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산단 혁신 이끄는 자율형MC
(1)미니클러스터(MC) 그게 뭔데?

'클러스터'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으로 '모으다'를 뜻하는 동사이고, '무리'라는 명사로도 쓴다. 산업 분야에서는 '특정 산업 관련 기업·대학·연구소·지원기관이 집적된 공간'을 뜻한다. 한국 산업지원 정책이 산업단지라는 물리적 공간에 생산 기업을 모으는 단계에서, 연구·지원 기능까지 한데 묶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쓴 용어다. 이 흐름을 밑에서 받친 주체가 바로 '미니클러스터'다. 지역·산업별로 씨줄과 날줄처럼 엮인 산·학·연 협의체로, 경남에는 10곳이 있다. 지난해부터는 '자율형 미니클러스터'로 거듭나며 전환기를 맞았다. <경남도민일보>는 사업 주관기관인 한국산업단지공단(이하 산단공) 경남본부와 함께 5회에 걸쳐 사업 의의와 성과를 돌아본다.

 

'미니 클러스터(이하 MC)' 출범 배경은 2000년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 한국 산업발전은 수출기업을 산업단지에 집적한 덕을 봤다. 정부는 이 공간에 공업용지·도로·용수 등 사회간접자본을 마련하고 입주 기업에 조세·금융 혜택을 줬다. 기업은 생산비용을 아낀 만큼 수출 경쟁력을 확보했고, 이는 국가 무역수지 흑자로 이어졌다. 마산수출자유지역(현 마산자유무역지역), 창원기계산업단지(현 창원국가산단) 등이 대표적이다.

생산 기능이 전국 산업단지에 몰렸다면, 연구 기능은 대전(대덕연구단지)에 집중됐다. 기획지원 역할은 정부 중앙부처·기업 본사가 있는 서울 쪽에 쏠렸다.

이러한 산업구조는 시대 변화와 함께 기능을 다했다. 한때는 산단 집적으로 절감한 비용이 수출경쟁력으로 이어지고, 국외에서 도입한 기술을 국내에 적용하는 연구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고부가 가치 제품으로 선진국과 직접 경쟁하자니, 생산·연구·기획 기능 사이 물리적 거리가 약점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기능을 한데 묶을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참여정부 방침에 따라 지식경제부(현재 산업통상자원부)는 2005년 '산업단지 혁신클러스터 사업'을 시작했다.

가장 비중을 많이 둔 하위 분야가 '산·학·연 협력망(MC) 구축'이었다. 쉽게 말하면, 제 역할에 충실할 뿐 각자의 사정을 잘 몰랐던 기업·대학·연구기관들을 이은 일이다. 산업·지역별로 많은 소단위 협의체가 생겨났고, 한국산업단지공단 각 지역본부가 운영·지원을 맡았다. 이 안에서 기업은 어떤 인재·기술이 필요한지 전하고, 대학과 연구기관은 그에 맞춘 교육과 연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반대로, 이미 연구가 끝났는데 사업화가 지지부진했던 기술들을 기업이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이 협의체들은 그동안 산업 흐름에 따라 여러 번 재편됐는데, 현재는 3522개 기업·대학·연구소(소속인력 4504명)가 전국 79개 MC에 참여하고 있다.

 

산업집적지 기업 경쟁력 한계
대학·연구기관과 협력망 형성

◇자기주도 혁신 체제로 = 지난해부터는 '자율형 MC' 체제로 변화를 시도했다. 기관 주도로 급변하는 산업환경을 쫓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자율형 MC는 산단공이 직접 관리하는 형태가 아니라, 민간 채용 매니저를 중심으로 스스로 교류·협력하는 식이다. 매니저가 관계망 형성을 주도하는 대신, 산단공은 예산 지원·행정 지원 등 역할을 계속한다. 경남권 자율형 MC는 방산·산업소재부품·지능형수송기계·경남산업혁신·지능형생산시스템융합·디지털융합·김해스마트기계·양산하이브리드·사천항공우주·스마트기계 등 총 10곳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지난 15일 경남창원산학융합원 기업연구관에서 '지능형생산시스템융합 MC' 회의가 진행됐다. 이곳에서 김부용 협의체 회장(기성하이스트 대표), 김당주 부회장(대명산업기술 대표), 조광현 매니저를 만났다.

