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뜻풀이하려 노력하지만 우리말과 표기 순서 기준 없어
설명 없이 용어 그대로 쓰거나 번역 투 문장도 곳곳에서 보여

공공 기관이 쉬운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지역·세대·계층 간 정보 격차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경남도를 비롯해 각 시군이 전하는 소식지를 보면 외국어, 외래어, 어려운 한자어가 적지 않다. 뜻을 정확히 전달하고자 설명을 붙여 놓는 사례도 많지만, 명확한 기준 없이 쓰는 경우도 잦다.

현재 도내에서는 <창원시보>, <김해시보>, <양산시보>, <거제시보>, <통영시보>, <합천군보> 등 시·군정 소식지가 발행되고 있다. 진주시, 밀양시, 사천시, 함안군, 창녕군, 남해군, 하동군 등은 정기적으로 책자형 소식지를 발간해 정보와 소식을 전한다.

◇외국어 표기가 먼저? = <창원시보>를 살펴보면 우리말과 외국어 사용 방식이 오락가락이다. 읽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우리말(외국어)' 방식으로 썼다가도, '외국어(우리말)'로 쓰기도 하고, 아예 '외국어'로만 쓰는 때도 있다.

<경남도민일보>는 지난 4월부터 6월 사이 발행된 <창원시보> 283∼288호 6부를 살펴봤다.

6월 25일(288호) 자 <창원시보> 2쪽에 보면 부제목에 'TF' 단어가 나온다. 본문 앞부분에서 별다른 설명 없이 TF 단어를 사용하다 끄트머리에 가서야 '전담팀(TF)'이라고 적어 놨다. 6월 10일(287호) 자 2쪽에서는 '전담팀(T/F)'으로 이해하기 쉽게 적어 놨다.

이런 유형이 한두 번이 아니다. 6월 10일 자 2쪽에서 창원그린엑스포 개최 소식을 전하면서 본문에는 '누리집'이라 적어 놓고 부제목에는 '홈페이지'라고 적었다. 또 5월 25일(286호) 자 2쪽에서는 별다른 설명 없이 'SNS'라고만 적어 놓고, 4쪽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라고 적어 놨다.

▲ 올해 4∼6월 발행된 <창원시보> 283∼288호에 나타난 외국어 등 표기 행태. 각종 외국어와 '외국어(우리말)'-'우리말(외국어)' 같은 명확한 기준 없는 표기 방식이 나타났다.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단어, '○○식을 가졌다' 같은 잘못된 영어 번역 투도 있다.  /김희곤 기자
▲ 올해 4∼6월 발행된 <창원시보> 283∼288호에 나타난 외국어 등 표기 행태. 각종 외국어와 '외국어(우리말)'-'우리말(외국어)' 같은 명확한 기준 없는 표기 방식이 나타났다.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단어, '○○식을 가졌다' 같은 잘못된 영어 번역 투도 있다. /김희곤 기자

5월 25일 자 6쪽과 5월 10일(285호) 자 4쪽에는 'ICT'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4월 10일(283호) 자 5쪽에 보면 '정보통신기술(ICT)'이라고 적어 놨다.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이다.

특히 <창원시보>에서 괄호를 달아 우리말로 설명을 해 놨더라도 'AR(증강현실)', 'BUY R&D(외부기술도입)', '웹툰(만화)', 'AAC(보완대체의사소통)', 'BF(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제) 인증' 등은 우리말이 먼저인지 외국어가 먼저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사례다.

▲ 올해 4∼6월 발행된 <창원시보> 283∼288호에 나타난 외국어 등 표기 행태. 각종 외국어와 '외국어(우리말)'-'우리말(외국어)' 같은 명확한 기준 없는 표기 방식이 나타났다.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단어, '○○식을 가졌다' 같은 잘못된 영어 번역 투도 있다.  /김희곤 기자
▲ 올해 4∼6월 발행된 <창원시보> 283∼288호에 나타난 외국어 등 표기 행태. 각종 외국어와 '외국어(우리말)'-'우리말(외국어)' 같은 명확한 기준 없는 표기 방식이 나타났다.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단어, '○○식을 가졌다' 같은 잘못된 영어 번역 투도 있다. /김희곤 기자

<창원시보> 6부에서는 바우처, 인증샷, IT, AI, 인프라, MOU, 테마, 트렌드, CEO, QR코드, GPS, 글로벌 등 외국어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순서대로 이용권·상품권, 인증 사진, 정보통신, 인공지능, 기반 시설, 업무 협약, 주제, 풍조·경향, 최고경영자, 정보무늬, 위성위치확인시스템, 세계화 등으로 바꿔 쓸 수 있다. 모두 국립국어원이 우리말로 다듬어 제시하고 있는 말이다.

