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경남청소년문학대상

주최 : 경남도민일보·(사)한국작가회의 경남지회
후원 : 경상남도교육청·(주)진해오션리조트·범한산업(주)

올해 18살이 된 나는, 부산의 문화병원에서 우렁차게 출생했다. 나는 태초부터 불효녀였다. 자연분만을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제왕절개로 세상에 나왔으니 말이다. 언제는 방과 후에 돌려받은 폰을 켜는 것을 새까맣게 잊고 친구랑 놀다 연락이 끊긴 부모님께서 내가 실종된 줄 아시고 온 동네가 시끄러워지기도 했다. 또 태권도 학원을 다니겠다고 얼마나 졸라댔던지 관장님께서 아직 나이도 안 찬 나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받아주기도 했다. 그뿐인가, 피아노 학원은 6년 동안 다녔으면서 지금 연주할 수 있는 건 젓가락행진곡뿐이다. 외에도 논술학원, 제과제빵 학원 등 나의 불효 이야기는 넘쳐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조금 미루도록 하자. 내가 나의 불효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건 이 글의 주제가 '내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 즉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니 나는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쓴 적이 없다. 항상 누군가의 이야기를 쓰려 애썼다. 이제부터 등장할 나의 이야기는 앞의 불효 이야기처럼 매우 사실적이다. 심지어는 조금 거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에 거짓이나 모순은 없어야 하기에 있는 그대로 써 내려가겠다.

 

Chapter1 두 번째 꿈

나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제과제빵 학원을 다닌 지 벌써 8개월이 되었다. 그러나 나의 꿈은 제과제빵사가 아니다. 아니, 맞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실은 나의 두 번째 진로에 대한 꿈이다. 꿈을 꼭 하나만 가지란 법은 없지 않은가. 가끔은 내가 제과제빵 학원을 다닌다고 하면, "오, 꿈이 그쪽이야?" 하는 허무맹랑한 질문이 돌아온다. 질문을 입력한 나는 고장 난 자동 답변 기계처럼 말문이 턱 막힌다. 생각을 가다듬고, 침을 한번 삼키고, 최대한 형식적인 대답을 한다. "아니, 근데 자격증을 따려고." 나의 대답을 들은 질문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는 아~ 하는 음이 춤추는 소리만 낸다. 질문자의 태도와 질문이 아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느 누가 대한민국 고등학교 2학년, 이 중요한 시기에 자신의 첫 번째 꿈이 아닌 두 번째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겠는가.

나는 너무나도 하고 싶은 게 많고, 이루고 싶은 게 많아서 꿈도 많다. 이런 나를 세상이 이해해 주길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간섭만 하지 말아 달라고 하고 싶다. 그러나 나의 바람대로만 흘러간다면 어떻게 인생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겠는가. 그건 그저 꿈일 뿐이지.

꿈이 여러 개라면, 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남들이 걸을 때 나는 뛰어야 한다는 소리다. 사람들은 그걸 모르니 그저 소설을 쓴다. "저 집 아이가 공부를 못해서 제과제빵을 한다더라", "꿈이 없어서 부모가 자격증이라도 따라고 했다더라"…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면 굳이 알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그게 내가 살아가며 제일 처음으로 배운 인간 법칙이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이 없다. 그저 자신에게 보이는 모습만 보고 남을 판단할 뿐, 그 속사정까지 알고 이해하고자 하지 않는다. 처음에 나는 이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알게 된 직후에는 인류애가 바닥을 치기도 했다. 마침내 이것은 인간의 습성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다 놓아버렸다. 오해하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는 뜻이다. 어쩌면 인간인 나도 그래 왔는지 모르는 일이다. 나만큼은 현대사회의 냉혈한 1이 되지 않기로 했으면서도 말이다.

