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협력업체 노사 협상
'민형사 책임'면책 합의 불발
노동계 "삶 파괴… 꼭 막아야"
사측·정부 대승적 결단 촉구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노사 협상에서 남아있는 최대 쟁점은 손해배상가압류(이하 손배가압류) 여부다. 노사는 협상 과정에서 '민형사상 책임 면책'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사측은 민형사상 책임 여부는 개별 협력사와 협의하라는 견해인 반면, 교섭에 참여한 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하청 노동자를 징계하고 책임을 묻겠다는 거나 다름없다"고 반발했다.

이번 협상 테이블에서 민형사상 책임 면책 문제를 정리하지 못하면 이후 손배가압류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우조선해양은 7월 초 비상 경영을 선포하면서 노조 파업에 엄정한 대응을 해달라고 촉구했다. 지난달 2일부터 이어진 파업의 여파가 크다는 주장이다. 대우조선해양은 매출 260억 원, 고정비 60억 원으로 하루 최대 320억 원의 손실이 난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에 이김춘택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쌍용자동차 사태처럼 손배가압류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노동자 개인만이 아니라 가족까지 문제가 되기 때문에 손배가압류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손배가압류는 파업에 나선 노동자에게 전 생애에 걸쳐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안기고 있다.

2019년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연구팀이 9개 사업장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 236명을 조사한 결과 피해 남성 노동자 30.9%가 '지난 1년간 극단적 선택을 진지하게 생각해봤다'고 답했다.

2003년 노동 탄압과 손배가압류에 시달리던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 노동자 배달호 씨는 분신을 택했다. 2012년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 2018년 김주중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까지 손배가압류에 밀려 세상과 등졌다.

▲ 전국금속노동조합이 20일 오후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정문 앞에서 영호남권 총파업 대회를 하고 있다. /이동열 기자
▲ 전국금속노동조합이 20일 오후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정문 앞에서 영호남권 총파업 대회를 하고 있다. /이동열 기자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에 맞서 77일간 파업을 했다. 이 과정에 용역업체와 경찰의 강제 진압이 있었다. 쇠파이프와 최루액이 난무하던 폭압적인 현장이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태가 마무리되자 경찰과 회사가 잇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렇게 누적된 손해배상액만 해도 100억 원. 1심과 2심에서 노동자들이 패소했고,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만일 대법원에서도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단이 나오면 지연이자가 매일 60만 원씩 발생하게 된다.

10년이 넘도록 이어진 압박이었다. 2009년부터 2018년 7월까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3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법적으로 회사가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것 자체로 노동자들은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 이창근 씨는 자욱하게 안개가 낀 지뢰밭을 걷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손배가압류 대상이 되면 본인 앞으로 재산 자체가 있을 수 없다"며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아 집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괜찮지만, 당장이라도 집행된다면 임금 압류 등 현실적인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 33조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으나 손배가압류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정당한 쟁의 행위보다 사용자 재산권 보장을 더 중요하게 보는 법리적 판단 때문이다.

금속노조법률원 김두현 변호사는 "회사에서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청구를 수십억, 수백억 한다고 해도 월 250만 원을 겨우 버는 노동자들이 갚을 수가 없다"며 "보통 금전적 실익이 없는 재판은 계속하지 않지만 노동자 손해배상청구는 악의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김 변호사는 "실제로는 노동조합 간부를 압박하고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한 수단으로 손배가압류가 진행되고 있다"며 "법원이 노동자 쟁의 행위의 합법 범위를 넓게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노동자 손해배상 및 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모임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는 손배가압류 관련 통계를 공개했다. 1989년부터 올해 5월까지 노동자에게 청구된 손해배상액만 해도 3160억 2865만 원에 달했다. 소송 제기 후 1심 판결까지 평균 26개월이 걸렸으며, 최대 7년 이상 재판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는 "노사 갈등을 푸는 과정에서 민형사상 소송이 제기된 것이 있다면 취하하고 이후에도 제기하지 않도록 약속해야 한다"며 "노사 합의 과정에서 이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여지가 남는다면 노조에서는 합의를 위한 자세가 아닌 위협적인 태도로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는 "대우조선해양 대주주는 산업은행이고,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으로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며 "적어도 정부는 선한 사용자로서 노동자 노동권과 파업권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에 손배가압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해야 이 문제를 풀 수 있다"며 "정부가 공권력 투입과 손배가압류로 노동자를 압박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되면 대우조선해양 노사가 동등한 관계에서 교섭하는 게 아니다"고 비판했다.

/김다솜 기자 all@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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