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 소국들 성장 위해 침략
가야 전기사 획기적인 사건

포상팔국(8개 가야 소국)이 침략한 나라는 금관국(김해)인가, 아라국(함안)인가.

이 물음을 두고서는 학계 견해가 분분하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나해이사금 14년 가을 7월에 포상팔국이 '가라'를 침략했다'고 나와 있는 반면, 열전 물계자조에는 침략국이 '아라국'이라고 적혀있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국립김해박물관과 가야사학회 주관으로 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가야학술제전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삼국사기의 가야인식'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학술대회에서 포상팔국 침략 대상이 '금관국'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상대적으로 많았지만, '아라국'이라는 견해도 나왔다.

▲ 국립김해박물관과 가야사학회가 주관한  2022년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삼국사기의 가야인식'이 24일 국립김해박물관 강당에서 열리고 있다.  /최석환 기자
▲ 국립김해박물관과 가야사학회가 주관한 2022년 국립김해박물관 가야학술제전 '삼국사기의 가야인식'이 24일 국립김해박물관 강당에서 열리고 있다. /최석환 기자

피해국 '금관-아라' 엇갈려
〈삼국사기〉 신라본기 '금관'
"상대국은 김해였을 것"
〈삼국사기〉 물계자열전 '아라'
"정확하게 기록돼 있어"

◇"신라본기 기록 원전이 국사" = 전덕재 단국대 교수는 포상팔국이 침략한 나라가 금관국이라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신라본기와 물계자전 원전 편찬 시기가 다르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삼국사기 본기의 원전과 편찬'(주류성)을 저술한 그는 기조 강연자로 나서 "신라본기 기록의 기록원전은 국사"라며 "물계자전 원전은 국사 편찬(진흥왕 6년·545년) 이후인 통일신라 때 찬술됐다"고 밝혔다.

전 교수는 "물계자열전에 '견위즉치명 임난즉망신(見危則致命 臨難則忘身)', '불능이치명망신(不能以致命忘身)'이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이는 논어·예기 등 중국 사서에 나오는 표현"이라며 "물계자열전 원전이 신문왕 2년(682년) 국학 설치 이후에 찬술되었음을 염두에 둔다면, 국사 편찬 이후 후대에 만들어진 자료는 포상팔국이 침략한 나라를 원 표현인 가라가 아니라 아라국으로 잘못 표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어 신라본기 속 '가라'라는 용어가 금관국을 가리킨다고 언급했다. 전 교수는 "국사 편찬자들이 낙동강을 경계로 신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던 김해의 금관국을 신라본기 이사금 시기 기록에서 가야로 표현했다"면서 "신라본기 이사금시기 기록이 전하는 가야(가라)는 금관국(김해)뿐만 아니라 아라국을 비롯한 가야 소국을 총칭하는 표현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검토해본 결과 신라본기에서 전하는 가야는 오직 김해의 금관국만을 가리킨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이영식 가야사학회장(인제대 명예교수)이 좌장을 맡은 가운데 진행된 토론회에서도 포상팔국 전쟁 침략국을 두고 언급이 이어졌다. 이형기 해양수산부 학예연구관은 전 교수와 마찬가지로 전쟁 침략 상대국이 금관국이라고 주장했다.

이 학예연구관은 "더 큰 성장을 위해 교역권을 독점하고자 하는 이슈를 제기했던 게 포상팔국 전쟁이었다"면서 "김해 구야국(금관국)은 상대국, 함안 아라국은 배후국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가야 전기사에 획기로서 자리 잡고 있는 사건인 포상팔국 전쟁은 많은 설이 있고 가야를 공부하는 학자들 중 거의 다루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면서 "포상팔국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던 건 구야국 못지않은 지리적 여건 덕에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또 "아라국은 자신들이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 교역항이 필요했을 것이기에 그 결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됐을 거로 본다"면서 "함안에서 바다 쪽으로 나가려면 대연이라는 고개를 넘어야 진동에 다다를 수 있었는데 그 고리를 만들고자 아라국이 부단히 노력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전덕재 단국대 교수가 학술대회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최석환 기자
▲ 전덕재 단국대 교수가 학술대회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최석환 기자

◇"물계자전 기록 이유 설명돼야" = 이현태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침략국이 아라국이라는 견해를 폈다. 이 학예연구사는 "전체적인 정황상으로 보면 (침략국이) 김해일 것 같긴 한데, 물계자열전에는 정확하게 아라국이라고 기록돼 있는 점을 주목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문헌 쪽에서 보면 이렇게 충돌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며 "어느 한쪽을 따라가고 다른 한쪽은 윤색됐다는 게 가장 설명하기 쉬운 방법이지만, 그렇게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까지 김해를 '가라'로 보는 분들 의견을 살펴봤을 때는 아라국에 관한 설명은 거의 없었다"면서 "물계자전 기록을 전혀 버릴 수 없다고 한다면 여기에 아라국이라고 설정돼 있는 그 나름의 이유가 더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삼국사기> 초기기사 속 가야 관계 기사의 이해(김양훈 대성동고분박물관), <삼국사기>의 '가야' 용례 분석(백진재 양산시청),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보이는 가야(이형기 해양수산부 학예연구관) 등도 발표됐다.

/최석환 기자 csh@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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