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하나 없이 위험 감수하며
일만 해도 임금은 더욱 줄었다
살기 위해 내몸 가뒀던 이 투쟁
다음 싸움 준비하는 계기 됐다

178㎝, 73㎏. 작지 않은 덩치의 한 노동자가 눕는 것은 고사하고 앉아서 다리조차 펴기 힘든 0.3평 철 구조물 속에서 꼬박 31일을 버텼다. 조선소 하청 노동자가 겪는 다단계·저임금 착취 구조를 고발하기 위해서다. 그는 22일 노사 협상이 타결되고서야 겨우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24일 늦은 밤 거제 대우병원에서 유최안(41)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을 만났다. 그는 "철창 안에서 나온 뒤로 많은 사람이 커피를 주네요. 농성을 벌일 때는 혹시나 탈이 날까 싶어 한 모금도 안 마셨는데, 갑자기 커피를 많이 마시니 잠이 오질 않습니다"며 농을 건넸다. 유 부지회장과 51일간의 파업, 그 뜨거웠던 여름을 더듬어 봤다.

"담배도, 술도 여유가 없어 못 했다는 그가 뭘 더 참고, 뭘 더 줄여야 합니까. 조선소가 불황이면 당연히 하청 노동자 임금부터 깎고, 하청 노동자 모가지부터 자르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그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희망버스 행사에서 이렇게 발언하는 영상을 보고 조금 전 울다 나왔다고 했다. 정말 자기 마음이 그랬다고. 뭘 더 줄이겠느냐고 되물었다. 불황이라고 깎은 임금 30%, 호황이 돌아왔으니 원상회복해달라는 것이 파업의 이유였다. 그의 삶엔 언제나 '여유'가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내를 만나 같이 살았다. 둘 다 어렸고, 가진 것이 없었다.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만 했다.

▲ 24일 오후 8시 40분 거제 대우병원에서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을 만났다. 그가 이번 투쟁을 돌아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김다솜 기자
▲ 24일 오후 8시 40분 거제 대우병원에서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을 만났다. 그가 이번 투쟁을 돌아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김다솜 기자

고향 통영에서는 돈을 벌려면 배를 타거나, 조선소를 가거나 둘 중 하나였다.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학교를 갓 졸업하자 그는 곧장 조선소로 갔다.

돈 벌겠다고 조선소로 오는 사람은 많았지만, 끝까지 남는 사람은 적었다. 그가 처음 했던 일은 취부. 도면을 보고 선박 블록을 맞추는 일이다. 철판을 세워 가접도 한다. 육중한 철판을 잡는 일이라 힘이 조금이라도 달리면 깔리는 것도 예사다. 그래서 취부사들은 앞니가 없거나, 손가락 한두 개가 없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후 그나마 안전하다는 용접으로 갈아탔다.

조선소에선 다치고 죽는 사고가 빈번했다. 하루는 배에 남은 가스가 불꽃과 맞닿으면서 폭발 사고가 났다. 재해자를 구조하려고 팔을 당기는 순간 익어서 빠져 버렸다. 그 사람이 거적에 덮여 실려 나가는 걸 똑똑이 지켜봤다.

그는 통영의 모든 조선소가 문 닫을 때까지 조선소 일을 하다 2015년 거제로 건너왔다. 이상했다. 그저 주어진 일만 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 임금이 깎여 나갔다. 최저임금에 맞추겠다면서 상여금 550% 가운데 400%를 기본급에 녹였다. 나머지 150%는 삭감됐다. 시급이 8300원에서 1만300원까지 올랐지만 실질 임금은 30% 가량 줄었다.

언론에선 조선업에 다시 훈풍이 분다던데 그에겐 전혀 와닿지 않았다. 지난 1월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대우조선해양 22개 하청업체와 단체교섭을 벌였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노동위원회 쟁의 조정을 거쳐 파업권을 얻어냈고, 지난달 2일 파업을 시작했다.

조선업 22년 차 용접공은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독에서 직접 철 구조물에 몸을 가뒀다. "손도 못 밀어 넣게 (철 구조물) 뒷부분은 완전히 막았어요. 혹시나 침탈당할까 싶어서. 처음엔 긴장해서 다리를 웅크리고 시너를 안고 잤거든요. 3일 정도 지나니까 관절 마디마디가 아파서 도저히 안 되겠는 거예요. 그다음부터는 구멍을 이용해서 다리를 조금이라도 뻗었어요. 일주일쯤 지났을 때 '오래 가겠다' 싶었어요."

▲ 24일 만난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희망을 말하며 웃고 있다.  /김다솜 기자
▲ 24일 만난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희망을 말하며 웃고 있다. /김다솜 기자

바로 위 난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던 6명의 동료(진성현·조남희·이학수·박광수·이보길·한승철)들이 힘을 보탰다. 그들은 단체 생활을 하는 만큼 일과를 정해두고 시간을 보냈다. 때마다 물수건을 내려주기도 하고, 말을 걸어주는 등 유 부지회장이 심리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도왔다.

농성 31일 만에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사는 잠정 합의했다. 임금 4.5% 인상, 상여금 지급, 폐업 하청업체 노동자 고용 노력 등을. 하청지회 조합원 92%가 합의에 동의했다. 이번 합의를 두고 유 부지회장은 스스로 '모자란 승리'라 평가했다. "다들 속상해하시죠. 그렇게 싸웠는데 왜 4.5%냐. 이게 현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을 수십 년 겪고 살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조합원 찬성을 얻은 거예요. 성과도 있죠. 이번 일을 계기로 모두가 하청 노동자의 상황을 알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는 "조선소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가 희망을 가지고 잘못된 구조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다음 싸움을 준비할 수 있는 계기가 됐기 때문에 그나마 절망이 아닌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청노조는 이번에 내용이야 어떻든 금속노조 이름이 박힌 합의서를 처음 받아냈다. 돌아보면 노동자들이 한 번에 모든 걸 얻어낸 적이 없다. 그가 이번 투쟁을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김다솜 기자 all@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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