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도 드러내지 못하는 피해

진실규명 결정 건설호 피해자 유족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월 출범 이후 첫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 납북귀환어부 사건이다. 1968년 11월 납북됐다가 6개월 만인 이듬해(1969년) 5월 28일 귀환한 건설호(1건), 풍성호(3건) 어부에 관한 것이다.

이 중 건설호 피해자 가족인 김모(58·거제시) 씨와 27일 전화 인터뷰를 했다. 김 씨 아버지는 구타, 고문 등 가혹행위로 허위진술을 강요받아 반공법,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1년 처벌받았다. 김 씨는 여전히 피해자 가족임을 드러내기 두렵다고 했다.

- 진실화해위원회 진실 규명 신청을 어떻게 하게 됐나?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납북귀환어부 사건이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는 것을 봤다. 그러다 진실화해위 신청을 하는 것도 알게 돼 강원도 고성 법원, 경찰서 등에서 판결문, 자료 등을 확보했다가 신청했다. 법원 재심도 진행 중이다."

- 아버지는 어떤 고초를 겪으셨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고통을 감추셨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전에 아버지가 많이 맞았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아버지는 직접적인 표현은 안 하셨지만, 너희도 나중에 문제 생기면 맞아 죽으니까 북한 얘기를 절대 하지 말라는 교육만 자꾸 하셨다. 아버지는 34살에 납북되셨고, 20년간 고초를 겪으시고 54살(1989년)에 돌아가셨다."

- 가족이 겪은 고통은 어땠나?

"아버지 구직 등으로 초등학교 다닐 때 채 1년을 다니지 못하고 이사 다녔다. 부산, 울산, 통영 등 13곳 정도 된다. 친인척도 만나기 어려웠고, 주변 사람과 어울리지 못해 우리 가족끼리 살았다. 아버지는 원양어선을 타려고 해도, 공장에 가려고 해도 취업이 안 됐다. 나중에는 어머니가 배를 탔다. 나도 언니도 공부를 잘해 공무원 시험을 봤지만, 신원조회에서 다 걸려서 탈락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고통이 엄청났다."

- 주변에서 피해 사실을 알고 있나?

"모른다. 드러내고 싶지 않다. 납북귀환어부 가족이라는 사실 때문에 가족 중에는 결혼이 무산되기도 했다. 아직도 괴롭힘을 당할까봐 두렵다. 좋은 기억이 아니니까 반복해서 말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돌아가신 아버지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어서 나서게 됐다."

/우귀화 기자 wookiza@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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