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살랑 걷는 남파랑길 (15) 장승포시외버스정류장∼거제조선해양문화관

능포항 빨간·하얀등대 '우뚝'
드라마 배경지답게 예쁜 풍경
능포 양지암조각공원도 명소
작품 어우러진 항구 풍광 장관

날은 궂고, 바람은 매서웠다. 짙게 깔린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어둑한 비구름은 온종일 빗발을 뿌려댔다. 우산을 써도 옷이 다 젖을 만큼 강한 비바람이 일었고, 오른손에 들고 있던 우산은 바람에 여러 차례 뒤집혔다. 종종 가던 길을 멈춰서야 했다. 드문드문 햇볕이 고개를 내밀 때도 있었지만 그건 잠시뿐이었다. 구름 사이로 햇살은 드러났다 숨기를 반복했다. 한마디로 걷기 좋은 날은 아니었다. 장마철 거제에서 만난 남파랑길 풍경이다.

◇옛 소도시 장승포에서 시작되는 둘레길

장승포는 거제에서도 가장 동쪽에 있는 동네다. 거제시청에서 찻길로 20분가량을 달려야 닿는다. 이곳은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인구 5만 명 규모 작은 시(도시 면적 30.11㎢) 가운데 하나였다. 행정구역 개편 이후 1989년 거제군 장승포읍이 장승포시로 승격되었다가 분리 6년 만인 1995년 다시 거제군과 통합되면서 거제시 장승포동이 됐다.

이 일대에 해안선을 빙 둘러싸고 도는 둘레길이 있다. 바로 양지암등대길이다. 장승포시외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해 느태고개 방면으로 올라가면, 양지암등대로 이어지는 길목이 나온다. 옥포항을 드나드는 선박 안전 항해를 위해 1985년부터 거제 동부 해안곶에서 불을 밝혀온 무인 등대다.

▲ 장승포항에서 기미산 등산로로 가는 길. /최석환 기자
▲ 장승포항에서 기미산 등산로로 가는 길. /최석환 기자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남파랑길은 지역 자체 둘레길과 구간이 일부 중첩된다. 이전에 시가 짠 경로를 타야 남파랑길과 맞닿는데 양지암둘레길은 느태고개가 종점이다. 반면 남파랑길은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된다.

코스를 따라 고개를 올라서면 능포봉수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능포아파트 뒷산(해발 178.3m)에 만들어진 옛 조선시대 통신시설이다. 봉수대는 2000년 2월 등산로가 개설되는 과정에서 정비됐다. 그 앞에 세워진 빛이 바랜 안내판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능포동봉수대는 임진왜란 때 옥포, 조라진의 별망으로 멀리 가덕도와 대한해협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왜구의 침입과 해안경비 등 변방의 상황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다.' 돌이 허물어져 본래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은 봉수대지만, 어찌 됐든 일부나마 옛 자리를 지키는 모양새다. 여기에도 역사가 남아있다.

◇산 너머 능포항·능포수변공원으로

능포항은 거제도에서도 맨 오른편 동쪽 해안부에 있는 1.7㎞ 규모 항구다. 여러 바다생물이 일대에 서식한다. 이곳에서는 보리새우가 특산품으로 불린다.

▲ 능포빨간등대와 하얀등대. /최석환 기자
▲ 능포빨간등대와 하얀등대. /최석환 기자

산밑 능포항으로 내려오면 알록달록한 무지개색 방호벽이 먼저 얼굴을 내민다. 그리고 그 옆길에서 등대가 드러난다. 능포빨간등대가 우뚝 솟아있다. 글자 그대로 빨갛게 덧칠된 능포에 있는 등대여서 이름이 능포빨간등대다. 배우 김우빈·배수지가 출연한 KBS2 20부작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2016) 촬영지이기도 하다. 하얀등대도 이 등대 앞에 서 있다.