 

Chapter2 내 인생은 불합격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다. 사람들은 '실패를 딛고 일어나느냐', '실패에 발목이 잡혀 일어나지 못하거나'로 갈린다. 내가 제과제빵 필기시험에 떨어진 날, 나는 그날 이 사실을 배웠다. 나는 시험지 제출하기 버튼을 누르고 두 손을 꼭 모아 겹쳐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무의식적으로 눈을 떴을 땐, 내 눈엔 빨간 불빛의 불합격 글자가 떡하니 있었다. 정말 좌절했다. 내 주변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고 있는데도 나는 충격에 자리에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불현듯 누군가 내 모니터의 불합격 화면을 볼까 황급히 결과 창을 끄고 시험장을 나섰다.

막상 나오니 갈 곳이 없어진 나는 바로 앞에 있는 대기 의자에 앉아 한참을 멍 때렸다. 몇 분이 지났을까. 어떤 아주머니께서 내가 나온 시험장에서 나오셨다. 나는 아주머니의 표정이 밝으시기에 합격하신 줄 알고 '부럽다'는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때 아주머니께서 어디론가 전화를 거셨다. 그 전화 속 목소리의 주인공은 남편인 것 같았다. "어~ 아니, 떨어졌다." 자신의 불합격 사실을 덤덤하게 말씀하시는 거에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저렇게 덤덤하실 수가 있는지. 아니면, 그런 척이라도 하시는 건지. 시험에 떨어지고 이 길은 나의 길이 아닌가 보다 하며 절망하고 있던 나와는 달리 벌써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다음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시는 것 같아서, 진정한 어른인 것 같아서, 나는 그러지 못해서. 조금은, 많이 충격을 받았다. 충격보다는 감명일지도 모르겠다. '실패한 나'도 사랑하는 것. 나는 그게 바로 자존감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정말 멋있어 보였다. 나도, 저렇게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도,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Chapter3 강가에 앉아 있는 사람

고등학생이 되고, 코로나로 인한 일상생활에 대한 제약이 어느 정도 풀리면서 그동안 못했던 모둠 과제들이 물밀듯 밀려왔다. 모둠 과제는 정말 운이다. 팀원에 따라 그 팀의 성적이 결정된다. 모두가 의욕적인 팀원이라면, 그 팀은 점수를 잘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운이 좋지 않은 나의 경우에는, 성격이 맞지 않거나 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거나, 엎어져 자는 팀원들과 함께한 모둠 과제가 더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혼자 나의 팀원들의 멱살을 잡고 이끌어 간다. 물론 내가 그만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럼에도 점수는 받아야겠고, 뭐라도 해야겠으니 천성에도 맞지 않는 '나서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다 어떨 때는 돌잡이에 '리더십'을 잡은 아이들과 같은 팀이 된다. 처음에 나는 드디어 믿지도 않는 신이 나를 도와주시는가 보다 했다. 근데 아니었다. 그럼 그렇지. 그 아이는 겉으로는 조장인 척, 모든 일을 다 하는 척하며 교묘하게 나에게 모든 일들을 맡겼다. 그러면서 생기부에 적히고, 선생님들에게 눈도장 찍히는 건 그 아이의 이름 석 자이다. 그 일을 처음 당했을 때, 이게 뭔가 싶었다. 나는 그저 해달라는 대로 해줬고, 그 아이가 그렇게 영악한 줄 몰랐고, 결국 또 나의 잘못이다.

신기하게도 세상일이라는 게 내가 원하지 않는 대로 흘러간다. 그 아이와 나의 악연은 같은 조가 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심지어 같은 반이다. 신은 나를 미워하시는 게 분명하다. 내가 필요할 때만 찾아서 그런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한 게 아닌가. 그 아이와 겹치는 활동이 너무 많다. 게다가 진로까지 비슷하다. 그 아이와 같은 팀이 될 때는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평소라면 나에게 떠밀리듯 맡겨지던 조장도, 이제는 그 아이와 쟁탈전을 벌여야 얻을 수 있다. 나는 일상의 변화를 싫어한다. 그런데 나의 일상의 제일 큰 변수인 그 아이가 생겨버렸으니 나는 학교생활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어느 날은, 내 친구를 붙잡고 목이 메라 울며 하소연을 했다. 나 너무 힘들다고. 그랬더니 하는 말이 나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단다. 나는 어쩌면 그 말이 듣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습관적으로 자책하는 나를 곁에 둔 나의 친구는 어느 순간부터 이 말을 하려고 준비해 왔는지도 모른다. 마스크가 다 젖을 정도로 눈물 콧물 아니, 내 몸속 차지하고 있는 70%의 무엇들을 다 빼내버릴 기세로 울었다. 사실 마음껏 우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항상 나의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고, 울어도 눈물만 흘렸었다. 소리 내어 운 기억이 잘 없다. 어느 순간부터 조용히 우는 것이 습관이 된 나는 그것이 비정상이라는 걸 잊고 살아왔다.

