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72주년 / 분단의 피해자 납북귀환어부 (하) 국가폭력 진실규명 작업

1954∼1987년 3648명 납북 3230명 귀환
상당수 반공법·국가보안법으로 처벌
불법 사찰에 2차 처벌된 사례도 많아

3000여 명에 이르는 납북귀환어부. 이들 중 상당수가 반공법, 국가보안법,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았다. 간첩조작 사건도 많았다. 하지만, 명예회복은 더디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 집계를 보면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이는 46명에 불과하다. 최근 피해자 모임도 만들어졌고, 강원도에서는 민관합동추진단도 발족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국에 흩어진 피해자들이 개별 대응을 해야 하는 형국이어서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기획·진행한 국가폭력 사건"
1기 진실화해위에서 46명 재심 무죄
2기 12월 9일까지 개별 규명 신청받아
강원도 지자체 차원서 진실규명 작업
"기록 공개에 국가가 적극적이어야"

 

◇더딘 진실규명 = 납북귀환어부는 서해, 동해에서 어로작업을 하다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돼, 북한에 억류됐다 돌아온 이들을 말한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에 많았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귀환 직후 형사처벌을 받은 어부들은 지속적인 사찰을 받았고, 몇 년 후 다시 공안 사건으로 2차 처벌을 받는 사례가 많았다고 밝혔다.

1987년 치안본부가 작성한 납북귀환어부 현황표를 보면, 1954년부터 1987년까지 3648명(어선 459척)이 납북됐다. 이 중 418명(33척)이 돌아오지 못했고, 3230명(426척)이 귀환한 것으로 집계됐다. 귀환한 어부 상당수는 반공법(찬양고무·탈출), 국가보안법(금품수수), 수산업법(어업제한조건) 위반 혐의로 처벌받았다.

▲ 김춘삼(오른쪽) 동해안 납북귀환어부피해자 진실규명 시민모임 대표가 지난 4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재심 촉구 기자회견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정의당 이은주 국회의원실
▲ 김춘삼(오른쪽) 동해안 납북귀환어부피해자 진실규명 시민모임 대표가 지난 4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재심 촉구 기자회견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정의당 이은주 국회의원실

이은주 정의당 국회의원이 지난 5월에 공개한, 1972년 9월 7일에 작성된 '귀환어부 처리조종' 내무부 지침을 보면, 수사관들이 납북귀환자들을 구속영장 없이 불법 구금 상태에서 신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문 방향을 '간첩지령사항'으로 정해뒀다. 이 의원은 "공개한 자료는 납북귀환어부 사건이 국가가 기획하고 진행한 국가폭력 사건임을 증명한다"라고 밝혔다.

앞서 1기 진실화해위(2005∼2010)는 2009년 3월 26일부터 7월 20일까지 4개월간 국가기록원에서 입수한 반공법, 수산업법 위반 혐의 1028명 판결문을 조사·분석해 7건(10명)에 대해 직권조사를 해서 진실규명을 했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 직권조사를 포함해, 진실규명 신청 등으로 재심 무죄 선고를 받은 이는 46명이다.

2020년 12월에 출범한 2기 진실화해위는 개별 진실 규명 신청에 따라 지난 2월 건설호·풍성호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 4건을 진실 규명했고, 1965년부터 1972년 사이 귀환한 선원 982명(109척)을 직권조사할 계획이다. 개별 진실규명 신청(전화 02-3393-9700)은 올해 12월 9일까지 받는다.

▲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명의로 처리지침을 내린 서류. 불법 감금에서 신문 기간, 신문 방향(간첩지령사항)까지 정해져 있다.  /정의당 이은주 국회의원실
▲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명의로 처리지침을 내린 서류. 불법 감금에서 신문 기간, 신문 방향(간첩지령사항)까지 정해져 있다. /정의당 이은주 국회의원실

◇정부가 명예회복 조치해야 = 지난해 12월 납북귀환어부가 많이 사는 동해안 지역에서 '동해안 납북귀환어부피해자 진실규명 시민모임'이 창립됐다. 올해 2월 강원도의회는 납북귀환어부 지원 조례를 제정했고, 3월에는 춘천지검 속초지청이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 진실규명 협력 전담팀'을 출범시켰다. 이달 20일에는 강원도에서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 민관합동추진단'도 꾸렸다.

피해자 단체, 관련 연구자들은 국가 차원의 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김춘삼(66) 동해안 납북귀환어부피해자 진실규명 시민모임 대표는 "정부가 피해자 문제를 인정하고 조치하는 게 너무 늦다. 정부가 공식 사과하고, 특별법 등 후속 조치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가 10대에 북에 잡혀갔다 왔다. 우리 세대가 생존한 마지막 세대다. 예를 들면, 1971년 여수 선적 탁성호의 경우 당시 선원 대부분이 40∼50대여서 그분들을 찾기는 어렵다. 대부분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 납북됐던 어선이 귀환하는 모습.  /연합뉴스
▲ 납북됐던 어선이 귀환하는 모습. /연합뉴스

엄경선 동해안 납북귀환어부피해자 진실규명 시민모임 운영위원도 "납북귀환어부 사건은 남북 대립체제에서 정부가 어민들을 자기 체제 유지를 위한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납북귀환어부 개별 사건이 아니라 그 피해 집단에 대해서 국가적 판단이 내려져야 한다"고 했다.

변상철 평화박물관 연구위원은 "검찰에서 수사기록을 주지 않고, 국가기록원에서는 국익에 반한다고 비공개 결정이 많다. 이 때문에 진실 규명을 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 지난 15일 UN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 방지 보장에 대한 특별보고관 요구'처럼 국가 피해 당사자 기록을 공개하는 데 국가가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변 연구위원은 "국가가 북한으로 끌려가는 어민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책임 문제를 가장 먼저 짚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끝>

/우귀화 기자 wookiza@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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