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근로 한도 '월 단위'로 관리
연공→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
노동계 "노동자 간 갈등 조장"

고용노동부가 노동시간 주 52시간 제한을 깨고, 성과급제 임금체계 개편이 포함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을 23일 발표했다. 노동부는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에 맞게 체계를 현대화한다는 취지지만, 연장근로 시간 정산 단위 확대 등 사용자 측 요구를 대폭 수용한 내용인 데다 장시간 노동을 고착화할 수 있어 앞으로 추진 과정에 논란이 예상된다.

노동부는 현재 주 12시간으로 규정된 연장근로 시간 한도를 '월 단위'로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은 원칙적으로 일주일 노동시간이 40시간을 넘을 수 없도록 하되 사용자와 노동자가 합의하면 일주일에 12시간 한도로 노동시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개편안이 나오지 않았지만 주 12시간까지 가능한 연장근로 시간을 월 단위로 환산하면 약 52시간(12시간×4.345주)으로, 월에 배정된 연장근로시간을 한 주에 몰아서 하면 일주일 최대 노동시간이 92시간(기본 40시간+연장근로 52시간)까지 가능해진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주 120시간 바짝 일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 현실화할 수 있는 셈이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국외 주요국을 보더라도 우리 '주 단위' 초과 근로 관리방식은 찾아보기 어렵고, 기본적으로 노사 합의에 따른 선택권을 존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선택적 근로시간 정산 기간을 확대한다는 방침도 내놨다. 선택 근로시간제는 정산기간 평균 주 40시간을 유지하면서 노동자가 하루 노동시간을 선택하는 내용이다.

이 장관은 "선택적 근로시간제가 다른 분야는 정산 기간이 1개월이지만 연구·개발 분야에만 3개월을 인정하고 있어 그 범위의 불명확성, 형평성 등 문제가 있다"며 "근로자 편의에 따라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제도의 본래 취지에 맞게 적정 정산시간 확대 등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노동시간 제도 개편 방안으로 △연장근로 시간을 휴가로 보상하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스타트업·전문직 근로시간 규제 완화 등도 검토한다. 박근혜 정권 때 극심한 노사·노정 갈등을 낳은 직무·성과중심 임금체계 개편도 주요 추진과제에 들었다. 호봉제를 직무급·성과급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연공성 임금체계는 고성장 시기 장기근속 유도에는 적합하나 저성장 시대, 이직이 잦은 노동시장에서는 더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특히 "초고령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연공제를 폐지해야 장년 근로자가 (더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 더 오래 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직업정보 포털 오넷(O'net)을 본떠 '한국형 직무별 임금정보시스템' 구축 방안을 밝혔다.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부는 이와 함께 개별 기업 임금체계 개편 컨설팅 확대, 우리나라 임금제도 실태 분석, 국외 임금체계 개편 흐름을 토대로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확산에 필요한 다양한 정책과제를 선정하기로 했다.

또 임금피크제와 고령 노동자 계속 고용을 위한 제도개선 과제 발굴에 나설 방침이다.

노동부는 이들 제도의 구체적인 정책·입법 과제는 전문가로 구성된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 논의를 거쳐 내놓을 계획이다.

이 연구회는 내달부터 10월까지 4개월 동안 운영된다. 하지만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이 발표된 만큼 노동계에서는 "연구회 운영은 명분쌓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노총은 논평에서 "주 52시간제를 무력화하고 노동시간을 무한대로 늘릴 수 있도록 노동시간 유연화 확대, 사용자의 성과평가권한과 임금저하를 위한 직무성과급제 확대, 이를 위한 노동자 간 갈등을 조장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노총도 "정부가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은 한국의 고질적 문제인 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를 공고히 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밝혔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동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선과 임금체계 개편 방향성에 공감하며 경제위기 극복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두천 기자 kdc87@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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