"저기 있는 게 능포에 있는 등대들이야. 그냥 이름은 하얗고 빨간 거로 대면 돼. 여기가 유명한 동네는 아니지만, 우리 마을에서 볼거리는 이 주변뿐이지. 더 유명한 곳에 가려면 저기 저 구조라해수욕장, 바람의 언덕 그런 쪽에 가야 해. 여기는 볼 게 많지 않아. 낚시하기에 좋지. 돔이 잘 잡혀."(비 오는 날 감성돔과 참돔을 잡으려고 우산도 쓰지 않고 등대 앞에서 바다낚시를 즐기던 할아버지)

▲ 능포빨간등대 옆 수변공원에 조성된 해바라기밭.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해바라기가 황금빛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최석환 기자
▲ 능포빨간등대 옆 수변공원에 조성된 해바라기밭.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해바라기가 황금빛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최석환 기자

등대 옆 수변공원에 해바라기밭이 깔렸다. 일대를 노랗게 수놓은 해바라기가 시선을 붙잡는다. 황금색처럼 빛을 내며 아름다움을 뽐낸다. 흐린 날씨 속에서 홀로 빛을 띠는 모습이었다. 이런 풍경이 가던 길을 멈추게 했다. 밭 주변에서는 수국이, 바다 쪽에서는 절벽이 드러나 보였다.

◇양지암조각공원과 거제조선해양문화관

국내 예술가들이 만든 조각품들이 능포 양지암조각공원 곳곳에 놓여있다. 화강석과 스테인리스, 청동 등으로 제작된 것들이다. 시는 공모 작품 가운데 주위환경과 잘 어울리는 것을 추려 공원에 설치해놨다. 일대에 들어서면 조각뿐 아니라 능포항 전경에도 눈길이 간다. 공원이 경사 높은 곳에 지어져 있어 풍광을 눈에 담기 좋다.

"집이 경기도 용인이에요. 2019년 퇴직 이후 여러 지역을 돌며 '한 달살이' 중이에요. 자비 들여서 거제 '한 달살이'를 하려고 지난 월요일(27일)에 내려왔거든요. 거제에는 이번에 처음 왔는데 오자마자 장마여서 잘 돌아다니지 못했어요. 옥포 쪽에 숙소를 잡고 나서 찾아보다 오늘 조각공원에 온 건데, 아직 거제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네요. (웃음) 통영에서도 한 달간 살아봤는데 거기랑 비슷한 듯하기도 하고…. 다음 달 돌아가기 전까지 더 둘러보려고요."(양지암조각공원에서 만난 중년 남성)

▲ 양지암조각공원. /최석환 기자
▲ 양지암조각공원. /최석환 기자

장승포항을 지나 거제대학교가 있는 기미산을 2시간 넘게 등산하고 내려오면 거제 옥화마을 무지개바다윗길로 곧장 이어진다. 유인도인 지심도와 옥화마을 등을 볼 수 있는 해안길로 날이 좋을 때 노을에 물들어가는 하늘을 구경하기 좋은 장소다. 산을 경계 삼아 구불구불 길이 연결된다.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 시즌 4>가 이곳에서 촬영(지난 3월 방영분)됐다고 한다.

여정 종착지에 거제조선해양문화관이 있다. 남해안 어촌생활사, 그리고 선박 역사와 기술을 알 수 있는 공간이다. 선박 종류를 비롯해 배 역할과 기원, 석기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거제 역사 문화, 해양 생태계, 바다생물 등을 볼 수 있다. 조선해양전시관과 어촌민속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 아이들도 이해하기 쉽게 소개 영상을 만들어 보여주는 영상관도 운영 중이다. 변화무쌍한 역사와 관련 정보를 알아보는 데는 어느 곳과 견주어도 빠지지 않을 듯싶다. /최석환 기자 csh@

 

※길라잡이

남파랑길 20코스는 장승포시외버스정류장~능포봉수대~능포수변공원~능포빨간등대~양지암조각공원~장승포항~무지개 바다윗길~거제씨월드~거제조선해양문화관 순으로 이어진다. 산을 여럿 넘어야 하므로 물은 꼭 여러 병 가방에 챙겨 가는 것을 추천한다. 산에 한 번 오르면 2시간 이상 등산해야 하는 곳도 있다. 기미산을 넘은 뒤에는 곧장 카페와 만날 수 있지만, 종착지에 다다라야 편의점이 나타난다. 여정을 마친 뒤나 여정 중간에 시간이 된다면 코스에 없는 양지암등대를 보고 오는 것도 괜찮겠다. 능포항에서 양지암등대까지는 걸어서 30분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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