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거짓으로 죄인 만드는 언론·검찰
예수 부활하듯 진실·진리는 죽지 않아

'카를 리프크네히트'는 마태 수난곡에 대하여 "이보다 더 달콤하고 부드럽고 감동적인 것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달콤, 부드리, 감동"보다, 불합리한 세상 속에서 죽어가는 예수님의 억울한 모습이 더 강하게 가슴에 다가와 비수가 되어 꽂힙니다. 예수님께서는 '원하지 않으셨지만, 스스로'(모순되지 않습니다. 고통스러워 피하고 싶지만, 아버지 뜻을 받아들이는 '순명'이라 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게 되십니다.

이 과정에서 사형선고를 내리는 권한이 있던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살려 주려고 무척 애를 씁니다(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기에 사형을 선고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로마 총독이라는 막강한 권력이 있지만 실패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언론을 움직이고, 군중을 장악한 수석 사제들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그 당시 "축제 때마다 군중이 원하는 죄수 하나를 총독이 풀어 주는 관례가 있었다"(마태오 27장 15절)고 합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관례에 따라 풀어 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군중을 구슬려 바라빠를 풀어 주도록 요청하고 예수님은 없애 버리자고 하였다"(마태오 27장 20절)고 합니다. 성경에서 '바라빠'는 강도(레스타이)로 소개되고 있지만, 로마군에 저항하던 저항군(젤롯데 또는 시카리)으로 추정됩니다. 일제 치하에서 무장 독립군들을 마적이나 강도떼로 분류하던 일본 놈들과 같은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아들까지도 왜곡과 선동, 거짓 정보의 난립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그야말로 현재 한국 언론과 검찰의 악행을 보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무고한 자도 언론의 왜곡 거짓 기사 하나로 죄인이 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일명 '기레기'라고 불리는 '쓰레기 기자'들이 검찰이 흘린 거짓 정보를 받아쓰기 기사로 만들면, 그 기사를 근거로 검찰이 무고한 이도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현실을 우리는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생각, 예수님의 자기희생과 사랑 실천을 불편하게 여긴 기득권자들. 사제들과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지만,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진실과 진리는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습니다. 지금 잠시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끝내 부활하여 진리를 증언할 것입니다. 이것은 수많은 역사 속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기회주의적이고, 돈과 권력에 놀아나며 깨 춤추는 '기레기'(쓰레기 기자), '기더기'(구더기 기자)라 할지라도 역사의 흐름을 읽고 '정론직필'을 실천해야 할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구를 완전히 지배하던 거대 공룡도 결국 그 종말이 있습니다. 지금 한때 검사들이 대한민국 요직을 다 차지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 권력도 종말이 올 것입니다. 그때 후회하지 말고 지금 국민을 위한 검찰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백남해 천주교 마산교구 대방동성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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