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변호사 시절 이혼소송 처리 급급
왜 그 아내·남편을 그저 일로만 보았나

15년 전으로 기억한다. 그때 필자는 사법연수원을 갓 수료한 초짜 변호사였다. 법정에 가는 것도 재판에 참석하는 것도 모두 어색한 풋내기였다. 로펌의 대표 변호사가 처리하라고 넘겨주는 사건들은 계속 쌓여만 갔다. 사법연수원에서 배운 수많은 법 이론과 판례들을 직접 현실 사건에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런 필자에게 사건 속 인물들은 마치 영화나 소설 속의 캐릭터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빨리빨리 쳐내야 하는 일이었을 뿐이었다.

이혼사건이었다. 우리 의뢰인은 남편이었다. 아내가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하였다. 하지만 남편은 이혼할 의사가 없었다. 당시 남편은 교사였는데 EBS 교육방송에서 강의를 할 정도로 그 직역에서는 꽤나 성공한 사람이었다. 아이들은 초등학생이었다. 아내의 요구는 한 가지였다. 재산분할도, 위자료도, 자녀들의 친권도 필요 없다. 지금 당장 자신을 놓아달라는 것이었다. 법률상으로 봤을 때 남편이 이혼을 당할 만한 사유는 전혀 없어 보였다. 이대로 재판이 진행된다면 아내의 이혼청구는 기각될 확률이 높았다. 즉 소송에서는 남편이 이길 것이고 그렇게 아내는 혼인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재판부는 법률상 이혼사유가 없어 보이고 부부가 꼭 이혼할 만한 사정도 없어 보였기에 아내에게 이혼소송을 취하하는 게 어떻겠냐고 설득했다. 나이 많은 조정위원들도 부부가 살다보면 다 맞을 수는 없다, 서로 맞추며 살아가는 게 부부라며 남편에게 기회를 줘보라고 역시 아내를 설득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내의 의사는 명확했다. 전혀 그 의사가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두어 번의 재판과 조정을 거쳤지만 아내는 막무가내였다. 당시 일에 치여 있던 필자는 쉽게 이겨 끝낼 수 있는 재판을 괜히 설득한다면서 시간만 끄는 것 같아 내심 불만이었다. 마지막 조정기일에 조정위원들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도저히 아내 의사를 꺾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이렇게 해서 혼인관계를 유지한들 정상적으로 살 수 있겠냐고 말이다. 필자도 남편을 설득했다. 아내가 재산분할도, 위자료도, 아이들 친권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데 이렇게 좋은 조건이 어디 있느냐며 말이다. 남편은 갑작스러운 반전에 당황했지만 조정위원과 필자가 설득하니 결국 그렇게 부부는 이혼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영상은 선명하다. 이혼조정조서를 작성하고 남편과 함께 법원 정문을 나섰다. 그리고 남편에게 이제 두 사람은 법률상으로 남남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가려고 하는데 남편이 말했다. "정말 이렇게 끝난 건가요. 이제 아이 엄마는 더 볼 수 없는 건가요. 정말 이렇게…." 필자는 건조하게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냥 몸만 내보낸 거나 마찬가진데 이보다 좋은 조건으로 이혼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고요." 말을 마치고 돌아섰고 더 이상 남편을 보지 못했다.

오랫동안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수천 건의 사건과 수많은 사람을 겪었다. 대부분은 잊혔다. 하지만 그 오래된 영상만큼은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의 한 귀퉁이에 남아 있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후회한다. 꽤나 좋은 이혼조건이라는 알량한 말로 남편을 설득했는지 말이다. 왜 그 아내와 남편을 처리해야 할 일로만 봤는지 말이다. 지금 나는 그 무심함에 대한 벌을 받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지나간 일은 반성은 하되 후회는 하지 말자'가 인생의 신조이지만 문득 문득 후회가 많이 든다. 왜 나는 그때 그랬을까 하고 말이다.

/문일환 법무법인 지승 대표변호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