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산단혁신 이끄는 자율형MC (2) 방산·디지털융합 MC

(전문)'클러스터'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으로 '모으다'를 뜻하는 동사이고, '무리'라는 명사로도 쓴다. 산업 분야에서는 '특정 산업 관련 기업·대학·연구소·지원기관이 집적된 공간'을 뜻한다. 한국 산업지원 정책이 산업단지라는 물리적 공간에 생산 기업을 모으는 단계에서, 연구·지원 기능까지 한데 묶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쓴 용어다. 이 흐름을 밑에서 받친 주체가 바로 '미니클러스터'다. 지역·산업별로 씨줄과 날줄처럼 엮인 산·학·연 협의체로, 경남에는 10곳이 있다. 지난해부터는 '자율형 미니클러스터(이하 자율형 MC)'로 거듭나며 전환기를 맞았다. <경남도민일보>는 사업 주관기관인 한국산업단지공단(이하 산단공) 경남본부와 함께 5회에 걸쳐 사업 의의와 성과를 돌아본다.

경남은 자타가 공인하는 방위산업 중심 도시다. 안보경영연구원 '2018 방위산업실태조사'를 보면, 경남 소재 방산기업은 36.7%(창원 21.3%)로 전국 집적률 1위였다. 당연히 매출액(36.7%), 수출(43.9%), 종사자(30.7%) 비중도 압도적이다. 하지만, 신규채용·신규설비 투자액은 전국 3위, 신규 연구개발 투자액은 4위에 머물렀다. 성장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산단공 경남본부 '방산MC'는 방산혁신클러스터 시범사업과 함께, 다시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쌍끌이 마차 중 하나다. 전국 79개 MC 중 유일한 방산 관련 협의체이기도 하다.

◇매출 성과 회수로 지속가능성 담보 = 지난달 30일 창원 ㈜해암테크에서 천기식 방산MC 회장, 천현욱 매니저를 만났다. 정보 교류가 핵심인 MC지만, 다른 곳보다 보안이 중요한 방산업계는 다르지 않을까? 천 회장은 "핵심 정보를 나누는 데 한계가 있어도, 기술 수요가 있을 때 서로 판로를 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원사 중 하나인 'SG서보'가 해군에 어뢰 고정·해제 장치 시제품을 납품한 사례를 들었다. 협의체 내 발 넓은 사람들이 해군 부품 조달 수요를 미리 파악했고, 회원사 간 수소문을 거치면서 기회를 잡았다는 것이다.

 

 방산MC, 경남 방산 재도약 매진
기술 수요 발굴·판로 개척 협조
회원사 투입 대비 7배 매출 내
협동조합화 등 지속가능성 고심

이 회사는 K9 자주포 유량제어밸브, K21 장갑차 구난유압장치 등 기술을 갖춘 유압부품 전문 제조사다. 협의체 전체가 사업 선정에 힘을 모았고, 시제품 개발비용 약 1600만 원을 지원받았다. 나온 제품은 기존 수입품보다 약 60% 저렴하고, 매출 기대 효과는 약 11억 8000만 원이다. 투입비용 대비 7배 넘는 성과다. 천 회장은 "대형 연구 과제 하나에 들어가는 예산을 시제품 개발 지원 쪽에 쪼개 투입하면 효과가 더 크다고 본다"라며 "원가 절감 효과가 보이는데 시제품 비용만 들고 계약 성과가 없을까 봐 망설이는 중소기업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창원 ㈜해암테크에서 만난 천기식 방산MC 회장.   /이창우 기자
▲ 창원 ㈜해암테크에서 만난 천기식 방산MC 회장. /이창우 기자

