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들판·낙동강·동산 기대 살아가는 주민
당산목에서는 매월 11월 제도 올려
"사계절 뚜렷하고 정겨운 마을"

너른 들판과 낙동강을 끼고 야트막한 동산에 기대 살아가는 창원시 한 마을이 주목받고 있다.

케이블 방송 ENA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7·8화에 '소덕동(소박하지만 덕이 넘치는 마을) 당산나무'는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북부리 동부마을에 있는 팽나무다.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의 로펌 생존기를 담은 드라마의 최근 소덕동 편은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 행정을 들러싼 법정 다툼 이야기였다.

▲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소덕동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북부리 동부마을 모습. 500년 수령의 팽나무가 보인다. /방송화면 갈무리
▲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소덕동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북부리 동부마을 모습. 400년 수령의 팽나무가 보인다. /방송화면 갈무리

시청자 눈길을 끈 건 동부마을의 뛰어난 경치였다. '소덕동 천연기념물'로 불린 팽나무는 동부마을 관심을 키운 요소였다. 등성이 정상에 있는 팽나무와 짙은 녹음,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은 보는 이들에게 따뜻함을 안겼다. 팽나무가 뿌리 내린 당산은 깎아지른 벼랑이나 까마득한 높이의 절경은 없었지만 주민을 가만히 품은 모양에서 아늑함과 안정감을 줬다. 드라마 제작사도 창원시를 찾아 '큰 나무가 있는 마을 등 해당 회차 내용·촬영 콘셉트와 맞는 곳을 찾다가 동부마을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에서 마을주민은 '어린 시절 저 나무 타고 안 논 사람이 없고 기쁜 날 저 나무 아래에서 잔치 한번 안 연 사람이 없고, 간절할 때 기도 한번 안 한 사람이 없다'고 표현했다. 배우들은 동부마을을 배경으로 한 사진과 드라마 속 장면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리며 촬영 추억을 공유했다.

▲ 창원시 의창군 대산면 동부마을 팽나무. /경남도민일보DB
▲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동부마을 팽나무. /경남도민일보DB

소덕동처럼 실제 동부마을도 정겹고 덕이 넘치는 마을이다. 동부마을에는 36가구 73명이 살고 있다. 주민들은 수박·당근·토마토·고추·멜론을 특산물로 재배하며 계절을 난다. 11월에는 주민이 한 데 모여 '마을을 잘 보살펴 달라'며 당산목 아래에서 제도 지낸다. 그 덕인지 마을은 자연재해 피해가 적다.

북부리는 사계절이 뚜렷하다. 파릇파릇 새싹이 돋았다가 들에 물이 출렁거릴 때도 있다. 누렇게 익은 들판, 비닐하우스가 만든 하얀 빛도 계절 따라 볼 수 있다. 마을 주민 지한열(63, 전 동부마을 이장) 씨는 "농사짓기에 안성맞춤인 땅이다"며 "자세히 보면 마을이 '학'처럼 생겼는데 역사도 깊고 풍요롭다"고 말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동부마을도 크고 작은 변화를 맞았다. 낙동강하굿둑이 들어서고 나서 마냥 맑기만 했던 강물이 흐려진 아픔도 있다. 4대 강 정비사업으로 동네 한쪽에는 자전거길이 생겼고 둑길을 따라서는 벚나무가 식재됐다. 2019년에는 대산플라워랜드, 2021년에는 대산파크골프장이 주변에 들어섰다.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정겨움이다. 윤종한(61) 동부마을 이장은 "낙동강 700리 정기를 받아 조상 대대로 비옥한 토지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며 "예나 지금이나 주민끼리 사이좋게, 또 어른을 공경하며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드라마 촬영은 5월 17~20일 있었다. 길이 협소하고 주차 공간이 넉넉하지 않아 촬영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촬영 기간만이라도 주민들은 마을 바깥에 주차를 하자'고 제안했고 모든 주민이 흔쾌히 실천해 줬다"며 "배우·촬영팀 등에게 떡도 돌리고 수박으로 화채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큰 행사라면 행사인데, 주민이 돕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창원시 의창군 대산면 동부마을 팽나무. /경남도민일보DB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동부마을 팽나무. /경남도민일보DB

대산면은 퇴적평야로 곳곳에 동산이 있다. 예부터 이 동산 주변을 두고 사람들은 마을을 형성했다. 동산 꼭대기에 있는 노거수는 마을 당산나무 역할을 했다.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것이다.

동부마을 팽나무는 동산 꼭대기에 홀로 있는 당산나무다. 강한 일조와 바람에도 건강한 수세를 유지하고 있다. 흉고 둘레(가슴높이 둘레) 6.80m·수고(나무 높이) 15.60m·수관폭(가지 퍼짐) 27m에 달하는 팽나무 수령은 400년이다.

나무 전문가 박정기 곰솔조경 대표가 동부마을 팽나무를 소개하면서 2015년 4월 <경남도민일보> 보도가 있었다. 이 같은 가치를 인정받아 팽나무는 그해 7월 보호수로 지정됐다.

천연기념물은 아니다. 박정기 대표는 지난해 동부마을 팽나무 등 노거수 11본을 천연기념물 우수 잠재자원으로 문화재청에 추천했다. 박 대표는 동부마을 팽나무가 천연기념물 494호인 전북 고창 수동리 팽나무보다 흉고 둘레 등이 크고 건강하며 노거수 중심 촌락구조·마을공동체 문화가 독특하다며 천연기념물 지정 타당성이 충분하다고 했다.

팽나무와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도 있다. 400m 떨어진 북부리 서부마을 조금 더 높은 산등성이에 쌍을 이루는 더 오래된 나무가 있었지만 불에 타 소실됐다는 사연이다. 주민들이 새로 심어 자란 팽나무는 동부마을 당산나무보다 젊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동부마을 방문객도 늘고 있다. 평화롭던 마을이 너무 소란스러워지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지만 주민들은 긍정적으로 본다.

윤 이장은 "오가는 발길이 많아야 마을 발전은 물론 지역 경제 활성화도 이룰 수 있다"며 "반갑게 맞을 터이니, 방문객들도 주민을 배려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녹음이 짙은 여름도 좋지만 낙동강변 갈대숲이 황금빛을 띠는 가을, 벚꽃이 만개한 봄에도 동부마을은 참 아름답다"고 했다. 지 씨는 "당산나무 아래쪽과 파크골프장 입구 둑 쪽을 연결하는 길이 완공되지 않았다. 혹마저 진행된다면 방문객 편의성도 높아질 것"이라는 바람을 했다. 

/이창언 기자 un@idomin.com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