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으로 본 세상
2차 가해 양상 (상)

법정 증언대 세워 2차 피해 야기
처벌 피하고자 친족관계서 압박
죄책감 등 피해자 상처 이어져

성범죄 이후 일어나는 2차 가해는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더 어렵게 합니다. 재판부는 2차 가해를 두고 어떤 판단을 하고 있을까요? 최근 2년간 창원지방법원과 부산고등법원 창원재판부에서 '2차 가해' 또는 '2차 피해'를 언급한 판결문 25개를 살펴봤습니다. 가해자는 책임을 회피하면서 2차 가해를 이어갔고, 피해자는 법정에서 하는 증언 자체가 2차 피해였습니다.

 

◇강요되는 법정 증언 =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1월 마련한 '여성폭력 2차 피해 방지 지침 표준안'을 보면 2차 피해는 △수사·재판·보호·진료·언론보도 등 여성폭력 사건 처리와 회복 전 과정에서 입는 정신적·신체적·경제적 피해 △집단 따돌림, 폭행 또는 폭언, 정신적·신체적 손상을 가져오는 행위(정보통신망 이용 행위 포함)에 따른 피해 △폭력 피해 신고 등을 이유로 사용자(사업주 또는 사업경영담당자, 사업주를 위해 근로자 사항의 업무를 수행하는 자)에게 입은 파면·해임·해고 등 신분상실 불이익과 부당한 인사 조치 등으로 정의한다.

법정에서 피해 사실을 진술하는 일 자체가 2차 피해에 포함된다. 사귀던 여성과 성관계 사진을 휴대전화로 찍고 이별 후 다시 만나달라고 요구하면서 이를 피해자에게 메시지로 보낸 피고인은 2020년 7월 창원지법 통영지원에서 징역 6개월 등을 선고받았다. 피해자가 촬영 사실을 모르고 있었음에도,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놓고 다투는 바람에 피해자는 증언을 해야 했다. 재판부는 이를 '2차 피해'로 판단했다.

이는 성범죄뿐만이 아니다. 면허 취소 수준으로 술에 취해 이륜차를 운전하던 피고인은 농로에서 넘어졌다. 뒷좌석에 타고 있던 피해자는 12주간 치료가 필요한 골절 등을 입었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피해자가 운전했다며 책임을 회피하려 했고, 피해자는 증인으로 출석했다. 역시 2차 피해를 불러온 셈이었다. 지난해 9월 거창지원에서 피고인은 징역 1년 실형을 받았다.

◇"피해자가 죄책감 느낄 필요 없다" = 판결문 중 10개는 2차 피해를 우려해 피고인 신상정보 공개·고지를 하지 않았다. 모두 '친족관계'였다. 피해자와 피고인이 친족관계일 때 신상정보 공개·고지 명령은 오히려 더 큰 2차 피해로 이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친아버지, 의붓아버지, 고모부, 친할아버지 등이 친족관계 성폭행·강제추행 가해자였다. 피해자는 13세 미만 미성년자이거나 지적장애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친족관계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탄원서 쓰기 등을 강요하기도 한다. 이 역시 2차 가해다. 한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고인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피해자 나이가 어리고 피해자가 피고인과 같이 사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볼 때 피해자가 완전히 성숙하고 자유로운 판단과 의사로 탄원서를 작성했는지는 의문"이라고 짚었다.

8~16세 딸과 아들 등 자녀 4명에게 성폭행, 추행, 신체적·정서적 학대를 일삼은 피고인은 무려 8가지 혐의로 지난해 8월 징역 12년을 받았다. 자신의 배우자를 상대로 불법촬영 범죄를 저질러 올 3월 항소심까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은 피고인도, 2차 피해 예방을 위해 신상정보 공개·고지가 되지는 않았다.

수년간 친딸에게 반인륜적 범행을 저지른 아버지는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피해자는 마음의 상처와 더불어 아버지를 구금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품게 됐고, 가족에게 버려질까 봐 불안한 상황에 이르렀다. 창원지법 형사4부 재판장 장유진 부장판사는 지난해 4월 이 사건을 두고 판결문에 이렇게 적었다. 피해자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위로를 건넨 것이다. "이는 피고인의 잘못이고, 피해자의 상처와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이므로, 피해자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점을 아울러 밝혀둔다."

/이동욱 기자 ldo32@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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