또 진해구 여좌·충무·태백동 일대에 스마트시티 조성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LBS기반', '스마트폴' 등 전문가가 아니면 아예 이해할 수 없는 단어도 썼다. LBS는 '위치기반서비스(Location-Based Service)'로 사용자 위치를 알아내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스마트폴은 신호등이나 가로등 등 도시 기반 시설에 무선 인터넷망, 폐쇄회로 TV, 전기 충전 등 정보통신기술을 결합한 것을 말한다. 우리말로 풀어 쓰면 '기반 시설 복합체'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다만, 스마트폴을 기반 시설 복합체로 풀이하는 것은 그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어려워 용어 정비 전문가의 지혜가 필요하다.

또 영어 'have'의 번역 투인 '○○식을 가졌다' 표현도 자주 볼 수 있다. ○○식 같은 행사는 '열었다' 또는 '개최했다'라고 서술해야 한다.

▲ 올해 4∼6월 발행된 <창원시보> 283∼288호에 나타난 외국어 등 표기 행태. 각종 외국어와 '외국어(우리말)'-'우리말(외국어)' 같은 명확한 기준 없는 표기 방식이 나타났다.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단어, '○○식을 가졌다' 같은 잘못된 영어 번역 투도 있다.  /김희곤 기자
▲ 올해 4∼6월 발행된 <창원시보> 283∼288호에 나타난 외국어 등 표기 행태. 각종 외국어와 '외국어(우리말)'-'우리말(외국어)' 같은 명확한 기준 없는 표기 방식이 나타났다.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단어, '○○식을 가졌다' 같은 잘못된 영어 번역 투도 있다. /김희곤 기자

홍남표 새 창원시장 취임 전 인수위원회는 <창원시보>에 나오는 외국어 등을 지적하기도 했다.

<창원시보> 업무 담당자는 "우리말을 우선해서 쓴다는 기준은 정해놓고 있지만, 작성 과정에서 거르지 못한 사례가 가끔 있다"며 "일상적으로 흔히 쓰이는 표현은 그대로 나가기도 한다. 일상화되지 않은 외국어나 외래어는 따로 풀어서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식지 곳곳 외국어 = 다른 시·군정 소식지에도 외국어·외래어를 별다른 설명 없이 그대로 표기한 사례가 곳곳에서 나타났다.

경남도가 달마다 내놓는 소식지 <경남공감> 6월호에 실린 거창전통시장 청년몰 소개 기사는 부제목에 '인큐베이팅'이라는 낱말을 적었다. 따로 설명은 없었다. 같은 책 27쪽에서는 소상공인 스마트상권 지원 소식을 전하면서 '디지털 사이니지'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본문에는 디지털 사이니지를 '체험 콘텐츠, 홍보, 안내 등 다양한 영상과 정보를 제공하는 융합 플랫폼'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의미를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인큐베이팅은 '창업 보육' 또는 '창업 육성'으로, 디지털 사이니지는 '디지털 맞춤형 광고판' 또는 '전자 광고판'으로 바꾸면 그 뜻이 명확해진다.

진주시 시정 소식지 <촉석루> 4월호에는 '코로나19 시대 스포츠와 신체활동의 중요성'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팬데믹, 위드 코로나, 플로깅' 등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그 뜻은 풀이하지 않았다. 국립국어원은 '감염병 세계적 유행, 단계적 일상회복, 쓰담 달리기'로 다듬어 쓰기를 권하고 있다.

사천시정 소식지 <사천N> 2월호 항공산업 동향을 전하는 기사는 같은 기사 안에서 'UAM(Urban Air Mobility)'은 '도심항공모빌리티'라고 뜻을 적었지만 'MRO(Maintenance, Repair and Overhaul)'는 설명을 하지 않았다. MRO는 '항공 정비'로 바꿔 쓸 수 있다.

<양산시보>는 지면 전체 기사에서 '홈페이지'를 우리말 '누리집'으로 바꾸는 등 공공 언어를 쉽게 쓰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579호 2쪽 'A/S', 같은 호 6쪽 '피크닉' '피크닉 매트' '미니 테이블', 7쪽 '매칭', 580호 2쪽 '원포인트', 7쪽 '클러스트(클러스터의 오기)', 582호 9쪽 '북피크닉' '언택트' 등 충분히 바꿔 쓸 수 있는 우리말이 있음에도 영어 단어를 그대로 적은 사례도 적지 않다. 이들 단어는 '사후 관리, 소풍, 돗자리, 작은 식탁, 연결, 단건, 산학협력지구, 책소풍, 비대면'으로 쓰는 것이 이해하기 훨씬 쉽다.

<양산시보> 편집 담당자는 "가급적 외래어·외국어를 안 쓰려고 노력하지만 행사명이나 고유명사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인용하기도 한다. 또 최근에 사회적으로 많이 쓰이는 용어나, 우리말보다 외국어가 뜻 전달이 쉽다고 판단할 때는 외국어를 쓴다"면서 "외국어 표기 사용에 최대한 주의하고 우리말 사용에 더욱 신경을 쓰겠다"라고 말했다.

/김희곤 강해중 기자 hgon@idomin.com

※ 감수 김정대 경남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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