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인

간암 발병해 10년 다닌 직장 그만두고 휴식
갑작스런 아픔에도 또다른 꿈 꾸는 시인

10년 동안 BNK경남은행 본점을 지킨 문정식(58) 씨가 지난달 간암(간세포암종)으로 조기 퇴직을 했다.

그는 2013년 1월부터 2022년 5월 31일까지 창원시 마산회원구 석전동 경남은행 본점에서 손교덕·황윤철·최홍영 행장 등 경남은행 출신 은행장 3명의 출·퇴근길을 늘 마중하고, 배웅했다.

낮에는 손님맞이, 밤에는 '야간 사령'을 서며 본점 건물을 꼼꼼하게 살폈다. 경남은행 직원들은 그를 "문 반장님!"이라고 불렀다. 10년 동안 모범직원 상을 2번이나 받을 정도로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했다. 고된 일었지만, "하루를 잘 지켜냈구나!" 성취감에 늘 온 힘을 기울였다고 했다.

문 씨는 마산회원구 회성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부산에서 화장품 회사 이사로 있다가, 회사가 폐업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경남은행과의 인연은 일자리를 알아보던 아내가 우연히 생활광고지에 나온 '경남은행 본점 보안요원 모집' 광고를 본 게 계기가 됐다. 2013년 1월 시험에 합격해 경남은행과 동행을 시작했다.

▲ 시집 3권을 낸 경남은행 본점 청경 출신 문정식 씨가 15일 오후 경남은행 본점에서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br /><br />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시집 3권을 낸 경남은행 본점 청경 출신 문정식 씨가 15일 오후 경남은행 본점에서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문 씨는 보안업체 직원이었던 만큼 운동을 좋아했다. 태권도 공인 3단에 복싱, 유도, 헬스 등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 누구보다 강할 것 같았던 그였다. 그런데 지난해 7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건강검진에서 간암이 발견됐다. 참 고약하게도 암세포가 간 혈관 쪽에 들러붙어 치료가 쉽지 않았다. 그해 8월 색전술(영양분을 공급하는 혈관을 화학 물질을 이용해 차단)을 했지만, 올해 1월 재발해 또 한 번 색전술을 했다. 2월에는 양성자 치료를 2주 동안 받았다.

'의리'의 경남은행 본점 임직원들도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문 씨가 파견업체 직원이기 때문에 신경을 안 써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 하나 없는데도, 최홍영 행장과 최광진 노동조합 위원장을 비롯해 임직원 374명이 그의 쾌유를 기원하며 모금에 동참했다. 2711만 원이라는 정성이 모였다.

"어떻게 제가 아픈 걸 아셨는지, 최홍영 행장님이 병원으로 과일 바구니와 꽃바구니도 보내주시고, '건강 잘 챙기고, 잘 견뎌내서 은행에서 좀 더 오랫동안 보자'고 하셨습니다.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힘이 많이 났습니다. 저 같은 보안업체 직원은 노조원도 아닌 데, 최광진 위원장님이 배려를 너무 많이 해주셨습니다. 또 한 번 감동을 받았습니다. 딸에게 '우리 아빠 은행 생활 잘했는가 보네. 그만뒀는데, 이렇게 연락 오는 거 보니까' 칭찬도 들었습니다. 하하."

그는 시도 곧잘 써 2005년 시인으로 등단했는데, 지금까지 3권의 시집을 냈다. 손교덕 전 경남은행장은 "우리 경남은행에도 시인이 있다"며 그를 늘 "문 시인!"이라고 불렀다.

"간암 발병 이후부터는 매일 오전 9시부터 2시가량 무학산 둘레길을 천천히 걷습니다. 운동을 하고 나면 늘 좋은 시구도 떠오릅니다. 지금도 늘 볼펜과 수첩을 들고 다니며 '순간의 생각과 말'들을 채집합니다."

문 씨는 오는 21일 오후 간암 재발 여부 검사 결과가 나올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몸이 더 악화하지만 않는다면 소설을 한 번 써보고 싶다고 했다.

"단편, 장편 가리지 않고 소설을 써보려고 합니다. 저는 글쓰는 게 너무 재밌습니다. 시도 쓰고, 소설도 쓰면서 남은 인생 멋있게, 재미나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문 시인, 아니 문 반장의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빌고 있다.

/민병욱 기자 min@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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