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제로 달려온 '희망버스'

전국 각지서 70여 개 단체 운집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 응원
한진 김진숙 지도위원도 참가

통일운동가, 사회운동가 고 백기완 선생은 지난해 병상에서 '노동해방 백기완' 일곱 글자를 남겼다.

최종대(87) 씨는 23일 이르게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원로버스에 몸을 실었다. 최 씨가 먼 길을 나선 까닭도 고 백 선생의 일곱 글자와 맞닿았다. "노동자 파업 투쟁에 동참하려고."

최 씨가 닿은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쪽 문과 거제대로 20번 교차로를 잇는 길이 50m, 폭 15m 다리에는 전국 30여 곳 70여 개 단체 인원이 모였다.

넘치는 연대자 사이에서 최 씨는 담담한 말투로 "뒤에서 모두 후원하겠으니, 앞으로도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이하 조선하청지회)에 전하는 말이었다.

조선하청지회 파업 투쟁을 연대하고자 내달린 '7.23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 희망버스'는, 파업이 마무리된 터라 규모는 조금 줄었으나 다리를 가득 채우기에는 모자라지 않았다.

인파 속에서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하 사파기금) 대표는 2011년 옛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2차 희망버스를 떠올렸다. "당시 제안은 단편에 그치지 않고 연대로 지속하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노동자 파업권은 곧 시민권이라는 기치 아래 파업기금을 풀뿌리 연대로 모아 사회적 파업에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는 사파기금은 당시 권 대표 제안서에서 비롯했다.

조선업과 건설업이 주인 옛 한진중공업에서 다시 조선업 현장인 대우조선. 권 대표는 조선하청지회 투쟁을 단일 사업장이 아닌, 전국 조선소 하청 노동자 투쟁으로 평가했다.

"파업 노동조합이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아니겠어요. 모든 노동자를, 특히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를 한데 아우르는 의미죠. 결과와 무관하게 한 걸음 더 나아간 투쟁이었다고 봐요."

▲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파업을 지지·응원하는 '희망버스'가 23일 오후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도착했다. 대우조선해양 서문에서 노동자들과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희망배 띄우기' 행사를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파업을 지지·응원하는 '희망버스'가 23일 오후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도착했다. 대우조선해양 서문에서 노동자들과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희망배 띄우기' 행사를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23일 대우조선해양 서문에서 노동자들과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희망배 띄우기' 행사를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시민 정태일(29·대전) 씨도 모두 만족하기는 어려운 결과일지라도 큰 성과를 냈다고 조선하청지회를 다독였다.

"조선소 하청 노동자 파업 투쟁은 미리 알았지만, 유최안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자신을 철 구조물에 가둔 농성이 사회적 주목을 받아 연대를 결심했어요. 작지만 성과를 냈고, 앞으로 큰 성과를 내리라 믿어요. 하청 노동자를 향한 차별 의식이 분명히 있는데, 상당한 울림을 줬으리라 봐요. 이제 이전처럼은 대하지 못할 겁니다. 굳세게 버텨서 내일도 반드시 승리하길 바랍니다."

마침 옛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김진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도 거제를 찾았다. 다리 난간 아래 턱에 조용히 앉아 인파 사이에 있던 김 지도위원은 무대차에 올라 쇠 같은 목소리로 모두를 울렸다. 그는 "함께해야 우리는 더 강해집니다. 하청 노동자 승리의 그날까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이란 말로 11분짜리 발언을 마무리했다.

▲23일 대우조선해양 서문에서 열린 행사에서 노동자들과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희망배 띄우기' 행사를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br>
▲23일 대우조선해양 서문에서 열린 행사에서 노동자들과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희망배 띄우기' 행사를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행사가 끝나갈 무렵, 일을 마친 노동자 무리가 대우조선 서문을 나섰다. 죄다 하청업체 이름과 자신 이름이 수놓인 작업복을 입었다. 굳은 표정으로 다리에 눈길도 주지 않거나, 힐끔 쳐다보거나, 아예 멈춰 살피는 이들이 연대자와 뒤섞였다. 무대차 위와 앞에서 미소를 짓는 조선하청지회 노동자를 스치는, 지친 표정이 역력한 이들 심정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최환석 기자

 