한참을 울고 나니 학원 시간이 지나 있었다. 핸드폰 화면에는 부재중 전화 세 통이 찍혀 있었다. 친구와 헤어지고 학원으로 향하며 학원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나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른 걸 눈치 채시고는 늦어도 되니까 천천히 조심해서 올라오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학원에 늦은 걸 혼날 각오로 전화를 걸었던 건데 예상외의 말을 들으니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를 이해해 주신다는 느낌이 들어 그랬다. 결국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침대에 누워 한참을 생각했다. '정말 내가 아무 잘못 없는 게 맞을까', 그럼 '내가 화를 내야 했을까' 하고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만만한 죄'이다. 그래도 나를 질책하지는 않았다. 공동체 생활에는 나서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따라주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비록 시키는 방법은 잘못되었지만 이번엔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따르는 것이고,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니 조급해하지 말자고 되뇌었다. 내가 열심히 안 한다고 손가락질 받아도 휘둘리지 말자고. 사실 제일 열심히 하는 건 나라는 걸 나는 알고 있으니까. 나는 나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으니 그것으로 됐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복수하려 하지 않고 강가에 앉아 있으면 그 사람이 강에 떠내려 올 것이라고. 나도 그저 강가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평생 그렇게 살도록 두기로 했다.

▲ /일러스트 서동진 기자 sdj1976@idomin.com
▲ /일러스트 서동진 기자 sdj1976@idomin.com

Chapter4 18세의 어리광

요즘따라 영원하길 바라는 순간들이 참 많다. 나는 메모장에 순간순간의 감정들을 기록해 놓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메모장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을 한다. 그 문장을 쓸 때에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활자로 남은 나의 감정들을 들여다보면 정말 많은 순간을, 감정들을 저장하고 싶어하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사실 기억력이 좋지 않다. 심지어 5분 전에 하고자 한 일도 까먹을 때가 많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벌써 몸이 쇠퇴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럴수록 더 웃기게 더더욱 나의 감정 기록에 집착하게 된다. 감정은 정말 순간적이다. 그 순간이 아니라면 다시는 느낄 수도 없는 감정도 존재한다. 그런 감정들을 잃고 싶지 않다. 기억력이라도 좋으면 기억이라도 할 텐데, 나에겐 역부족이다.

내가 주로 영원하길 바라는 순간들은 정말 별것 없는 순간들이다. 주말 한낮 아이패드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 그 모든 것을 느끼며 여유롭게 침대 위에 누워 책을 보는 나. 하굣길에 올라 무대 위의 조명을 받는 배우처럼 태양이 내뿜는 직사광선을 맞으며 집에 가는 나. 친구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배가 아프게 웃는 나. 몇 번을 곱씹어 봐도 그저 일상생활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 일상생활의 일부가 좋아서 살아간다. 그 일상생활의 일부가 영원하기를 바란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순간이 행복하니까. 바래지 않았으면 하니까. 잊지 않기를 바라니까.

이렇게 간절히 바람에도 세상에는 영원한 순간이 없다는 걸 안다. 그저 의미 없는 소망만 늘어갈 뿐이다. 그저 어린아이의 어리광일 뿐이다.

