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읽는 시간

수차례 돈 빌려준 저자 가족의 비화
'국민 상대로 탈취해간 빚쟁이'주장
추천사 "집단소송단 만들어 단죄를"

종종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것에서 뜻밖의 감동을 얻는 경우가 있다. 최근 도서출판 피플파워가 발행한 한영순 저 <박정희 비자금 우리 통장에 있어요(1)>가 그런 것 중의 하나다.

역사는 언제나 정치의 정점에 선 인물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왔다. 우리 역사를 돌아봐도 그것은 증명이 된다. 특히 왕들의 이야기는 관심사다. <조선왕조실록>이 보여주듯 사관들은 왕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다. 현대사 역시 대통령이 누구인가에 따라 공화국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이러한 역사를 정사(正史)라고 부른다. 정사가 있으면 비사(秘史)가 있다. 한국 현대사 13명 대통령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집권한 이가 박정희다. 그는 5대부터 9대까지 16년 동안 다섯 번을 국가 최고권좌에 앉아 있었다. 비록 막판에 부하의 총탄에 유명을 달리했지만 대한민국 경제와 새마을운동을 떠올리며 그를 위대한 인물로 인식하는 국민도 많다.

<박정희 비자금…>은 그런 박정희라는 인물을 가차 없이 빚쟁이로 깎아내린 한 개인의 실록이다. 저자 한영순은 1955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이름은 한희승이고, 어머니는 백금남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 책에서 박정희와 돈으로 얽힌 사연의 주인공들이다.

저자는 민주시민연합·관청피해자모임에서 활동했고, 지금은 박정희심판국민행동 대표로 있다. 이 책 편집자인 고은광순 씨도 박정희의 긴급조치로 두 번이나 구속된 경험이 있는 이로 평화어머니회 상임대표로 있다.

저자의 아버지는 함흥 출신 갑부였고, 알고 지내던 군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박정희를 알게 되면서 비사는 시작한다. 전쟁통이었고 군부대 안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아버지 한희승은 몇 번이고 박정희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좋았던 관계가 늘 좋게 흐르지만은 않는 법.

"박정희, 저 간나새끼, 아주 뻔뻔하고 배은망덕하고 양심이 없는 새끼요. 제가 아쉽고 답답할 때 종놈처럼 조아리더니 이제 와서는 제가 상전인 것처럼 내게 으름장을 놓고 말이요. 대통령 감도 안 되는 놈에게 돈을 빌려준 게 너무 후회가 되오. 저건 대통령 되고 싶어 환장한 미친놈일 뿐이제이요."(34~35쪽)

저자는 자기 집이 박정희와 엮이지 않았더라면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박정희에게 빚을 받으러 간 어머니는 오히려 돈 대신 약속만 받고 박정희를 위한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 어느 날 박정희의 충신 이후락이 집으로 찾아오는데, 이때부터 비자금 이야기가 본격화한다.

▲ 2019년 서정화, 박주선, 윤증현을 상대로 법적 다툼을 하고 있을 때 1인 시위하는 한영순.  /피플파워
▲ 2019년 서정화, 박주선, 윤증현을 상대로 법적 다툼을 하고 있을 때 1인 시위하는 한영순. /피플파워

'박정희 사망 후에도 소모품으로 이용되는 한춘자' '구 안기부 요원과 신 국정원 요원의 충돌' '인간말종 흡혈귀 서정화' '돈 세탁은 이제 그만 통장을 파헤쳐라' 등 자극적인 제목이 보여주듯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던가 싶은 비화가 책 속에는 가득하다.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추천사에서 "주제의 특성상 일종의 음모론으로 치부되기 쉽고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인의 입장에서 기술된 것이기에 객관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여겨질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증빙 자료의 충실함과 더불어 과거 박정희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쉽게 공식 확인할 수 있는 인물들의 증장이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객관적 상황 파악이 가능하다"고 했다.

임진철 직접민주주의마을공화국 전국민회 상임의장은 "이 책을 읽은 국민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1만 명 10만 명 100만 명의 국민소송단을 만들어 국민법정을 운영하며 사법적 단죄를 이끌어내는 것"을 소망한다고 했다.

저자는 책에 전화번호(010-6276-0275)도 밝히며 박정희 비자금과 관련한 더 많은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 276쪽. 1만 5000원.

/정현수 기자 dino999@idomin.com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