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72주년 / 분단의 피해자 납북귀환어부 (중) 피해자 이성국 씨 이야기

17살 때 외조부와 함께 탄 어선
북한경비정에 잡혀 11개월 억류
돌아와서 고문·강요에 징역형
고문 후유증으로 온몸 만신창이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솔직히. 잊어버리려고 노력도 했어요. 그래도 이거를 재조명해서 국가보안법, 반공법, 수산업법 위반 평생 꼬리표를 떼고 싶습니다."

지난달 10일 통영 한 식당에서 만난 이성국(68) 씨는 인터뷰를 고사했다가 다시 나서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씨는 1971년 10월 25일 당시 17세 때 강원도 속초에서 명성3호(승선자 21명)를 탔다 납북됐다. 외할아버지(당시 57세)는 기관장이었다. 울릉도 근해에서 오징어를 잡고 속초항으로 귀항하던 중에 일은 벌어졌다. 일을 다 끝내고 자다가 북한 경비정이 배를 끌고 가는 난리통에 일어났다.

"지금은 배 장비가 참 좋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장비가 없어요. 곤파스(나침반) 하나로 망망대해를 나가요. 오로지 선장이 자기만의 노하우 이런 거로. 우리는 조업 끝나고 집으로 갈 줄로만 알았지…."

▲ 지난 5월 10일 납북귀환어부 이성국 씨가 통영 한 식당에서 국가 폭력 피해를 입은 고통을 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지난 5월 10일 납북귀환어부 이성국 씨가 통영 한 식당에서 국가 폭력 피해를 입은 고통을 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안개가 꼈던 그날, 갑작스레 납북이 됐다. 11개월간 억류됐다가 1972년 9월 7일 다른 어부(7척 160명)들과 같이 돌아왔다.

그런데, 가족이 있는 속초 집을 코앞에 두고 경찰들은 그를 집에 보내주지 않았다. 속초시청 회의실, 근처 여인숙 두 곳을 오가게 하며 구타·고문을 가하며, 허위 진술서를 작성하게 했다. 조사받을 때마다 수사관이 달라졌다.

"저들도 집에 가면 형이 있고, 동생이 있고 부모가 있을 건데…. 개돼지도 그렇게 안 패요. 일단 수사받기 전에 뭘 물어보지도 않고 팼어요. 물고문도 당했는데, 영화랑은 달라요. 손을 뒤로 묶고 뒤로 넘어지게 해서 수건을 깔고 물을 붓는데…. 이근안만 고문 기술자가 아니에요. 기가 막히게 하더만요. 하도 맞고 고문당해서 지금은 기상청보다 날씨를 먼저 알아요."

이 씨는 '몸이 몸이 아니다'고 말하며, 그때 비뚤어졌다는 코를 어루만졌다. 허리가 아파 꼿꼿하게 서 있기도 어렵다. 손가락 사이에 볼펜을 끼워서 누른 고문 탓에 볼펜을 제대로 쥐고 있지 못한다고도 했다.

강요로 만들어진 허위 진술로 반공법·국가보안법·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북에 잡혀갔던 일로 가족들도 원하는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며 이 씨는 눈물을 흘렸다. 막냇동생은 경찰대를 가려고 했는데, 자신 때문에 가지 못했다고 했다. "제가 울면서 동생한테 그랬어요. 가지 마라 (넣어도) 안된다. (울음) 내가 평생 이걸 다 안고 사는데. 차라리 내가 당하면 괜찮아요. 왜 죄 없는 가족까지. 그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어요? 나는 무슨 죄가 있어요? 벌어먹으려고 배를 탄 죄밖에 없는데."

다시 배를 탔다. 멀리 가는 배는 타지 않고, 가까운 거리만 움직이는 배에 올랐다. 그러다 넌더리가 나서 직장생활도 해봤다. 양복점, 벽돌공장에도 가보고 신문배달원도 했다. 하지만, 배 타는 일이 익숙해서 이내 되돌아왔다.

 

연좌제 덫에 가족도 평생 고생
1981년 다시 국보법 적용 투옥
외할아버지 옥살이 도중 숨져
석방 후에도 불법사찰 시달려
"진실규명 신청해 낙인 벗어야"

 

일상이 회복될 즈음 다시 경찰이 그를 붙들었다. 1981년(당시 27세) 충남 서산경찰서에 불법 연행됐다. 서산에서 꽃게잡이를 한창 할 때였다. 앞서 처벌을 받은 일이 빌미였다. 이 씨가 불법 연행돼 고문받기에 앞서 외할아버지가 먼저 경찰에 끌려갔다. 외할아버지는 104일, 이 씨는 86일간 불법 구금을 당했다. 경찰은 둘을 한꺼번에 엮으려고 했다. 둘이서 공모해 북한으로 탈출하려고 했고, 군사기밀 탐지, 찬양고무를 했다고 없는 죄를 씌웠다.