 

Chapter5 행복의 스트레스

행복해서 짜증 난다. 이게 무슨 모순적인 조합인가 싶겠지만, 행복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 다가올 대가가 두렵다. 행복하다가도 그 뒤에 따라올 대가를 생각하면 표정이 굳어버린다. 아직 닥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는 건 참 나다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안 좋은 습관이다. 나는 항상 사서 걱정을 한다. 그런 나에게 주변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은 '걱정병'이다. 처음에는 그게 뭐냐며 부인했지만 나를 돌이켜 보니 그 별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안 좋은 습관인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이제 걱정이 없으면 더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걱정을 함으로써 그에 대한 대책도 같이 생각을 한다. 마치 게임 프로그래밍 같은 거다. 이렇게 미리 걱정을 하고 대비를 함에도 변수가 생기기 마련인데 안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를 떠올리곤 상상을 멈춰버렸다. 이것마저도 걱정이라, 정말 걱정의 굴레에 빠진 것만 같다.

영화 <신과 함께>를 본 적이 있는가. 내가 만약 죽어서 영화와 같은 여러 지옥이 있는 사후 세계에 가게 된다면 아마 '걱정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Chapter6 엎어진 물은 닦으면 되는 거고, 고장 낸 기계는 고치면 되는 거야

이건 나의 이야기보다 이걸 읽는 사람들에게 바치고 싶은 이야기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실수를 한다. 누구든 실수를 한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지구 내핵까지 땅을 파고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엎어진 물은 닦을 수 있고 고장 난 기계는 고칠 수 있는데, 실수는 왜 바로잡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물론 세상에는 바로잡을 수 없는 실수도 존재한다. 그러니 사과 한 번이면 바로잡을 수 있는 실수들이 더 많다. 또 그 실수가 오히려 기회가 될 때도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포스트잇은 실수로 인해 만들어진 제품이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포스트잇 개발자가 천재라고 불리는 세상이다. 실수로 천재가 되다니, 모순적이다. 그러나 세상일은 정말 예측 불가능해서 가끔은 이런 오류 현상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니 실수했다고 해서 기죽지 말자. 모든 사람들은 실수하고, 그 실수를 익혀 다음번엔 실수를 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기회로 만들기도 한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실수를 저질렀을 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같은 실수를 행하지 않도록 조심하되, 자신을 깎아내리진 말라는 뜻이다. 그러기엔 우린 너무 소중하니까. 또, 혹시 모른다. 우리가 천재가 될지.

 

Chapter7 어른

'너 왜 자꾸 어리게 굴어? 감정을 숨기는 것도 어른이 되는 과정 중 하나야. 상대에게 좋지 않은 감정은 숨기는 게 예의라고.'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어쩌면 이 말은 오답투성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쁜 감정은 상대방 앞에서 직접 드러내면 안 된다고. 이걸 깨닫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세상을 살아가며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가는 만큼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늘어갔다. 어느 날은 친구도 아닌, 동급생이 자꾸 나를 싫어하는 티를 내는 거다. 예를 들어 나를 포함한 친구들과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버스가 먼저 왔다고 나를 버리고 가버리는 것 같은 거 말이다. 처음엔 자책했다. 내가 좀 더 빨리 나갈걸 하고. 근데 약속 시간이 아직 10분이나 남은 시각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런 일들이 쌓이다 보니 눈치 없는 나도 눈치를 못 챌 수가 없었다. 나를 싫어한다는 걸 말이다. 그 애가 나를 싫어한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는데 모를 수가 없더라. 그 궁리할 시간에 공부를 하지…. 아니다. 충고는 잘되길 바라는 사람한테 하는 거니 공부하라는 말은 취소한다. 아무튼 그 애한테 악감정은 없지만 내가 싫다니, 내치는 대로 내쳐져 줬다.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나도 내가 싫어하는 사람한테 무의식적으로 티를 낸 건 아닌가 싶더라. 만약 그랬다면 난 개쓰레기가 맞다. 앞으로는 그냥 쓰레기가 되기 위해 저 말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산다. 나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이게 무슨 삼류소설 같은 소리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엄연한 사실이고 내가 실제로 겪고 느낀 이야기다. 또 어쩌면 세상에 알리고 싶은 나의 이야기다. 이건 삼류소설 같은 허망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꿈이 아닐까 하고. 눈을 뜨면 사라지는, 내가 주인공인 행복하지만 때론 비극적인 꿈이라고.

/김유희(서창고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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