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경남청소년문학대상

주최 : 경남도민일보·(사)한국작가회의 경남지회
후원 : 경상남도교육청·(주)진해오션리조트·범한산업(주)

내가 태어났을 때 축복이라며 외가 쪽 친가 쪽 모두가 기뻐했다고 들었다. 엄마는 첫째라서 바르게 키우고 싶어서였을까? 어릴 때부터 배워야 할 건 다 배운 것 같다.

내 기억, 3살 땐 문화센터란 문화센터는 다 신청해서 이것저것 배우고 5살 땐 영어 유치원, 미술, 한자, 피아노 등 정말 많은 걸 배웠다.

아기 때부터 너무 많은 걸 배워서일까? 뭐든 빨리 질렸고 흥미도 느끼지 못하고 재미도 느끼지 못했다. 유치원에서 영어로만 대화하다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서야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이 즐겁구나 느꼈고 학교생활이 재미있어졌다.

학원은 여전히 지루하고 재미없었지만, 사랑하는 엄마의 부탁이라니 많이 노력했다. 잠이 와도 버텼고 숙제도 한 번도 빼먹지 않았다. 학원차를 오래 타서 멀미를 해도 매일같이 버텼다.

엄마의 열정도 참 대단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를 봐줬고 숙제를 도와주며 매일 밤마다 책을 읽어주셨다. 뮤지컬과 공연도 정말 많이 보러 다녔다. 나는 엄마는 왜 이렇게 예술을 좋아할까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온전히 예술을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나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셨던 것이었고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어 하셨던 것 같다. 그 덕분인지 피아노 대회에 나가서 상도 많이 받고, 미술 대회에서도 받았다.

국내엔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여행도 자주 다니고 방학이면 해외여행도 매년 다녔다.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려 초등학생 땐 중학교 때 배울 공부를 하고, 중학교 들어가선 고등학교 때 배울 공부를 했다. 힘들다는 내색 없이 착한 딸로 남고 싶어서, 엄마는 항상 날 착한 딸로 생각했으니까.

엄마는 할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것들, 보지 못한 것들, 느끼지 못한 것들을 나에게 해주고 싶어 하셨지만 난 엄마가 보여주려 한 것에 따라다니는 것도 힘들었고, 엄마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도 힘들었다. 점점 지치기 시작했고 집을 답답하게 만든 엄마가 밉고 싫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계속 버틸 수 없어 내가 무너졌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반항 아닌 반항을 했다. 엄마를 피하기도 하고 말을 안 하기도 하며 학원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친구들과 학원을 빼먹은 적도 있었고 같이 담배를 태우고 친구 집에서 자는 날, 친구들과 술도 마셨다. 나쁜 짓을 하며 나 스스로가 힘들다는 것을 외면했다.

반항의 시기를 보내던 중,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의 도움으로 위클래스를 가게 되었고, 엄마가 학교로 온 날 상담 선생님과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엄마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도 있는 사람이구나. 그것도 나 때문에, 용감하고 딱딱한 줄만 알았던 엄마가 울 수도 있다는 게 너무 이상하기도 했지만 속상함에 눈물이 쏟아졌다.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집이 답답하다는 이유로 가출이 잦아지고 어떤 오빠의 꼬드김에 못 이겨 좋지 않은 이유로 창원 범숙학교로 오게 되었다. 그래도 범숙학교에선 편하게 지내고 있다. 물론 언니들과 다툴 때도 있지만 언니들과 같이 놀고 공부하고 웃고 떠들며 힘들었던 마음들을 풀고 있다. 하지만 엄마는 아직 날 놓아주지 못한 것 같다. 매일같이 나에게 편지를 써주고 하루하루 힘들어하고 후회하는 마음을 담은 그 편지를 읽으니 잘 지내다가도 눈물이 났다. 내가 우울증에 걸려서 힘들어하고 답답해서 가슴 치던 나를 엄마도 내가 범숙학교에 오고 나서 그 마음을 느꼈다고 한다.

나만 힘들었으면 좋겠는데 엄마까지 힘들게 하는 내가 밉기도 하고 엄마의 사과를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문득문득 엄마 생각이 난다. 그래도 내가 화를 풀지 못하는 이유는 엄마는 내가 힘들 땐 내 곁에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힘들 땐 오히려 나의 탓을 한 엄마가 원망스럽다. 엄마는 나의 몸과 마음이 지칠 때마저도 나에게 더 많이 요구했으니까. 엄마는 나의 감정 따윈 전혀 생각해 주지 않는 것 같았다. 나의 감정보다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빨리 해결하고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오기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엄마가 후회를 했으면 한다. 엄마의 교육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난 그저 알려주고 싶다. 동생에겐 안 그랬으면 좋겠고 나 하나로 족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동생에겐 기대를 안 하고 나에게만 기댄 것이 원망스럽지만 차라리 나라서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동생이었으면 동생이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하면 무서우니까. 아빠가 나에게 큰소리 칠 때도, 동생이 잘못한 일을 내가 했다고 거짓말을 한 이유도 둘 중 하나라도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나는 동생을 많이 아끼고 사랑한다. 엄마, 아빠가 동생에게 내게 대한 모습으로는 안 했으면 좋겠다. 내가 범숙학교로 온 후에도 걱정된 한 가지는 동생이 집에서 힘들지는 않을까? 나 없이도 잘 견뎌낼 수 있을까이다. 아빠가 가끔 큰소리 내고, 아빠가 겁을 먹게 만들어도 견딜 수 있을까? 내가 곁에 없어도 동생이 혼자 방에서 울지는 않을까 두렵다. 내가 아픈 것보다 동생이 아파할까 봐 더 걱정이 앞선다. 사실 가출한 이유도 처음엔 내가 없는 집이 얼마나 공허하고 허전한지 엄마 아빠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가족에서의 나의 자리를 알려주고 싶었다. 범숙학교로 온 이후 엄마는 알게 된 것 같다.

엄마에 대한 화를 지금 당장 풀지는 못하겠지만 언젠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날, 엄마를 그리워하는 날, 엄마의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다.

나는 내 과거의 방황하던 행동들에 대해 나의 미래가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미래의 나마저도 날 미워하면 서러우니까. 엄마의 틀 안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방법이 물론 잘못되었다는 걸 알지만 지금 나에겐 지금 이 자리가 가장 최선이었고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생각하며 미래의 나를 위해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시간으로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이현서(가명, 범숙중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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