"구속영장도 없이 석 달 동안 대공분실 지하에서 고문받은 거예요. 구속영장 떨어지면서 지하실에서 나왔어요. 7월 12일. 이 날짜를 못 잊어뿌리죠. 거짓말도 알아야 하잖습니까. 뭔가 있었으면 더 빨리 나왔겠죠. 없으니까 더 망글(만들)라고 그래서 오래 있었어요. 수사관이 제 앞에서 '내가 체면이 있지. 그냥 보내줄 수 없다'고 하면서 고문했어요. 지 체면 살리려고 내를 이렇게 망글었어요. 3명이서 돌아가면서. 제가 마지막에 그랬어요. 이제 고만 때리고 고만 고문해라. 그 대신에 당신들이 하라 하는 대로 내가 다 해줄게 그랬어요. 그러니까 뭘 갖고 온 줄 아세요? 전에 간첩사건 서류를 갖다 줍디다. 이거 읽어보라고. 그래서 그걸 이틀인가, 삼일인가 읽었어요. 그래 거기에 맞춰서 망글어 썼어요. 긍까 증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납북됐다 귀환 후 징역 1년 실형을 복역한 외할아버지는 그 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고, 이 씨는 10년을 선고받았다. 1심에서는 둘 다 무기징역이었다가 2심에서 형량이 준 결과다. 외할아버지는 복역 중 건강이 나빠져 68세 때 숨졌다. 이 씨는 9년을 복역하고 1990년(당시 36세)에 삼일절 특사로 가석방됐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2010년 이 씨와 외할아버지 1981년 재구속 사건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 수사기관의 불법 구금, 가혹행위로 간첩으로 조작된 사건이라는 결정이었다. 위원회는 참고인 조사, 장기간 불법 구금 상태에서 작성된 이 씨의 38회분 자술서를 작성할 때마다 새로운 범죄사실이 하나씩 추가된 점 등으로 보아 조사 과정에서 이 씨가 구타나 가혹 행위를 당했음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 씨는 이를 토대로 30년 만인 2011년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 지난 5월 10일 납북귀환어부 이성국 씨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 지난 5월 10일 납북귀환어부 이성국 씨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수사기관 감시는 그제야 사라졌다. 납북됐다 1972년 귀환 후 이 씨는 10년 넘게 속초를 벗어날 때마다 속초경찰서 정보과에 신고해야 했다. 1990년 출소 후에는 보안사·정보과에서 한 달에 몇 차례씩 집으로 찾아왔다. 배 타는 일을 벗어나려고 인천에서 직장 다닐 때는 경찰이 하도 회사로 찾아와서 그만둔 적도 있다.

여전히 '낙인'은 두렵다. "일 때문에 통영에 8년 있다 보니까요. 경남에서는 납북어부를 간첩, 빨갱이로 생각하더라고요. 이해를 못 하는 거예요. 전에 회사 다닐 때 그런 걸 버티지 못했어요."

인터뷰하는 도중에 계속 이 씨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자 그는 '아부지 금방 갈게. 조금만 기다려'라고 답했다. 같은 배를 타는 베트남 선원들이 자신을 '아부지'라고 부른다고 했다. 결혼했을 때 자식한테 불이익을 줄까봐 자식을 포기했었다고. 지금은 통영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

그는 자신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 등에 대해) 진실규명 하는 거, 자체를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억울하게 당하신 분들. 죄는 벗어야 될 거 아닙니까. 지금 시대가 많이 변했잖습니까. 억울한 것도 우리로서 끝을 내야지."

이 씨는 지난해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 1972년 북한에 끌려갔다 와서 반공법·수산업법·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은 사건을 진실규명해달라고 신청했다. 올해 법원에 재심 청구도 했다.

/글·사진 우귀화 기자 wookiza@idomin.com

 

◇이성국 씨 삶은
△1954년 8월 16일 출생
△1971년 10월 25일 = 강원도 속초항 명성 3호 승선 중 납북
△1972년 9월 7일 = 속초항으로 귀환
△1972년 11월 24일 =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 반공법, 수산업법,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형 선고
△1981년 4월 17일∼7월 12일 = 서산경찰서, 충남도경 구속영장 없이 연행해 86일간 불법 구금
△1981년 12월 17일 =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무기징역 선고
△1982년 5월 10일 = 서울고등법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형 선고
△1990년 2월 28일 = 9년 복역 후 삼일절 특사로 가석방
△2010년 = 진실화해위원회 직권조사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간첩조작 의혹 사건으로 진실규명
△2011년 =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재심에서 무죄
△2022년 현재 = 1972년 반공법, 수산업법, 국가보안법 위반 건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 법원에 재심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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