김 회장은 "협의체에 참여하다 보면 서로 뭘 하는 회사인지 알 게 된다"라며 "거래를 트거나 공동 기술 개발에 뛰어드는 일도 생기고, 사회공헌사업에도 함께한다"라고 말했다. 연관 기업들인 만큼, 경쟁 관계에 놓인 곳도 있다. 김 회장은 "오랫동안 신뢰 관계를 쌓은 기업과 각각 주관·참여 기업으로 들어가 지식재산권도 공동으로 누리는 등 상생할 방법을 찾는다"라고 답했다.

▲ 지난 15일 경남창원산학융합원 기업연구관에서 (오른쪽부터)김부용 지능형생산시스템융합 MC 회장, 김당주 부회장, 조광현 매니저가 협의체 참여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이창우 기자
▲ 지난 15일 경남창원산학융합원 기업연구관에서 (오른쪽부터)김부용 지능형생산시스템융합 MC 회장, 김당주 부회장, 조광현 매니저가 협의체 참여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이창우 기자

김 회장은 "의무감에 참여한 기업들도 자율형 전환 이후에는 책임감이 올랐고, 각 기업 간 접점을 파악하는 기능도 강화됐다"라며 "바쁜 산단공 직원들이 참여 기업 모두를 속속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즉, 산단공 역할을 대체하는 매니저가 협의체 성패를 가른다는 이야기다. 조광현 매니저는 39개 MC 참여기업을 전수 방문하고, 높은 기술·제품 이해도를 바탕으로 연구과제를 적극적으로 발굴했다. 김 회장은 "매니저 인건비 지원이 매년 깎여나가는데 몇 년만 지원을 유지해준다면, 충분히 성숙해진 각 MC가 자체 예산으로 고용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협의체 간 신뢰, 성과로 이어져 = 정부 산업집적지 경쟁력 강화사업에 참여하려면 반드시 MC에 들어가야 한다. 단년도(1년 단위 수시 발굴, 2억 원내 지원) △다년도 중형(2년 단위 연초 공모, 3개 기업 이상 참여, 4억 원 내 지원) △다년도 대형(2년 단위 연초 공모, 산단대개조지역 사업장 보유 3개 기업 이상 참여, 8억 원 이내 지원) 등으로 나누어 연구개발을 지원받을 수 있다. 지난해만 해도 전국 MC 통틀어 단년도 175건, 다년도 105건 연구과제를 수행했다. 경남권 MC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얻었다. 지능형생산시스템융합 MC와 산업소재부품 MC가 대표적이다.

지능형생산시스템융합 MC는 창원국가산단 특성을 살려 기계산업 융·복합화를 추진하는 협의체다. 이곳 회원사로 구성된 카스윈 컨소시엄(㈜카스윈·㈜삼현·㈜미래제어·㈜티에스티·㈜상림·창원대 산학협력단 등)은 산업통상자원부 '2022년 ESG형 산단 공동혁신 지원사업'에 지원해 선정됐다. 전국 유일 사례고, 총 23억 원을 지원받는다. 응모 과제는 자동차 배터리 용접 기술에 적용했을 때 기존 방식 대비 탄소배출을 20%, 에너지를 9.4% 줄이는 기술이다. 컨소시엄은 기술 개발에 성공하면 특허 출원 4건 이상, 연 매출 100억 원 이상의 성과를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당주 MC 부회장은 "컨소시엄 구성 과정에서도 협의체 관계망이 큰 역할을 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자율형 교류 형태 전환

경남에서만 10개 협의체 구성
기계산업 융·복합 등 공동 대응
매출 증대·시장 확대 속속 결실

산업소재부품 MC 회원사인 ㈜이레산업 역시 협의체 참여를 계기로 새 시장을 연 기업이다. 전기차를 직접 주행하지 않고도 자율주행 성능을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2019년 한국자동차연구원에서 이전받은 기술이 바탕이 됐는데, MC 소속으로 연구개발 과제를 신청했고 기술 이전·사업화 비용을 지원받았다. 지난해 말까지 약 77억 원 규모 수주 계약을 맺었고, 지원금 대비 7배 수익을 창출했다. 게다가 올해 한국인정기구(KOLAS) 국가공인시험기관 인증을 통과해, 관련 매출도 늘어날 전망이다.

지능형생산시스템·산업소재부품 자율형 MC 가입 희망 기업은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지역본부 기업성장지원팀(070-8895-7803)으로 문의하면 된다.

/이창우 기자 irondumy@idomin.com

※이 기사는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본부와 경남도민일보가 공동으로 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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