▲ 그림으로 꾸민 김해시 상동면 대감마을 벽면. /이수경 기자
▲ 그림으로 꾸민 김해시 상동면 대감마을 벽면. /이수경 기자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백파선 이야기 = 대감마을은 조선 최초 여성 도공 백파선(百婆仙·1560~1656)과 남편 김태도의 고향이다. 백파선 카페 안 벽면에 걸린 백파선 일대기를 읽고 주차장에 있는 마을 안내 지도를 보고서 골목을 따라 한 바퀴 돌면 백파선 역사를 간파할 수 있다.

백파선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인들이 존경하는 아리타 도자기의 대모가 됐다. 백파선·김태도 부부는 대감리 가마터에서 나베시마의 가신인 고토 이에노부에게 잡혀 죽도 왜성으로 끌려가 감금돼 있다가 일본으로 갔다. 그들은 걸작인 막사발과 향로 등을 만들어 이에노부 영주에게 상납했고, 김태도는 1618년 세상을 떠났다. 이후 백파선은 아들과 백자에 몰두하다 아리타에서 양질 도석이 발견돼 조선 사기 일족을 데리고 아리타로 옮겨 도자기 제작에 전념하다가 96세에 생을 마쳤다.

이 위원장은 "어렸을 때 일본인들이 마을을 가끔 방문했는데 도자기를 찾으러 왔다고 했었다. 백파선 고향이란 게 일본에 더 많이 알려져 백파선 도자기를 직접 보려고 온 것이었다"며 "상동 출신 김맹곤 전 김해시장이 분청사기 가마터 발굴에 관심을 뒀고, 2016년 '金海(김해)'가 새겨진 도자기가 발굴된 이 가마터가 경남도 기념물로 지정됐다"고 말했다.

▲ 도자기 조각으로 꾸민 김해시 상동면 대감마을 벽면. /이수경 기자
▲ 도자기 조각으로 꾸민 김해시 상동면 대감마을 벽면. /이수경 기자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에 '감물야촌(甘勿也村)'이라 불린 김해 상동 대규모 요업단지에 도기장 4명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입증하는 유물(왕실 기구)도 나왔다. 2020년에는 400년 전 도자기임을 알 수 있는 한글이 새겨진 '상동준발', 2021년 묵방리 백자가마터도 발굴됐다. 올해도 김해시와 문화재청 지원을 받아 발굴을 이어가고 있다.

이 위원장은 "상동 가마터 발굴이 완벽히 이뤄지면 기원전 3세기 김해 예안리 유적, 국내 최초 조개무지 회현동 패총, 봉림리 고려청자, 상동 분청사기와 백자까지 김해 도자기 역사가 곧 한국도자 역사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백파선을 홍보하고자 지난해 극단 진영과 백파선 연극을 제작해 주민들을 배우로 출연시켜 마을 주차장과 공연장에서 2회 발표했다. 감물야촌 대축제도 펼쳤다. 백파선 가마터가 대감마을에서 확인되면 가마터도 복원할 계획이다. 현재 백파선연구소를 운영 중이며, 백파선기념관과 도자기념관도 설립할 예정이다.

▲ 그림으로 꾸민 김해시 상동면 대감마을 벽면. /이수경 기자
▲ 그림으로 꾸민 김해시 상동면 대감마을 벽면. /이수경 기자

◇주민 참여 문화 지속·치유마을 프로젝트 기획 = 이 위원장은 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문화가 지속가능한 농촌마을문화라고 여긴다.

1990년대 중반 대포천은 3∼4급수였으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수질개선운동을 벌여 1998년 이후 1급수로 되살아나 모범적인 하천 관리로 전국적 명성을 얻고 있는 것도 그의 의지 덕이다. 2007년 청년 중심 법인체 '맑은 물 사랑 사람들'을 창립해 기업과 주민, 학생들에게 환경운동을 인식시키고 오염을 방지하는 슬로시티 운동도 지속하고 있다.

그는 백파선 연극을 비롯해 코로나19로 멈췄던 주민 오케스트라 공연도 할 계획이다. 주민 소득을 위해 주말 상설 공연과 농산물 프리마켓도 열 작정이다. 산딸기, 도토리묵 등 주민이 농작물을 직접 판매하는 장터다. 전통 한지와 상동농악 복원 계획도 있다. 상동 출신 문인화 작가인 차산 배전 선생 조명과 함께 배전의 소실이며 김해관기였던 강담운 시집도 스토리텔링해 차산 배전문학관 건립까지 꿈꾸고 있다.

대감마을 300가구 중 절반 정도가 이용하는 마을회관이 좁아서 연극 연습시설과 공연장(소극장) 등으로도 활용할 다목적복합지원센터 건립도 추진 중이다.

이 위원장은 "대감마을에 65세 이상만 150명"이라며 "마을에 공동 취사시설을 만들어 주민들을 요양보호사로 양성하고 치매를 예방할 수 있도록 네덜란드형 치유마을로 만들어나가는 게 장기적 목표"라고 밝혔다.

열정 넘치는 그의 목소리에서 긴 호흡도 묻어나왔다. "문화, 자연환경, 치유마을 프로젝트를 갖고 노인들은 편하게, 젊은이들에겐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하는 공동체마을로 나아가려면 지역 기업인과 지역민이 일체감이 돼야 합니다. 슬로시티 마을, 문화마을 지정으로만 끝나지 않게 주민들이 인식해야 하고요. 대포천, 백파선, 도자기 주제로 행사를 이어가고, 올가을 주말텃밭에 참여한 도시민과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백파선 광장에서 추수감사제도 해볼까 합니다. 전통 벼를 추수해서 쌀을 도정하고 밥 짓고 떡 하고 김치도 담가서 가져가도록."

/이수경 기자 sglee@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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