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시티 김해 '느린 가치'를 지키는 사람들 (2) 진례면 하촌마을 박세철 전 이장

박 전 이장·주민 자발적 나서
시례천 쓰레기 치우고 꽃 심어
1급 하천 품은 동네로 탈바꿈
김연아 '오고 싶은 마을' 꼽아

오랜 세월 효(孝) 문화를 간직하고 골목에 효 주제 벽화를 그려 놓아 마을을 한 바퀴 돌면 여운이 남는 '슬로마을'이 있다.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에 있는 '반효자 조효녀 발자취를 따라 걷는 하촌 효(孝) 문화마을'이다.

하촌마을은 바로 옆에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과 김해분청도자박물관이 있어 관광객들이 마음만 먹으면 쉽사리 산책할 수 있는 동네다. 효 문화와 더불어 아름다운 시례천(시례누리길)과 골목미술관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쓰레기 가득찬 시례천 '1급 청정하천' 탈바꿈 = 지난 14일 만난 박세철(59) 전 이장은 2019년 '도랑품은 청정마을', 2020년 '안전하고 아름다운 소하천'에 선정된 시례천을 먼저 안내했다.

생활쓰레기로 가득찼던 시례천은 박 전 이장과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 청정마을로 탈바꿈시킨 혁신 사례로 정평이 나 있다. 하촌마을은 2018년 낙동강유역환경청 주관 '마을 도랑살리기 공모전'에 뽑혔다. 주민들이 직접 낫과 괭이를 들고 도랑 쓰레기를 치우고, 도랑에 푸른 창포와 미나리를 심어 가꿔 시례천을 1급 청정하천으로 바꿨다. 당시 피겨 여왕 김연아 씨가 유튜브에 '오고 싶은 마을'로 하촌마을을 소개해 조명 받기도 했다.

▲ 박세철 전 하촌마을 이장이 반포지효(反哺之孝) 골목 벽화를 소개하고 있다.
▲ 박세철 전 하촌마을 이장이 반포지효(反哺之孝) 골목 벽화를 소개하고 있다.

박 전 이장은 "시례천 산책로는 봄엔 40년 된 벚나무, 여름엔 초록 풍경, 가을엔 단풍이 멋지고, 마을만들기 사업을 해서 산책로에 AR(증강현실) 포토존 3곳도 만들어 놓았다"고 소개했다. 벚나무를 터치하면 벚꽃잎이 휘날리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벚꽃잡지 포토존 AR', 금이 간 화면을 터치하면 물고기가 돌아다니는 '아쿠아 포토존 AR', 원하는 한복을 골라 입으면 캐릭터들이 움직이는 '클레이아크 포토존 AR'가 소소한 재미를 준다. '시례누리길AR' 앱을 내려받아 화면에 나오는 이미지를 포토존에 비추면 캐릭터가 나타난다.

▲ 김해시 진례면 하촌마을 시례천 산책로에 있는 '벚꽃잡지 포토존 AR'. 벚나무를 터치하면 벚꽃잎이 휘날리고 나비가 날아다닌다.
▲ 김해시 진례면 하촌마을 시례천 산책로에 있는 '벚꽃잡지 포토존 AR'. 벚나무를 터치하면 벚꽃잎이 휘날리고 나비가 날아다닌다.

◇반효자·조효녀 정려비와 효(孝) 골목미술관 = 주민들 사이에 '예동'(禮洞)으로 불려온 하촌마을에서 효 문화는 김해시가 슬로마을로 지정한 핵심 가치다.

시례천을 따라 쭉 올라가면 오른쪽 하촌마을 표지석 옆에 '반효자와 조효녀 정려비'가 눈에 띈다. 반효자와 조효녀는 원래 하촌마을 사람은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정려비가 이 마을에 세워져서 효 문화마을로 일컬어진다. 하촌마을 주민들이 비석을 관리하고 있다.

▲ 반효자와 조효녀 정려비. /이수경 기자
▲ 반효자와 조효녀 정려비. /이수경 기자

조선시대 세조 때 주부라는 벼슬을 지낸 반효자(반석철)는 부모 섬기기를 지극히 했다. 그가 큰 가뭄에 울며 하늘에 호소하니 반효자 논에만 비가 흡족하게 오고 논가에 샘물이 솟아 벼를 수확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전해져 온다. 부친 별세 후 삼년상을 마쳤는데도 산 사람 섬기듯해 조선 성종 때 정려비를 내렸다.

조효녀는 반효자의 외손녀로 집안이 가난해 길쌈을 해서 부모를 봉양했다. 아버지가 병이 나자 자신 손가락을 베어 피를 아버지 입에 흘려 넣어 소생시켰고, 어머니 병환 때는 다리 뼈를 깎아 약에 섞어 드리는 효도를 해서 조선 숙종 때 정려됐다.

하촌마을을 관통하는 효행은 마을회관 입구에서 시작해 마을 전체를 한 바퀴 돌며 이어지는 골목 벽화로 재구성됐다. 2020년까지 이장을 지낸 박 전 이장의 아이디어다. 반효자·조효녀 이야기, 효녀 심청 효행, 반포지효(反哺之孝·자식이 자라서 어버이께 효도한다) 벽화, 단란한 현대 가족 모습 등으로 연결된다.

박 전 이장은 "2017년과 2020년 벽화작업을 하면서 골목 담벼락에 황토를 발랐고, 도로에도 황토색 포장재를 깔았다"면서 "서양화가에게 효 관련 그림만으로 골목 벽화를 그려주되 그림엔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도록 구성해 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하촌 경로당에서 꽃피는 공동체 문화 = 골목 벽화를 보기 전에 당도하는 곳이 하촌마을회관과 경로당이다. 회관 앞에는 마을 쉼터와 당산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경로당은 주민 공동체 행사가 펼쳐지는 효 문화 거점 시설이다. 어버이날이 되면 마을 주민들은 어르신을 공경하는 마음을 담아 다과와 음식을 차려 잔치를 한다. 시례리에 함께 속한 상촌, 신기마을을 제외하고 하촌마을만 45가구 정도 된다. 코로나 탓에 올해는 주민들이 음식을 만들어 경로당 어르신 30여 가정을 방문해 직접 전달하는 행사만 했다.

하촌마을 청년회와 마을 개발위원들은 마을 청소와 쓰레기 수거를 도맡아 하고 있다. 개인이 스스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분리 배출을 지키며, 다른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는 두 달에 한 번씩 청소한다.

박 전 이장은 "코로나 발생 전에는 반효자·조효녀 정려비 뒤 숲에서 <뺑파전> 같은 공연도 했는데 지금은 모든 게 멈춰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그는 "고령화 마을을 어찌 살릴 것인지가 문제"라고 자문했다. "친환경 마을, 아름답고 살기 좋은 마을이지만 관광객들이 방문하기엔 슈퍼마켓도 없고 문화 공간이나 숙박(민박) 장소도 없는, 생활 여건이 부족한 마을이라 방문객들에게 슬로마을 가치를 어떻게 선물할지 고민입니다."

/이수경 기자 sglee@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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