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속 최저 생계 외면한 채
적당한 액수로 중재라니 타당한가

2023년 우리 노동 한 시간의 가치가 9620원으로 결정됐다. 2017년 대통령 선거부터 사실상 모든 후보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최저임금 1만 원이 결국 2023년이 되어서까지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더군다나 물가 폭등이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도 5%만이 인상돼 사실상 임금 삭감과 같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올해는 최저임금 결정액 외에도 최저임금 차등적용 이슈가 떠올랐었다. 윤석열 정부는 후보 시절부터 최저임금 차등적용,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주52시간 노동시간 제한 완화 등 시대를 역행하는 반노동적인 발언을 해왔다. 이 발언에 힘입어 경영계와 언론은 지역별·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이 가능한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역설하며 여론을 이끌어가려 했다. 다행히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부결되었지만 차등적용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는 등 업종별 차등적용이라는 제도개악에 점점 시동이 걸리는 모양새이다.

경영계는 최저임금 미만율을 근거로 들어 지불능력에 따른 차등적용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이미 위법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노동자들을 합법적으로 차별하자는 반인권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최저임금은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 권리임을 함부로 부정해선 안 된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없어 실질적 보호를 받기 어려운 사업장에 종사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청년, 경력단절여성, 노인과 같이 취약계층에 속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저임금위원회라는 사회적 대화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교섭과 다름없다. 노조가 있다면 임금협상을 하고 파업을 할 수도 있지만 최저임금 노동자에게는 실질적으로 주어지지 않는 권리일 뿐이다.

최저임금은 그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 노동자가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임에도 최저임금 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이 최고임금과 같다. 결국 최저임금 노동자는 주거비를 줄이고, 식비를 줄이고, 사람을 만나면서 발생하는 관계 비용을 줄이며 버틸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지불능력만을 이야기하며 차등적용까지 하자는 주장은 분노를 넘어 실소를 머금게 한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는 최종 결정 전 민주노총 측 노동자 위원 4명이 퇴장하고 사용자 위원은 전원 퇴장했다. 회의 초기부터 합의점을 만들기 어려운 최저임금안을 가지고 오고, 발전적인 논의는 하지 못한 채로 결국 공익위원이 제시하는 금액으로 표결하는 모습은 몇 해째 반복되는 모습이다. 지난 몇 년의 경험을 통해 사실상 최저임금은 정부 의지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아왔다. 처음에는 파격적인 금액을 질러놓고 줄다리기를 거듭하며 결국 정부에서 임명한 공익위원들이 제시하는 적당한 중재안으로 결정되는 것을 과연 사회적 대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올해에는 460원이 인상된 금액으로 결정되었지만 내년 이맘때가 되면 또다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시즌이 돌아온다. 우리가 지난 몇 년간 보아온 모습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논의의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매해 반복되는 풍경 속에서 최저임금 노동자 현실과 조명되지 못하는 노동자 목소리를 드러내는 최저임금 결정과정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노동자들이 최저 생계를 넘어 보다 풍부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최저임금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한다.

/강지윤 경남청년유니온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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