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으로 본 세상 2차 가해 양상 (하)

피해자에 책임 전가 혐의 부인
피해 사실 유포·협박 일삼기도
"유죄 인정 땐 무시 못할 요인"

가해자의 책임 회피는 '2차 가해'다. 증거를 숨기거나 피해자를 탓하며 재판까지 끌고 가는 행위로 피해자는 장시간 일상을 되찾지 못한다. 특히, 성범죄 사진이나 영상 유포는 되돌리기 어려운 2차 피해로 이어진다.

사건 이후 수사기관, 사법기관, 언론, 주변 사람 등이 피해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피해자가 겪는 심리적 고통이나 사회·경제적 불이익 역시 심각한 2차 피해다. 이는 회사 또는 조직 내 성폭력을 무마하려는 과정에서도 발생한다.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돼 재판부도 2차 가해 처벌을 더 무겁게 하는 요인으로 언급하고 있다.

◇책임 회피형 = 창녕 한 중학교 교사는 소형카메라로 여자화장실을 불법촬영해 지난해 1월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신상정보 3년간 정보통신망 이용 공개·고지 등을 명령받았다. 이 교사는 범행이 발각되자 메모리카드를 제거하고 '바다로 던져 버렸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설령 이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디지털 범죄의 복제와 전파 가능성 등 본질적 속성에 비춰보면 오히려 2차적인 피해 가능성을 유발·증대할 매우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것으로 그 비난 가능성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일부 피해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는 등 극도의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면서 피고인 엄벌을 탄원했다.

30년 가까이 공직에 몸담았던 피고인은 술에 취한 직장 상사를 성폭행하려다 노래방 업주에게 발각돼 미수에 그친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수사기관과 1심 공판에서 범행을 부인하며 '피해자가 먼저 성적 접촉을 해왔다'고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당하기까지 했다"고 짚었다.

차 안에서 동료를 강제로 추행한 한 교사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항소했으나 올 1월 기각됐다. 그도 범행 이후부터 재판까지 혐의를 부인한 데다 피해자 행실과 인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피해자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동료 교사와 관계, 별개 횡령 의혹 등을 문제 삼으며 2차 가해를 계속했다. 재판부는 "2차 가해를 고려하면 엄히 피고인을 처벌함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처벌 가중 요인 =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위반해 음란물을 제작·배포·소지한 사건은 '2차 피해' 우려가 컸다. 9세가량으로 추정되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음란 영상을 찍어 보내게 하고 이를 제삼자에게 배포한 피고인은 징역 5년을 받았다. 그는 항소했으나 기각됐다. 재판부는 "아동·청소년 음란물은 정보통신망으로 유통될 가능성이 있고, 피해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아동·청소년을 두텁게 보호해야 하는 관점에서 엄정히 대처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피해 여성이 혼자 사는 아파트 열쇠를 훔쳐 수차례 침입하고 피해자 속옷을 훔친 피고인은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항소했으나 기각됐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용서를 받지도 못했고, 피고인이 동네에서 범행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고 다녀 피해자에게 2차 피해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고 꾸짖었다.

중학교 동급생을 오랜 기간 다양한 수법으로 괴롭히거나 폭행한 피고인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등을 선고받았다.

피해자가 학교에 피해를 호소하는 상황에도 가해자는 반성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자를 찾아가 보복하고, 신고하지 못하도록 협박하는 2차 가해를 했다.

잇따르는 재판부의 2차 가해 언급을 두고 조아라 변호사(법무법인 김앤파트너스)는 "양형 사유에 2차 가해 부분을 명시적으로 넣어야 한다고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피해자 측에서 2차 피해 사실을 호소하면 판결문에 담기고 있다"며 "유죄로 인정되고, 2차 가해 상황 역시 입증되면 재판부도 이를 무시할 수 없어 가중 요소로 언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 변호사는 "과거에 2차 피해는 얘기 자체가 안 됐다. 지금은 인터넷이나 SNS(사회관계망서비스)가 발달해 피해 사실이 쉽게 퍼질 수 있는 환경"이라며 "형이 확정될 때까지 피해자를 향해 편견과 오해가 생길 수 있고, 이것을 2차 가해로 명명하다 보니 사람들도 인식하게 되고 피해자의 주장 자체도 구체화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끝>

/이동욱 기자 ldo32@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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