천 매니저는 "협의체를 자율형으로 바꾼 뒤, 기업들이 산단공뿐 아니라 다른 유관기관 과제에도 눈을 돌리는 등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지속가능성이다. 방산MC는 최근 정보 교류 덕분에 발생한 매출의 3% 정도는 협의체 운영 비용으로 회수하는 내용으로 정관을 변경했다. 자율형 전환에 따라 기업 간 만남·정보 교류에 드는 비용, 매니저 인건비가 줄어드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다. 이어 "비율만 정해놓으면 연구 과제가 커질수록 기업 부담이 늘어나 과제수행 적극성이 떨어질 수 있다"라며 "회수 상한선을 두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고, 장기적으로 사단법인 혹은 협동조합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천 회장은 "경남 방산MC에는 아직 무기체계 관련 기업들이 대부분이지만, 넓게는 군용 식량, 군용 차량 시트 등 비무기체계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도 많다"라며 "경남 외 방산 기업들을 망라한 전국단위 협의체를 구성하는 일도 목표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창원시·창원산업진흥원·경남대·창원대 등 협의체 내 여러 기관도 정보 교류, 시장개척단 활동, 국방위원회 간담회 개최 등 지역 방위산업 진흥이라는 목표 아래 머리를 맞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전략적 육성 필요한 '창업 MC' = 세계 산업 생태계는 변하고 있다. 국내에도 네이버·카카오·비바리퍼블리카(토스) 등 기술 기반 창업기업들이 고성장하는 상황이다. 경남은 방위산업, 기계·제조산업에 강점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정보기술(IT) 등 미래형 산업 기반이 약하다. 제조업·IT 기술을 융합한 창의적 사업도 지지부진하다. '자율형 디지털융합 MC'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범한 창업기업 중심 협의체다. 그 때문에 경남 소재 다른 9개 MC와는 이질적인 특성이 있고, 전략적으로도 중요하다.

 

창업MC, IT 약세 극복하려 출범
신사업 발굴·창업 정보·홍보 등
지역 구분 없이 활발하게 교류
미흡한 가치평가·지원은 과제

지난달 31일, 알에이치테크에서 만난 박경록 디지털융합MC 회장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박 대표는 "디지털융합MC지만, 사람들은 '창업 MC'라고 부르곤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산·울산에는 '위고포럼'이라는 민간주도 창업기업 협의체가 있는데, 경남·창원은 미래경영자클럽 등 기존 제조업 기업 쪽으로 특화된 상황"이라며 "도내 창업기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연결망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생겨난 협의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융합MC 회원사는 △기존 고성장 제조업 기업 △기존 고성장 창업 기업 △혁신 제조업 기업 △신규 창업기업 등 4가지 소그룹으로 나뉜다. 이들 사이에 제조업·디지털 융합을 통한 신사업 발굴, 창업 관련 정보 공유, 온라인 홍보 지원 등 여러 상호작용이 벌어진다. 더 넓은 단위 정보 교류도 활발하다. 박 대표는 "오는 9월에는 경남을 벗어난 영남권 네트워킹 데이에 소그룹으로 참여할 예정인데, 세무사·변리사·연구개발자·기업·투자자 등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라며 "딱딱한 행사가 아니라 실질적인 홍보·투자·교류가 이뤄지는 행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알에이치테크에서 만난 박경록 디지털융합MC 회장. /이창우 기자
▲ ㈜알에이치테크에서 만난 박경록 디지털융합MC 회장. /이창우 기자

디지털융합MC 회원사에는 지역 구분이 없다. 예를 들면, 상대적으로 제조업 역량이 떨어지는 대신 IT 산업 육성에 투자하고 있는 부산 소재 기업들도 회원사로 다수 받았다. IT 기술력을 갖춘 대신 시제품 제작·양산 기술이 없는 부산 기업들이 창원 제조기업과의 교류를 원하는 일이 많아서다. 적당한 납품처를 이어주는 일도 MC 역할이다. 다른 지역에서 디지털 융합 산업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창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한편, MC 제도가 제조업 기업을 중심으로 설계돼, 디지털융합MC 잠재 가치를 제대로 측정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쓸 수 있는 내비게이션 장비, 키오스크·모션캡처 기술을 연계한 운동성과 측정기술 등 제조업·IT 융합 사업화 착상들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산단공 과제로는 선정되지 못했다. 주관기업 규모를 보는 심사 성향, 타 기관 대비 무거운 과제신청 양식, 높은 시제품 개발 민간 부담금 등 창업 기업이 맞추기 어려운 여러 조건 탓이다. 박 대표는 "자율형 MC를 구성한 덕분에 최소한의 네트워크 기반을 유지할 수 있었다"라면서도 "다른 기관들처럼 '창업 기업' 맞춤 지원 체계도 고민해봤으면 한다"라고 제안했다.

방산·디지털융합 자율형 MC 가입 희망 기업은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지역본(070-8895-7818)로 문의하면 된다.

/이창우 기자 irondumy@idomin.com

※이 기사는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본부와 경남도민일보가 공동으로 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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