김진숙 지도위원 발언 전문

70여 년 전, 존재 자체가 불법이었던 포로의 땅.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고, 살아서 가족을 만나는 꿈을 꾸던 포로가 갇힌 채 죽어가던 섬. 이 섬에 크레인을 올리고 배를 만들고 집을 지어 사람이 사는 윤택한 곳으로 만들어 왔던 것은 노동자였습니다. 언젠가부터 노동자는 정규직이 줄고 하청이 배 이상 늘더니 하청은 재하청, '물량팀(조선소 다단계 하청 구조 맨 아래 일감을 단시간 쳐내는 무리)', '돌관조(돌파해서 관철한다는 단기간 웃돈을 받고 위험한 업무를 맡는 노동자 무리)'까지 하루살이 일당쟁이가 70%를 넘습니다. 인간 탈을 썼으나 인간 삶을 꿈꿀 수 없고, 사람 말을 하나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신종노예 하청. 권리를 주장하면 불법이 되고, 노조를 만들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어디에도 취업이 안 되며, 부당함을 입 밖에 내는 순간 거제도 어디에서도 발을 붙일 수 없는 사람들. 이대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빠가 하청이면 아이도 하청이 되는,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엄마가 최저임금을 받으면 아이도 가난부터 배우는, 이대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여름이면 펄펄 끓는 탱크 안에서 찜 솥 안 삼계탕이 되어 감전사를 걱정하고, 비 오는 날은 미끌거리는 족장 위에서 추락사를 염려하며, 이대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대로 살 수는 없다고 외치는 순간, 대통령은 우리에게 불법이랍디다. 0.3평 쇠 감옥에 갇혀 서지도 눕지도 못하는 사람을 보면서 불법이라는 말이 그 입으로 나옵디까. 30일 넘게 제대로 먹지도 싸지도 못하는 노동자를 보면서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말이 나옵디까. 20여 년을 온갖 불법과 차별을 견디며 하청으로 살아온 노동자에게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는 말이 터진 입이라고 나옵디까.

수십 년 하청 노동자를 착취했던 대우조선이 불법입니다. 툭하면 밀리는 임금체불이 불법입니다. 어렵다는 이유로 하청 노동자면 몇 번씩 겪은 업체 도산이 불법입니다. 유최안 동지는 불똥이 몸에 떨어져도 피할 수도 없는, 스스로를 가둔 감옥의 징벌방보다 좁은 탱크 안에서 20년을 용접공으로 살아온 일류 보씽(배 밖으로 나온 축 등을 둘러싸는 외판)입니다. 그들은 언제까지 하청으로 살아야 합니까. 담배도 술도 여유가 없어서 못했다는 그가 뭘 더 참고 뭘 더 줄여야 합니까. 조선소가 불황이면 당연히 하청 노동자 임금부터 깎고 하청 노동자 모가지부터 자르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호황이 돌아와 독(dock)마다 배가 넘쳐나고 조립장마다 블록이 미어터지니 깎인 임금 돌려 달라 하면 하루 300만 원 물어내야 하고 9명이 체포영장을 받아야 합니까.

김주익과 최강서(옛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목을 매게 하고 배달호(옛 두산중공업 노동자) 몸에 불을 붙이고 쌍차(쌍용자동차)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손해배상 가압류 지옥에서 언제까지 노동자는 허우적거려야 합니까. 한진중공업에 최초의 민주노조 깃발을 꽂았던 박창수 위원장은 대우조선 노조를 지키려다 죽었습니다. '노동자도 인간이다' 외치면서 골리앗(크레인)으로 올라갔던 대우조선 노동자와 연대하려다 3자 개입금지법 위반으로 끌려갔고 못 돌아왔습니다. 6살짜리 상주 용찬이(박 위원장 아들)가 서른여덟 살이 된 세월. 박창수 위원장은, 나의 동지는 인간답게 살려고 싸우는 이 하청 노동자를 생각하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요. 그때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가 '인간답게 살고 싶다', '임금을 인상하라' 외쳤던 노동자와 지금 하청 노동자 꿈은 다릅니까. 저는 아직도 35년 전 대우조선 노조를 세우고자 싸우다 최루탄에 쓰러진 이석규 열사 투쟁이 생생합니다. 이석규, 이상모, 박진석, 박삼훈, 최대림. 대우조선 열사가 목숨과 바꿨던 염원과 하청 노동자 염원은 다릅니까.

하청지회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스스로 철창에 갇히는 동지를 혼자 둘 수 없어 고공에 오르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단식을 해야 했던 우리 마음은 합의서보다 무거운 진실입니다. 구급차에 실려가는 동지를 지켜보며 흘린 눈물은 합의서보다 진한 동지애입니다. 그 동지애로 7년을 버티는 아사히 동지가 있고, 서진, 파리바게트, 쿠팡 노동자가 싸우고 있습니다. 더 뭉치고 더 커집시다. 우리가 뭉치면 세상이 뒤집힌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용접과 도장으로 탄광보다 진폐 환자가 많은 곳. 오함마(양손 망치 일본식 용어)와 그라인더에 고막이 나가고, 깔려 죽고, 터져 죽어도 무재해 기록판에 '0'이 찍히는, 우리는 유령이 아니라 우리도 말할 줄 알고 우리도 자존심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줬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차별받는 사람 같지만, 더 차별당하는 존재가 있음을 잊지 맙시다. 장애인, 이주 노동자, 성소수자, 여성. 저를 크레인에서 내려와 37년 만에 복직 꿈을 이루게 했고 오늘도 전국에서 달려오셨습니다. 함께해야 우리는 더 강해집니다. 하청 노동자 동지들, 승리의 그날까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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